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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혜경(三慧經)
역자의 이름은 알 수 없고, 지금은 양록(涼錄)에 첨부함
송성수 번역
부처님은 항상 세 종류의 사람을 얻고자 하셨으니, 첫째는 믿는 사람이며, 둘째는 묻는 사람이며, 셋째는 행하는 사람이다. 혹 어떤 이는 믿기만 하고 스스로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믿지만 행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기꺼이 세 가지 잘못을 저지른다. 첫째는 보시하지 않음이며, 둘째는 계율을 행하지 않음이며, 셋째는 뜻이 안정되지 않음이다.
사상(思想)을 없애야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으니, 요점은 ‘염하지 않음[不念]’에 있다. 사상을 없애면 색(色)도 없어지고 식(識) 역시 없어진다.
마음으로 염해야 할 것이 있으니, 이것을 ‘상대해야 할 네 가지[四所有對]’라 하고, 이것을 ‘상(想)’이라 한다. 마땅히 상이 있어야 하고, 마땅히 상이 없어야 하며, 상을 여의어서는 안 되고, 마땅히 상을 여의어야만 하니, 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다시 나아가게 된다. ‘마땅히 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도상(道想)을 말하고, ‘마땅히 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색상(色想)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며, ‘상을 여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경행상(經行想)을 여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고, ‘마땅히 상을 여의어야 한다’는 것은 마땅히 생사상(生死想)을 여의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도상(道想)이 없어 12문(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고, ‘다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은 사람이 생사에 빠져 곧 해탈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몸은 땅과 같고 좋은 뜻[善意]은 벼와 같으며 나쁜 뜻[惡意]은 풀과 같으니, 잡초를 없애지 않으면 나락이 영글지 않듯 사람이 나쁜 뜻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도를 이루지 못한다. 사람에게 성내는 마음이 있는 것은 땅에서 명아주[蒺蔾]가 자라는 것과 같다. 좋은 뜻은 번개가 치는 것과 같아 밝음이 가면 곧 다시 어두워지고, 삿된 생각은 구름이 가리는 것과 같아 해를 때때로 보이지 않게 하니, 나쁜 뜻이 일어나고 나면 도는 보이지 않는다.
배우는 이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배우지 않는 이에게는 괴로움이 없다. ‘배우는 이에게 괴로움이 있다’는 것은, 마치 사람이 씨를 뿌릴 때 먼저 갈아서 잡초를 제거해야 나중에 많은 수확을 얻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앞에는 괴롭다는 것이다. ‘배우지 않는 이에게 괴로움이 없다’는 것은, 마치 땅을 갈지 않아 명아주 같은 온갖 나쁜 생물들이 연이어 자라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배우지 않는 이에게는 괴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도를 행함에 있어 첫째는 괴로움을 금할 것이며, 둘째는 즐거움을 금할 것이며, 셋째는 괴로움을 금하지 말 것이며, 넷째는 즐거움을 금하지 말라. 즐겁거나 즐거움을 얻으면 곧 도를 행하기도 하고, 괴롭거나 괴로움을 얻으면 곧 도를 행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도를 행하다가 괴로움을 얻으면 곧 나고 죽는 것을 두려워해 도를 행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겐 즐거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얻으면 도를 행할 수 있고 마음으로 이와 같이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겐 괴로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얻어도 도를 행할 수 있고 괴로움을 얻어도 도를 행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겐 즐거움을 주어야지 괴로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괴로움을 얻어도 도를 행하지 못하고 즐거움을 얻어도 도를 행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에겐 괴로움을 주어야지 즐거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
모두 네 가지 구함[四求]이 있으니, 첫째는 몸 때문에 구함이며, 둘째는 소원 때문에 구함이며, 셋째는 어리석음 때문에 구함이며, 넷째는 행 때문에 구함이다. 사람들이 몸을 보전해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이 몸 때문에 구하는 것이며, 부귀와 처자와 진기한 보물을 얻고자 하는 것이 소원 때문에 구함이며, 제사를 지내거나 제압하고 물리침으로써 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어리석음 때문에 구하는 것이며, 법답지 않은 짓을 하고선 집안을 편안하게 하고자 도를 얻는 것이 행 때문에 구함이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보전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첫째는 기쁜 뜻이며, 둘째는 재물이며, 셋째는 목숨이다.
몸 역시 염(念)해야 할 것이면서 또 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몸의 온갖 더러운 피고름[惡露]을 헤아리는 것은 염해야 하고, 뜻이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에 빠지는 것은 염해서는 안 된다.
