2006년,
「친구 카페」와 「부천 바둑 카페」가 동시에 태동 되면서 우연히 글을 간간히
끄적거려 오고 있던 차, 그 몇 년 뒤 인천 「미추홀 바둑 카페」도 개설되었다 하여
동참 하던 중, 거기서 또 몇 해 후 뒤늦게나마「아바사 (아마바둑사랑회)」에 상륙하
게 되었습니다.
문학을 전공한 적은 없고, 작가는 더더욱 아니라서, 단어 고르기나 나열하는 데
있어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여전히 고심인 채로, 알량한 글을 올리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다만, 60년 대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시절 교내, 군내, 도내 글짓기 대회 나가
상 꽤나 받아오면,어머니가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마루 벽 (그때는 액자가 없었는
지) 에다 죽 붙여 놓았다가, 이사갈 때 쯤이면 검은 그을음으로 몽땅 뜯어 버리는 게
한없이 아쉬워 했던 적은 있었습니다.
더하여, 일기를 꾸준히 잘 썼다고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 앞으로 불려나가 매월
일기상을 받은 것은 맞고,17세 때에 하도 못 배운 게 한 (초등학교 때,전교에서 1등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찢어지게 가난하여 학교를 진학 못하고 후에 22세 때, 나이 들어 검정
고시로 고등학교를 겨우 마쳤으니) 이 서려 [하늘 天, 따 地]천자문을 아침마다 붓에
먹을 묻혀 4자씩 꼬박 6개월에 걸쳐 뗀 다음, '낭랑 18세' 에 한문 3,000字를 읽기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실력으로 까지 키워놨더니, 그것도 ‘무
슨 큰 무기’ 라고 주인 집 이장님이 동사무소 (지금은 주민센터) 동장님께 추천해 주는
행운을 얻어 1년 간 근무하면서 한문 실력을 맘껏 뽐냈던 적은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모여 글을 쓰는 도화선이 되었을 거란 생각은 듭니다.
그래,
특별직(75년,21세)으로 하는 일이란, 주민등록증 한자로 직접 써서 갱신해 주는 일
끝나면 등,초본 떼어주는 일이었는데, 그 받은 월급으로 밤에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
하는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습니다.
주경야독으로 그 참기 힘든 졸음 끝인 22세 때,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합격한
뒤 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가난이 뭔 조화로 아직도 발목을 놓아
주지 않는 바람에, 약관 23세 나이로 일찌감치 험난 (요새로 말하면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미생'의 인생이라고 해야 할지) 한 사회로 내 몸이 내던져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40년이 넘도록 험난한 세상에 치여 잊혀지고 살다가 위에서 말했듯이,
2006년 바둑 카페에 연이 닿으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글이란 게, 쓰는 사람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는 장르라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감정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구석구석 바둑 현장에 많이 있었던 필자로서, 보고, 느끼고, 연구
한 경험을 많이 써보려 하니,바둑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넓으신 이해심과 긍정적
으로 바라보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매일 바둑대회가 열리거나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둑 얘기
만 쓰기가 퍽퍽할 때는, 소소한 일상적인 얘기나,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거나, 화르
르 터지는 꽃망울 얘기도 늘어 놓을 참입니다.
하여,
내 글 나부랭이가 간혹 비치면, 날카로운 시선이기
보다는 애정어린 마음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던 이름 , 唯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