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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새 예루살렘이 오게 하소서/ 마태복음 6:1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Dfrp6atncaY
해군에 입대한 사병의 어머니가 울면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경덕이가 군대에서 전사했어요. 마음씨 착하고 신앙생활도 잘 하던 아들인 것을 목사님도 아시지요? 이제 저는 어떻게 하나요. 그놈 하나만 믿고 살았는데...” 어머니는 울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국에는 갔는가 봐요.”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정말 안 되셨네요. 그래 어쩌다가 전사를 했답니까? 해군에서 전사 통지서가 왔던가요?” 사병의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합니다. “오늘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요. 편지를 보니 이런 내용이었어요. ‘어머니, 저는 지금 지중해를 지나 나폴리에 와 있습니다. 머나 먼 이곳은 천국입니다. 사람들도 다 천사 같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너무 살기 좋은 천국입니다’ 지금 우리 아들 경덕이가 천국에 있대요.” 나폴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천국과는 비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오늘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죽어서 가는 천국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지 천국과 지옥이 있기는 뭐가 있어.”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음 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기도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아버지의 나라에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입니다. 여의도를 가보면 빌딩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는 잠실 제2롯데가 있습니다. 123층, 높이는 555m입니다. 아마도 백 년 전에 서울에 이런 고층빌딩들이 들어설 것이라고 말해줬다면 사람들은 “세상에 그런 건물을 어떻게 짓느냐”며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국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천국의 종류
천국은 크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1) 현세 천국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현세천국이라고 합니다(마 12:28). 천국은 이미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천국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낙원
낙원은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기 전에 대기 장소를 말합니다. 학자들은 표현상의 차이이지만 낙원은 영원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봅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주님을 영접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낙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낙원이란 ‘Paradise’라고 하는데, 이 말은 페르시아 말로 ‘왕의 정원(The garden of King)’이란 뜻입니다. 낙원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기 때문에 이 말이 맞습니다..
3) 천년왕국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믿는 자들이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공중에서 주님을 만납니다(살전 4:16,17). 그 후에 주님께서 구름타고 지상에 재림하십니다. 재림의 장소는 예루살렘 감람산입니다(슥 14:4). 그때 마귀는 결박을 받아서 천년 동안 무저갱이라는 옥에 갇힙니다(계 20:1-3) 이때를 천년 왕국이라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 다스리시고 우리는 왕노릇 합니다(계 20:6).
4) 새 예루살렘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지금의 하늘과 땅은 앞으로 불타서 없어집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생을 누립니다(계 21:1,2). 우리가 일반적으로 천국이라고 할 때는 바로 이 새 예루살렘성을 말합니다. 현세천국과 낙원 그리고 천년왕국은 한시적인 천국입니다. 새 예루살렘성만이 영원한 천국입니다. 감사한 것은 믿는 우리는 거기서 영원토록 왕노릇 합니다(계 22:).
2. 새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계 21장에 보면 새 예루살렘은 정육면체입니다. 계 21:16입니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새 예루살렘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12,000 스다디온입니다. 1스다디온이 192m인데, 천국은 12,000스다디온이니까 높이가 2,280km이고 길이와 너비도 2,280km인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은 사실 크기보다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의 거처가 준비 된 곳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우리가 가야할 천국인 새 예루살렘성을 기록했는데, 거기는 우리를 위하여 만세 전부터 예비해 놓으신 곳이며,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우리가 거할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3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은 지금 새 예루살렘성에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거처가 완성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고신일목사님께서 미국에서 사실 때 알래스카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알래스카는 일부러 돈을 주고라도 여행하는 곳인데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 교회에서 목사님께 어떻게 올거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자동차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냥 쉽게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15시간씩 운전을 해서 일주일동안 갔습니다. 고목사님이 알래스카로 가는 동안 제일 무서웠던 일이 편안히 잠 잘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날이 저물어서 모텔이 보이기에 가봤더니 빈 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잘 데가 없는 것, 거할 데가 없는 것은 무시무시한 공포였습니다. 거할 곳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우리가 거할 곳이 넉넉합니다.