선(善) 역시 염해야 할 것이면서 또 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이른바 도를 얻으려는 뜻은 염해야 할 것이다. 염해선 안 되는 것은, 이른바 도를 얻으려는 뜻을 가장 높은 죄악으로 돌리는 것이다. 또 염해야 할 것이 있고 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허물이 있으면 스스로 뉘우쳐야 하니 이것은 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뜻이 일어났을 때 악에 빠진다면 이것은 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름을 버리고 삿됨을 생각하는 것을 미혹[惑]이라 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것을 의심[疑]이라 한다. 악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근본[本]을 위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익[利]을 위하는 것이다. 지은 행을 근본이라 하고, 지은 행의 복을 받는 것을 이익이라 하니, 이것을 제거하면 곧 도를 얻을 것이다.
‘탐내고 보호한다[貪護]’는 것은, 이른바 이미 얻은 것을 다시 탐하는 것이다. 색(色)을 생각하는 것이 탐욕에서는 으뜸이 되니, 한 번의 뜻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탐욕을 잘 방호하면 도를 얻지만 탐낸 것을 보호하면 생사에 떨어진다. 이미 얻은 것을 다시 보호하는 까닭에 ‘탐내고 보호한다’고 한다.
‘음식을 즐긴다[樂食]’는 것은, 이른바 환희(歡喜)를 말한다. ‘배부르게 먹을 생각을 한다’는 것은 37품경(品經)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배가 부르면 먹은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법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 뒤 통양(痛痒:受)을 따르는 것은 재배하는 것[栽]이고, 구한 뒤에 다시 생각하는 것은 식(識)으로 구하는 것이다.
온갖 세속의 일은 모두가 몸[身]에 속하고 온갖 이름들은 모두가 뜻[意]에 속하며, 온갖 범하지 않는 것은 모두 계(戒)에 속하니, 이것을 제외하고는 도라 할 것이 없다. 도행(道行)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법이 있으니 바로 정진하지 않는 것이고, 사람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법이 있으니 바로 간탐(慳貪)이다.
밖의 나쁜 인연이 사람에게 닥쳐와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참음[忍]이라 하고, 자신의 나쁜 짓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한다.
과거를 다시 생각하지 말고, 미래 역시 기다리지 말며, 지금 현재에 마땅히 끊어라. 사람의 소유가 아닌 것에 근심해서는 안 되니, 온갖 뜻이 있으면 모두 결박이 된다. 좋은 뜻이 있어도 잊어야 하고 나쁜 뜻이 있어도 잊어야 한다. 또 세 가지 인연 때문이니, 첫째는 생각하지 말고, 둘째는 자주 생각하지 말고, 셋째는 전도된 뜻에 집착하지 말라. 이 세 가지 일을 다시는 잊지 말라.
있음으로부터 없음을 얻을 수 있으나 있음은 있음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이것을 37품경의 뜻이라 한다. 생멸하는 뜻이라고 하지만 생멸에는 횟수가 없다. 왜냐하면 깨달은 자에게는 종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본래는 열흘 동안 앉아서 도를 닦으려고 마음먹었다가 열흘을 마치지 못하는 것은 전생의 복이 적은 까닭이다. 복이 많은 자는 열흘 동안 앉아서 도를 행하고 싶으면 곧 그럴 수 있다. 몸이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는 용렬하거나 몸이 극도로 수척하기 때문이고, 뜻이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는 죽어서 썩어짐과 괴로움과 허망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에는 네 가지 모습이 있으니, 첫째는 좋은 말을 들으면 곧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듣고 나선 곧 받아들여 명심하는 것이며, 셋째는 명심하고 나서는 잘 사유하는 것이며, 넷째는 마음으로 잘 사유하고 나서는 다시 질문해 그 뜻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 반대는 지혜가 적은 것이다.
어떤 5백 명의 도인이 도를 행하다가 선정을 얻고는 다시 잊을까 두려워 사람을 시켜 자기들을 죽여 달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물었다.
“도인을 죽이는 큰 죄를 나더러 지으란 말입니까?”
도인이 말하였다.
“사람이 원수가 있으면 죽이려고 하지 않는가? 이 몸은 나의 원수이니, 그대가 나를 위해 죽여 다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음을 죽여야지 몸을 죽여서는 안 된다.”
