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강」을 읽고
우승순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맑은 날이면 뒷산에 산책이라도 나갈 텐데 침침한 날은 우울해진다. 할 일 없이 무료해 지면 괜히 불안해 지는 것은 글을 쓰면서 생긴 일종의 습관 병인 것 같다. 읽든지 쓰든지 뭔가는 해야 하는데....작년에 받아 놓았던 수필집을 다시 꺼내 읽기로 했다.
나는 고향이 평창이라 영월 주천과 가깝고, 현직에 있을 때는 시멘트공장의 오염도 검사를 위해 주천 부근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다. 또한 나름의 애주가여서 ‘술 샘이 있는 강’이라는 뜻의 「주천강(酒泉江)」에 먼저 손이 갔다.
내가 쓰는 이런 종류의 글은 절대 작품 평이 아니다. 나는 감히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가할 만한 능력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 다만, 회원들이 힘들게 출간한 책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모든 회원의 책을 다 소개할 수 없는 것은 나의 한계이고 죄송한 마음이다.
늘 문학의 변방에서 홀대 받고, 상처 받는 수필이다. 더 닦고 배워서 깨우침과 철학이 있는 또 다른 방향을 찾아보고 싶은 바램도 있다. 스스로 수필가라 칭하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권영섭 수필가님이 쓴 「주천강」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제4부에는 수필 52편이 실려 있고, 제5부는 자작시 2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고 실감 났던 부분은 제3부 ‘추억’의 편에 실린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송여울 보쌈’과 ‘그리운 봉놋방’은 나에게 압권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평창 읍내에서 십리쯤 떨어진 산골에서 자랐고 사계절 평창강에서 물장구치고 물고기 잡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라 도취된 듯 실감나게 읽었다. 그때 그 시절 고향의 강도 그랬다.
여울을 가르던 유선형의 멋진 물고기 쉬리, 아름다운 자태의 메자와 불거지, 톡 쏘는 침을 가졌지만 맛은 최고인 돌 밑의 퉁가리와 꺽지, 모래 속을 파고드는 살점 많은 모래무지, ‘잡기 3일 전부터 썩는다는 물고기’ 돌나리, 낚시나 보쌈의 미끼로 쓰였던 ‘꼬네’(잠자리 애벌레) 그리고 된장을 풀고 끓이면 일미였던 골뱅이(다슬기)까지 그 이름만으로도 물밑까지 훤히 보일만큼 맑고 투명했던 그 시절, 그 강이 떠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엔 가마우지라는 새 때문에 그 많던 물고기의 씨가 말랐다는 소식이다.
한편, ‘그리운 봉놋방’은 또 다른 정서를 흠뻑 안겨 주었다. 1960년대 시골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셨던 분들은 추억 한 자락 떠올려 보시라.
“저녁을 먹으면 약속이나 한 듯 봉놋방으로 모인다. 파랑새 담배 한 대씩 꺼내 물며 세미나를 열 듯 일과를 꺼내 놓으면 방안은 금세 담배 연기로 자욱해진다. 호롱불에 심지를 돋우며 “어이 족보 좀 가져와봐” 검정 고무줄로 열십자로 팽팽하게 묶은 화투를 꺼내 바닥에 척척 샌다.....안방 부뚜막에서 한 옴큼씩 훔쳐 나온 성냥개비가 우리 또래의 유일한 노름 밑천이었다.”
- 그리운 봉놋방 - 중에서
봉놋방에서 밤늦게까지 화투를 치다 보면 허기가 진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여럿이 남의 집 과일, 곡식, 가축 등을 몰래 훔쳐 먹곤 했는데, 주인이 눈치 챘지만 눈감아주는 ‘서리’란 풍속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당장 절도죄로 고발당하고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아무튼 한겨울엔 무서리와 닭서리가 많았고 비록 서리를 할지언정 나름의 법도(?)가 있었던 것 같다.