요즘은 문패를 다는 분들이 드문데, 예전에는 집집마다 문패를 달았습니다. 여러분! 문패에는 누구의 이름을 적어놓는지 아시죠? 집 주인의 이름입니다. 감사한 것은 천국 문은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계 21:12입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숫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상징적인 숫자를 잘 알아야 합니다. 3은 하늘, 삼위일체 하나님의 수입니다. 4는 세상, 동서남북 곧 땅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3에다 4을 합한 7은 하나님과 세상간의 언약의 숫자 곧 구원 언약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럭키 7입니다. 그리고 3에다 4를 곱한 12는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12 지파, 12 정탐꾼, 12 사도, 12 보좌와 같은 말이 자주 나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성도 12 기초석, 12 보석, 12 사도의 이름, 12 문, 12 진주문, 12 천사와 같이 12가 많이 나옵니다. 12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 예루살렘의 12 진주 문에는 12지파의 이름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천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모든 사람의 집입니다. 그 이름은 우리의 이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새 예루살렘성의 주인입니다.
어떤 분은 경제적인 면에서 소망이 없어서 ‘나는 문패 달기는 틀린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천국 진주문에 문패를 달게 될 것입니다.
2)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신 곳
새 예루살렘성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십니다(계 21:22). 새 예루살렘성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영혼의 친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뵙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천국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그곳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뵙는 곳이 천국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랑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신부입니다. 신랑의 집이 신부의 집인 것처럼 예수님이 계신 그곳은 우리의 집입니다. 천국에는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한 곳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에는 천사들도 있습니다. 천사들은 우리보다 능력이 있지만 우리들의 수종자들입니다(히 1:14). 천사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우리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우리들의 눈에 보이도록 우리들의 천국생활을 도와줍니다. 약 20년 전에 제 선배 목사님이 베트남에 가셨다가 친절한 호텔 직원 때문에 너무 편안했답니다. 고마워서 20불을 팁으로 주었답니다. 천사들은 그 호텔 직원보다 친절하며 능력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성에서 우리들은 천사의 수종을 받으며 행복하게 영생합니다.
3)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곳
천국백성은 게으른 자가 없이 모두 바쁘게 활동합니다. 새 예루살렘성에서 우리가 할 일은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계 7:15).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노동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어떤 사람은 밤낮없이 예배한다면 새 예루살렘 생활이 너무나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안식이고,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기가 우리의 몸에 들어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 끝 부터 발 끝 까지 가득하게 임재하실 것입니다.
계 21:3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여기 ‘하나님의 장막’에서의 ‘장막’은 헬라어로 ‘스케네’인데 히브리어 ‘미쉬칸’을 번역한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줍니다. 시 16:11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치유되고 회복 됩니다.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너무 좋아서 죽을 지경이라고 표현이 마울립니다. 어거스틴이 쓴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에서는 “그 성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주의 백성들이 자신을 잊는 도시”라고 했습니다.
4) 완전한 만족이 있는 곳
새 예루살렘에서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습니다(계 7:16). 세상에는 목마름이 있지만 새 예루살렘성은 목마름이 없습니다. 거기는 완전한 만족의 상태가 영원합니다.
요즘은 극심한 목마름 때문에 고통을 당한 적이 없지만 전에 군대에서 훈련 받을 때가 생각납니다. 행군을 할 때 수통의 물을 마시며 행군하는데 그 물이 얼마 못가서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목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간절히 물을 찾게 되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하니까 논에 있는 물도 마십니다. 농약도 섞였을텐데, 온갖 좋지 않은 세군이 득실거릴텐데 말입니다. 너무 목이 마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성에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입니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곳입니다.
5) 생명이 충만한 곳
천국에는 생명수 강이 흐릅니다.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강과 길 사이에 강을 따라서 나무가 줄지어 있습니다. 이 생명나무는 열매로 가득합니다. 생명나무는 매월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계 22:2. 그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 나무의 잎사귀까지도 치료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천사에게 불 칼을 가지고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범죄한 인간이 생명나무를 따먹고 영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범죄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영생하면 세상은 황폐하게 될 것이고 인간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생명수도 마음대로 마시고 생명나무의 열매도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거기는 사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곳입니다.