어떤 도인이 선정에 들었을 때 들불[野火]이 일어났으나 그는 옷도 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는 귀신이라며 곧바로 베었는데, 칼이 부러지며 들어가질 않았다. 마음을 한결같이 쓴 까닭에 타지 않고 부드러운 까닭에 칼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도인이 선정에 들었을 때이다. 제자가 식사하시라고 불러도 알아차리지 못하기에 다가가 팔을 당기자 팔이 한 길[丈]이나 늘어났다. 제자는 크게 놀라 매듭으로 묶어 놓았는데, 묶을 생각만 했지 다시 풀 수가 없었다. 스승이 선정에서 깨어나 팔이 매우 아파서 제자에게 묻자 사실대로 말하였다. 스승은 말하였다.
“너는 풀지도 못하면 내 팔만 함부로 분질러 놓았구나. 사람이 선정에 들면 솜[綿]처럼 부드러워지니,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도 그렇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질문과 다르게 대답하는 것이며, 둘째는 물을 줄 모르는 것이며, 셋째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점만 취한다[取要]’고 할 때 요점이란 경에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람이 홍수를 만났을 땐 진귀한 보배만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사람이 세간에 살면서 좋은 마음만 가지고 가야 함을 비유한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얻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도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의 인연이 있으면 도를 얻을 수 있으니, 이른바 6바라밀과 안반수의(安般守意)와 37품경이다. 이것이 도의 인연이다.
믿을 만한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을 믿는 것, 둘째는 법을 믿는 것, 셋째는 계행을 믿는 것, 넷째는 경을 믿는 것, 다섯째는 선지식을 믿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믿으면 도를 얻는다. 말에는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곧은 말[直語]이며, 둘째는 분별하는 말[分別語]이며, 셋째는 묻는 말[問語]이며, 넷째는 그치는 말[止語]이다. 곧은 말이란 지혜로운 사람이 도 얻는 인연에 따라서 바로 말하는 것이다. 분별하는 말이란 받은 가르침을 자세히 살피지 못할 경우엔 근본과 끝을 분별하여 거듭 설명해 주어야만 한다. 묻는 말이란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인연을 따라 물어주면 곧 스스로 알게 된다. 그치는 말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나 역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네 가지 인연의 질문이 있으니, 첫째는 온갖 질문[一切問]이며, 둘째는 분별하는 질문[分別問]이며, 셋째는 질문에 대한 질문[問問]이며, 넷째는 그치게 하는 질문[止問]이다. 온갖 세간은 덧없고 괴롭고 공하니 도를 행하면 편안함을 얻으리라고 말하면 이것을 당연한 말이라 하고, 온갖 질문이라고 한다. 누군가 눈에 대해 물을 때 귀를 가지고 대답해서는 안 되니, 이것을 분별하는 질문이라 한다. 누군가 흰 물건을 가지고 와서 “이건 검은 물건이다”라고 할 경우, 검은 물건을 집어 그에게 “이건 어떤 것으로 보이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이것이 질문에 대한 질문이다. 누군가 “도란 어떤 종류입니까?” 하고 물으면, “추위란 어떤 종류인가?”라고 대답하고, “뜻이란 어떤 종류입니까?” 하고 물으면, “바람이란 어떤 종류인가?”라고 대답하고, “무위란 어떤 종류입니까?” 하고 물으면, “허공이란 어떤 종류인가?”라고 대답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치게 하는 질문이다.
네 가지 전도(顚倒)가 있으니, 첫째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둘째는 괴로운 것을 사람들이 즐겁다고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만물이 모두 공한데 사람들이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넷째는 몸이 아닌데 탐욕으로 몸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전도된 견해에 떨어져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헤아리고, 괴로운 것을 즐겁다 여기며, 공한 것을 진실이라 여기고, 몸 아닌 것을 몸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이러고도 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뜻이 네 가지 전도에 떨어진 까닭에 이것이 내 몸이라고 계교하며, 자세히 더듬어 몸 안에 아무 것도 없다고 헤아리고 나서는 아무 것도 없다며 곧 공에 떨어지고, 공에 떨어지고 나선 몸이 없다고 하고, 몸이 없다고 하고 나선 곧 무위에 떨어진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 어리석음이 있어서 항상 네 가지 전도에 집착하니, 첫째는 만물이 영원하지 못한데 스스로 영원한 것이라 여기며, 둘째는 천하가 모두 괴로운데 사람들은 그것을 즐겁다 하며, 셋째는 천하가 공한 것인데 사람들은 진실이라 하며, 넷째는 몸은 몸이 아니라 보존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몸이라 여긴다. 또 다섯째는 달이 처음 솟아오를 때 절을 하며, 여섯째는 보름달이 완전히 밝을 때 꿇어앉아 쳐다보며, 일곱째는 여자가 어릴 땐 사람들에게 안기고, 여덟째는 여자가 크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네 가지 귀한 것이 있고, 또 네 가지 천한 것이 있다. 첫째는 도가 귀하고 사람이 천하며, 둘째는 보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며, 셋째는 벼슬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며, 넷째는 지혜로움이 귀하고 어리석음이 천하다.