“여름 무서리는 파란부분만 분지르지 말고 통째로 뽑아 먹는다. 겨울 무서리는 구덩이를 잘 막고 온다. ......동네 닭서리는 한 마리 이상 하지 않는다. 복숭아, 살구, 자두 서리는 가지를 다치지 않게 한다. 우리 것도 될 수 있고 이웃집이자 친구네 것이고 아저씨, 아주머니네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강원의 맛 옥수수와 감자 - 중에서
저자의 고향은 강원도 영월과 충북 제천의 경계쯤에 위치했던 것 같다. 집에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입석역’이라는 간이역이 있었고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제천 시내에 있는 학교로 통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차 통학을 하며 얼핏 인상 깊게 보았던 선배 여학생을 졸업 후 영월읍내에서 우연히 재회하면서 로맨스가 이어졌다. 수필 ‘행복했다’에서는 연상의 연인에게 청혼까지 하게 된 뜨거운 사연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묘사되어 있다.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웠을 그 당시 그 여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황금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치렁한 검은 머리는 좁은 어깨까지 감싸고 있었고 빨간 하이힐은 조각 같은 두 종아리를 밭치고 있었다.......우리는 소꿉장난 같은 신접살림을 차렸다. 영모전 밑에 새로 지은 한옥에 방 하나를 얻어 그녀의 자취 살림에 내 책상 하나 보태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 행복했다 - 중에서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글자를 쓰려고 했지, 글을 쓰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무거운 침묵이 흐르게 된다.
1992년 한여름인 7월 28일 사무실에서 갑자기 오른쪽에 편마비 현상이 오면서 44세 때 뇌경색이 발병하여 장애가 생겼고, 이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으며 항암 투병까지 해야 하는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뇌경색이 발병하기 2년 전엔 군 복무 중이던 큰 아들이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는 크나큰 아픔을 겪었다. 그간의 고통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체격만큼이나 마음도 크고 단단했던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투병과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 동료 직원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30여 년을 봉직했던 직장에서 명퇴를 했다. 이후 불편한 몸으로부터 밀려오는 좌절과 불안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위해 춘천문화원에서 수필을 배우며 다소나마 위안처를 찾게 된다.
“새천년의 해맞이로 나는 춘천문화원에서 개설한 문예창작반에 늦은 꿈을 잡고 입학하였다. 늦깎이 2기생인 우리는 수필이라기보다 자기 고백서를 읽느라 목이 메고 눈물깨나 흘리곤 했다. 그중 나는 왼손으로나마 글을 쓸 수가 있어 다행이었으나 정서는 며늘아기 손을 빌려야 했기에 퇴고할 때마다 미안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2천 년의 첫해를 보내며 - 중에서
이후 저자는 한글워드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여 왼손으로만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글씨 쓰는 연습으로 시작한 노력이 어느 듯 글쓰기로 발전하여 수필가로 등단하게 된다.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상태로 지낸 세월이 30년째다. 그동안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힘들고 숭고했을 지는 가늠키 어렵다. 다만, 수필 제목에도 있듯이 아내가 툭 던진 한마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과정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뿐이다.
저자는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생활의 재발견과 깨우침의 철학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왔다.
“나는 많은 사람 속에서도 장애가 있는 사람을 쉽게 찾아내는 눈을 갖게 되었으며 또 두려움 없이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슴을 갖게 되었다. 들에 나는 쑥 한 포기에도 생명을 느끼며, 노란 애기똥풀 한 줄기에서도 아름다움을 보며, 폴 폴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도 사랑하게 되었다. .....뒤뚱대는 가재걸음이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좋고 층계도 오르내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 겨울 준비 - 중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늘 불평인 삶에 이 얼마나 청량한 목탁 소리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서툴지만 진솔함을 담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서툰 왼손으로 글을 쓰면서 문장의 군더더기는 빼고 함축했으며, 부자연스런 꾸밈이나 아는 척이나 가식이 없는 알짜배기 진솔함이 책 전체에 잔잔하게 흐른다. 그래서 더욱 감동을 준다. 이 가을에 꼭 일독해 보시기를 권한다.
2024.10.23. 우승순
첫댓글 우작가님 한권의 수필을 어느분이
이렇게 평론을 해 줄 수있겠어요
수필의 가치가 높아지는 듯합니다
다읽었지만 평론을 읽으니 다시 기억됩니다
우울은 전염된다고 합니다
활기차게 지내시기를 조언 감히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수필 작품이 더 돋보이며 수필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송 선생님 의견에 저도 동감합니다.
우 선생님께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