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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고추
옆 선수에게 우럭낚시기본에 대해 설명하느라 밥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분간 못하는 식사가 끝났다.
옆 선수는 자신의 자리로 갔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처음 옆 선수와 자리를 잡았을 때, 무척 딱딱해 보이던 그와 어느새 동반자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마음을 열면 서로 편해지는 것이 낚시다. 그러나 감정을 쇄심鎖心하면 하루 종일 서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배낚시다.
그가 식사를 끝내며 했던 말에 미소가 나왔다.
“눈감고도 할 것 같은디, 우럭낚시가 참말로 어렵소잉?”
그렇다. 나도 한 때는 우럭낚시를 멍텅구리낚시라고 치부했던 때가 있었다.
허지만 어느 때부턴가 나는 우럭낚시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낚시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모든 배낚시의 교본이며 종표終表라고 결론했다.
그때부터 나는 측면어류의 섭렵만큼 더 섬세한 채비로 바꾸기 시작했다.
섬세한 채비로 바꾼 후부터 우럭낚시 할 때 오감을 집중할 수 있었다. 무지막지한 채비가 아니므로 대단한 인내와 집중이 없으면 실패할 확률도 따르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을 다녀 온 후, 채비를 다시 세팅하려는데 옆 선수가 물었다.
“화장실 엄청 덥지라?”
“문 열어 놓으니까 참을 만하던데요.”
옆 선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머씨요? 문을 열어 놓고 나옵디여?”
“서서 처리했는데 문 좀 열어 놓으면 어떻습니까?”
“흐미, 난 또 머이라고? 이히히히히.”
옆 선수와 나는 어느새 적군에서 동지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꽂혀 있던 낚싯대를 분해하는 그의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물었다.
“오후엔 다른 장비 사용하시려구요?”
흘깃 나를 쳐다본 옆 선수가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일구이언불언여아一口二言不言女兒.”
“네에? 무슨 뜻입니까?”
“참말로 모르겄소?”
“글쎄요.”
옆 선수가 주변을 정리하며 체념한 듯 말했다.
“내가 젔응께 인자 잠이나 잘라요.”
오전의 자리투전에 대한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경악했다.
무슨 말로 옆 선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붙들 수 있을까 잠시 고민에 빠졌던 나는, OB골프공 하나로 인연이 된 성북동주지스님을 떠올렸다. 종교이념을 초월한 우리는 지금까지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내가 주지스님의 법언을 빌려 옆 선수를 만류했다.
“법정스님의 법언에 공수레공수거란 말이 있다지요? 인생이나 낚시나 공수레공수거 아닙니까? 화려한 영광도 한순간 나락에 떨어질 수 있고, 아무리 큰 고기를 걸어도 한순간 방심하면 빈손. 따지고 보면 만사는 인간의 부질없음입니다. 우리의 내기도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오기일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 아니겠소? 이제 포인트에 거의 다 온 것 같으니 새 마음으로 묵직한 놈 한 수 올려보세요.”
옆 선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검은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가 말했다.
“참말이어라!”
나도 그를 보고 말했다.
“사는 게 뜻대로 안되듯 낚시도 뜻대로 됩니까? 그렇지만 오후 낚시는 우리 진짜 멋지게 해 봅시다.”
옆 선수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은 낚시로 굳어진 내 손보다 더 단단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낚시에서 옆 선수는 35L아이스박스 6할을 채우는 점보 급 개우럭을 두 마리나 걸었다.
서해에서 볼락이라 믿고 있는 단년생 군평선이를 아래바늘에 달고 올라 온 개우럭이었다. 검붉은 군평선이 입질을 방관하고 기다렸다 받아 낸 대우럭이었다.
그는 개우럭을 들고 선사카메라에 포즈를 취해 준 후 칼을 꺼내들었다.
내가 물었다.
“뭐하시게요?”
“요거이 횟감아니어라? 긍께 피를 빼능겨라.”
내가 만류했다.
“선상낚시꾼들 사이에 언제부턴가 생물의 피를 빼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비위생적입니다. 살모넬라라든지 고래회충같은 기생충이 생물에 감염되어 있다면 피를 빼는 순간 생물의 살 속으로 파고듭니다. 허지만 자연사하면 기생충은 스스로 생물에서 퇴거합니다.”
“흐미?”
나는 마침 선상에 걸어둔 몇 마리의 배 가른 우럭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우럭들 보세요. 신성한 낚시터에서 피를 보이는 것은 다른 낚시인에게 비 매너이고 대상어에 대한 야만행위입니다. 더구나 우럭들을 말린다고 햇빛에 늘어두면 저 우럭이 건조될까요? 벌겋게 반 익어버리지?”
“오메! 맞소. 나가 좋은 거 깨달았소.”
“비록 미물이라도 낚시인은 섭렵한 대상어에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낚시인의 자세입니다.”
옆 선수는 긴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좀 더 일찌그니 만났으몬 참 좋았을거인디.”
잠깐 옆 선수의 얼굴에 침울한 표정이 스쳤으나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으며 이내 밝은 표정으로 회복했다.
그리고 조금 전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하루조행이 끝났다.
돌아오는 배안에서 그가 가로수처럼 지나가는 섬들을 등지고 말했다.
“나는 신안인디 봉일천 아들집에서 사요.”
“아, 금촌 못 가서 봉일천 말이죠?”
“나는 식솔이 많은디, 어짜요?”
“저는 단촐합니다.”
“그라몬 됐소. 전화번호나 요기 찍어 주시오.”
“왜 그러는데요?”
“나가 이래도 신안에 땅이 쬐매 있응께, 마늘하고 고추농사를 붙이고 있소. 마늘 철은 지났응께 할 수 없고, 첫물 김장고추 쬐매 보낼라요.”
“네에? 고추를요?”
“나가 사람 한번 잘보믄 간도 빼주는 인간이오. 헌디 개우럭도 한손 잡았는디 그냥 입 딱으믄 쓰겄소? 안그라요?”
나는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는 6짜 4짜 개 우럭을 내가 준 채비로 걸었다고 웃었는지 모르고, 나는 9짜 광어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골 아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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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낚시에서 만난 옆친구 강의후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되는 구료
낚시에서 얻은 좋은친구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우럭낚시 잘보았슴니다.
사람 사는 세상 훈훈한 정 없으면 냉골이지요?
다 함께 서로 이해하고 다독이는 세상되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처음만난 다소서먹했던 마음들이 어느세 눈녹드시 녹아내리고
낚시에 대한 자세한 지도편달에
감동되어 마늘 고추를 준다 했으니
좋은 친구를 둔것같슴니다
지금까지 우럭낚시에 대해 잘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너운날씨 수고 많으셨슴니다
이제 젠틀맨님도 낚시 출발해보심이 어떠실지요? ㅎ
제가 젠틀맨님 처지라면 매일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자연산으로 파티하구요.
그러면 백살 넘어갈텐데...ㅋㅋㅋ
더위가 아직도 버팁니다.
건강하시구요
작가님 마음을 열어주셨기에
좋은 우정 만드셨군요.
올같은 가믐에 김장고추 해결 하셨으니
잘하셨슴니다.
잘보았슴니다.
ㅎ
아직 받아 보지 않아서요.
허지만 받은 것보다 더 푸근한 마음아닐까요?
폭염에도 건강하시고 다시 뵐 때까지 항상 행운에 가득한 날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