아난이 말하였다.
“사람이 선지식(善知識)을 얻으면 불도의 반을 얻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선지식을 얻으면 곧 불도를 얻은 것이니, 선지식은 얻기 어렵다.”
무엇을 도덕(道德)이라 하는가? 믿음이 도이고, 몸과 입과 뜻을 제재하는 것이 덕이다. 사람에겐 세 가지 벗이 있어야 하니, 첫째는 부귀한 집이며, 둘째는 귀한 것을 섬기는 것이며, 셋째는 매우 존귀한 자이다. 보시하는 것을 부귀한 집이라 하고, 계행 지키는 것을 귀한 것을 섬기는 것이라 하고, 뜻을 지키고 도를 생각하는 것을 매우 존귀한 자를 섬기는 것이라 한다. 안으로 다스리는 생활[內治生]과 밖으로 다스리는 생활[內治生]이 있으니, 돈과 재물과 온갖 보물을 구하는 것은 밖으로 다스리는 생활이며, 뜻을 지키고 도를 생각하는 것은 안으로 다스리는 생활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도 항복받지 못하면서 도리어 남의 뜻을 굴복시키려 든다. 스스로의 뜻을 항복받을 수 있으면 남의 뜻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안의 힘[內力]이 있고 밖의 힘[外力]이 있으며, 안의 색[內色]이 있고 밖의 색[外色]이 있으며, 안의 식[內識]이 있고 밖의 식[外識]이 있다. 나쁜 뜻을 다스리는 것은 안의 힘이고, 지은 일에 대해 심하게 성내는 것은 밖의 힘이다. 통양(痛痒:受)ㆍ사상(思想:想)ㆍ생사(生死:行)ㆍ식(識)은 안의 색이고,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은 밖의 색이다. 뜻으로 생각하는 것은 안의 식이고, 눈으로 보는 것은 밖의 식이다.
네 가지 매우 어려운 일이 있다. 첫째 도를 얻은 사람과 자리를 함께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이른바 12현자를 말한다. 둘째 경을 듣고 마음에 새기기가 어려우니, 이른바 8난처(難處)에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근본과 같이 보기가 어려우니, 이른바 4전도(顚倒)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넷째 법답게 행하기 어려우니, 이른바 계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를 구하기 대단히 어려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늙음이며, 둘째는 병듦이며, 셋째는 고을의 관리며, 넷째는 도적이며, 다섯째는 기갈(飢渴)에 시달림이니, 이것이 도를 구하기 대단히 어려운 다섯 가지이다.
다섯 가지 어려운 일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둘째는 경을 듣기 어렵고, 셋째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넷째는 착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다섯째는 사람 몸 얻기가 어렵다.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가난하면서 보시하기가 어렵고, 둘째는 부귀하면서 참기가 어렵고, 셋째는 일과 연관되어 관리를 만났을 때 속이지 않기가 어렵고, 넷째는 단정한 여인과 같은 자리에 눕고도 뜻이 어지럽지 않기가 어렵고, 다섯째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면서 상해를 입히지 않기가 어렵다.