6) 최고로 아름다운 곳
오래 전에 몹시 추운 겨울에 어느 목사님이 걸어가고 있는데, 좁은 골목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분이 양지 바른 곳으로 뛰어가 서더니, 음지에서 장사하는 친구를 보고 소리치더랍니다. “여보게, 이리로 오게, 여기는 천국일세.” 그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천국이 너무 초라하군’이라는 생각하고는 웃었답니다.
계 21:2을 봅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사도 요한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성을 보니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습니다. 그 성의 동서남북에 각각 세 문 씩 모두 열 두 진주 문이 있는데, 그 문은 한 개의 진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성곽의 기초석은 모두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보석의 종류가 열 두 가지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모든 길들이 순금으로 단장되어 있고,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얼마나 찬란한지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의 조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밤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부족하거나 없는 것들이 많아서 서로 많이 가지겠다고 싸웁니다. 새 예루살렘성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많이 가진 자들이 부자고 없는 자들이 가난하지만 그곳에는 없는 게 없고 부족한 것이 없으니 가난한 자나 부자가 따로 없습니다. 모두가 다 부자이며, 왕이며, 하나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7)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는 곳
새 예루살렘성은 너무 좋은 곳이라 거기 들어간 사람은 영원토록 눈물을 흘릴 일이 없습니다. 계 21:4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세상 도시는 악이 있고 해함과 위험이 있습니다만 새 예루살렘성은 그런 위험이나 해함이 없습니다. 거기는 병원도, 술집도, 형무소도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성에는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는 밤이 없습니다.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죽음과 슬픔이 없습니다. 염려와 근심도 없는 곳입니다. 유혹과 죄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울 일이 많습니다. 아파서 울고, 굶주림에 배가 고파서 울고, 섭섭해서 울고, 외로워서 울고, 실망해서 울고, 안타까워서 울고, 그리워서 웁니다. 힘들어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부족해서 울고, 없어서 울고, 슬퍼서 웁니다. 이 세상에는 울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천국엔 바다가 없습니다. 계 21:1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바다가 없다는 것은 태풍이 없다는 뜻입니다. 바다는 고달픈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고난의 바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성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고난이 없습니다. 거기는 인생의 고달픔이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런 행복한 곳이 시간이 지나도 파괴되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성은 영원히 변함없습니다.
3. 누가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가?
그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성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누가 천국의 문에 문패를 달 수 있습니까? 정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입니다(요 14:6) 예수님이 유일한 길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았고,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았어도 예수님의 이름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죄인도 예수 믿고 죄사함 받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의 진주문이 의미하는 것이 있습니다. 진주는 십자가의 상징이입니다. 구속의 상징입니다. 진주가 어떻게 해서 생기죠? 때로 진주조개 속에 모래 같은 것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조개의 부드러운 살이 너무나 쓰리고 아파서 견딜 수 없습니다. 조개는 그 아픔 때문에 눈물과 같은 분비물을 냅니다. 그것이 진주라는 아름다운 보석이 됩니다. 천국의 문이 진주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천국문은 그 상처와 고통으로 생긴 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요한복음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새 예루살렘성의 문을 통과하여 영원한 천국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 10:9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 후에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죽음도 소망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들려주신 황집사님이라는 분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미국LA에서 청소부로 일하다가 봉제공장을 다니다가 세탁소를 차렸습니다. 세탁소가 잘 되면서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었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아주 큰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40살이 조금 넘었는데 위암에 걸렸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죠.
이분은 평소에 교회에 와서 항상 구석진 사각지대에 앉아서 졸다가 가고, 어떤 때는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병원에 심방을 갖더니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를 듣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꿀같이 달아요.” 항상 교회에 와서 졸든 분이 말씀이 너무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목사님에게 “목사님 제가 너무 죄를 많이 지었어요. 그리고 이제 정말 복음을 알겠어요. 십자가를 알겠어요, 이제 제 안에 예수님이 계셔요, 일어나면 열심히 이제 주님 섬길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목사님은 “그래요 집사님 꼭 일어나셔야 돼요”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집사님 몸이 계속 쇠약해지다 조금 회복이 되는 것 같더니 잠시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을 할 무렵에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간다고 하니까, 이분이 성지순례를 가겠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주치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성지순례팀이 이스라엘 여러 곳을 다녔는데, 순례 중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든 비아 돌로로사라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주님의 피가 묻은 길입니다. 예수님이 세 번씩이나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신 길입니다. 그 길에서 집사님이 너무 힘든 것 같아서 목사님이 붙들고 같이 갔습니다. 걸어가면서 목사님이 설명을 했습니다. “이 언덕길을 예수께서 가셨습니다. 넘어지시고 다시 일어서시고 피를 떨구시면서 가신 길입니다.”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니까 집사님이 “목사님, 이 길 때문에 하늘가는 그 길도 우리가 가는 거죠?”라고 하였고 목사님은 “그래요. 맞아요. 예수님께서 나 대신 지신 십자가, 나 대신 못 박히시고 피 흘리신 그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천국 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라고 했고, 황집사님은 “그러네요.”하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지순례 잘하고 돌아와서 석 달 후에 황집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떠나시기 직전에 코마 상태에 있던 황집사님이 갑자기 순간적으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일으켜 달라고 해서 침대에서 일으켜주니까 “하늘 가는 길이 보여요! 하늘가는 길이 보여요! 설명할 수 없는 광채가...”라고 하더니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더니 “할렐루야!”하고는 집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흔히 죽음을 인생의 끝이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 신자는 천국에 갑니다. 낙원에 들어가고 새 예루살렘성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망입니다. 왜냐하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에 슬프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죽음도 소망입니다.
한 기자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에게 “가장 큰 꿈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가장 큰 꿈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도 천국입니다. 할렐루야!
4.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믿음은 기본이고, 기본 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천국 상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 생활한 것, 봉사하고, 예배드린 것 그리고 헌금 생활과 전도 생활 등등이 천국의 집을 건축하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행할 때마다 천국에 있는 나의 집에 벽돌이 하나씩 쌓아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메리 케더린 박스터라는 미국 여자 목사님이 쓴 [정말 천국 있습니다]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10일 동안을 천국을 보여주셨는데 천국을 갔다 와서 그가 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천국에 가면 기록의 방이라는 게 있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말한 것, 행동한 것, 생각한 것들이 천사를 통해서 다 기록이 된답니다. 이곳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다 같은 예배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예배하고, 어떤 사람은 딴 생각이나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예배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 없이 예배를 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우리의 이런 마음까지 읽고 일일이 전부 기록해서 보관합니다. 우리의 생애를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그 기록에 의해서 천국생활의 질이 결정된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받을 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로마 황제 네로(Nero)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절에 정예 부대로 손꼽히는 12연대 병사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40명 있었습니다. 지휘관은 그들을 모아놓고 지금이라도 신앙을 버리는 자는 살려 준다고 했지만 단 한 명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지휘관은 호수의 얼음을 깨고 병사들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신앙을 포기하는 자는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자 한 병사가 신앙을 포기하고 물에서 나왔으나 더운물에 들어가는 순간 심장마비에 걸려죽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지휘관 한 명이 영의 눈이 열려서 보니 호수 위 하늘에서 40명의 천사가 40개의 면류관을 들고 춤을 추다가, 그중 한 천사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지휘관은 그 병사가 받으려다 놓친 면류관을 대신 받기 위해서 옷을 벗고 호수의 차디찬 물로 들어가서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는 죤 뉴톤이라는 사람이 지었습니다. 그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천국에 갈 때에 나는 거기서 세 가지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틀림없이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하늘나라에는 문턱에도 못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무엇보다도 크게 놀랄 것은 나 자신이 거기에 있음을 알고 놀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가 천국에서 만나야 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지옥에 가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모두 새 예루살렘성에 입성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