일곱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경을 받아들이고서 묻기가 어렵고, 둘째는 경을 듣고서 뜻을 알기가 어렵고, 셋째는 지혜가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넷째는 스스로를 가르치고 또 남을 가르치기가 어렵고, 다섯째는 스스로 편안하고 남도 편안케 하기가 어렵고, 여섯째는 자신의 뜻도 이미 안정되고 남의 뜻도 안정시키기가 어렵고, 일곱째는 항상 법을 여의지 않아 불도를 얻는 데 이르기가 어렵다.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매우 있기 힘든 열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둘째는 비록 부처님이 계신 세상을 만났을지라도 사람의 몸을 성취하기가 어렵고, 셋째는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을지라도 중심이 되는 나라에 태어나기가 어렵고, 넷째는 비록 중심이 되는 나라에 태어났을지라도 좋은 집안에 태어나기가 어렵고, 다섯째는 비록 좋은 집안에 태어났을지라도 사지와 여섯 감관이 온전하기가 어렵고, 여섯째는 비록 사지와 여섯 감관이 온전할지라도 재산을 갖기가 어렵고, 일곱째는 비록 재산을 얻었을지라도 선지식을 만나기가 어렵고, 여덟째는 비록 선지식을 만났을지라도 지혜롭기가 어렵고, 아홉째는 비록 지혜로울지라도 마음을 삼가고 조심하기가 어렵고, 열째는 비록 마음을 삼가고 조심할지라도 보시하기가 어렵고, 열한째는 비록 보시할지라도 현명하고 선하며 덕스러운 사람을 만나려 하기가 어렵고, 열두째는 비록 현명하고 선하며 덕스러운 사람을 만났더라도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가 어렵고, 열셋째는 비록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더라도 만날 기회를 얻기가 어렵고, 열넷째는 비록 만날 기회를 얻었을지라도 듣고 묻기가 어렵고, 열다섯째는 비록 듣고 물었더라도 충실하고 바르게 하기가 어렵고, 열여섯째는 비록 충실하고 바를지라도 지혜를 알기가 어렵고, 열일곱째는 비록 지혜를 알았을지라도 깊은 경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열여덟째는 비록 깊은 경을 이해했을지라도 거듭거듭 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매우 있기 힘든 열여덟 가지이다.
여덟 곳의 사람은 부처님도 어찌하지 못하니, 첫째는 벙어리며, 둘째는 귀머거리며, 셋째는 지옥에 태어난 사람이며, 넷째는 아귀로 태어난 사람이며, 다섯째는 축생으로 태어난 사람이며, 여섯째는 변두리에 태어나 법을 모르는 사람이며, 일곱째는 수명이 긴 28천(天)이며, 여덟째는 배우고도 부지런히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여덟 곳에 태어난 사람은 부처님도 어찌하지 못한다.
제각기 자기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 5백 명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너희들이 정말 훌륭하다면 나의 뒤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모두들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곧장 불속으로 들어가시자 5백 명은 모두 멈춰 섰고 아무도 감히 따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람은 만나기 참으로 어렵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부처님께선 착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시는데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부처님께 대답하셨다.
“천하 사람들이 괴로워하므로 내가 가르칠 뿐이다.”
그가 다시 물었다.
“사람에게 마음이 있으니 마음대로 하게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그 천하 사람들의 방자한 마음을 꺾으려고 나는 백 겁 동안을 머물러 도를 얻었다.”
도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꺼이 보시하고 남기고자 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들으려고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믿기만 하는 것이며, 넷째는 계를 지니기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행하려고만 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지혜를 배우려고 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벗어나려고만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해탈을 얻고선 다음 생애에는 지혜를 배우려고만 하고, 또 다음 생애엔 행하려고만 하고, 또 다음 생애엔 계율을 지키기만 하고, 또 다음 생애엔 믿기만 하고, 또 다음 생애엔 들으려고만 하고, 또 다음 생애엔 보시하려고만 한다. 보시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들어야 하며,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믿어야 하며, 믿기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계율을 지켜야 하며, 계율을 지키기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행해야 하며, 행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지혜로워야 하며, 지혜롭기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벗어나야 하니, 이 일곱 가지 일은 아울러 행해야 한다.
다섯 가지 총체적인 쇠퇴가 있다. 첫째 옛날 사람들은 오래 살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단명하며, 둘째 옛날 사람들은 복숭아꽃 빛깔처럼 단정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추악하며, 셋째 옛날 사람들은 도를 얻는 자가 많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얻지 못하며, 넷째 옛날 사람들은 널리 통달하여 경의 뜻을 잘 알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통달해 알지 못하며, 다섯째 옛날 사람들은 편안했는데 지금 사람들은 질병이 많다. 이것이 다섯 가지가 총체적으로 쇠퇴한 세상이다.
나이가 많은 한 도인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여서 재물이 한량없었고 보시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너무 많이 보시하는 것 아닙니까?”
도인이 대답하였다.
“내가 부처님께 듣기로, 인간이 생사를 왕래하며 세상에서 지낸 날은 헤아릴 수 없다고 하셨소. 지금 내가 한 보시는 하루에 한 푼도 되지 못하는데 어찌 많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선 말씀하셨다.
“사람이 천하의 온갖 보배를 다 얻어도 부처님의 한 말씀을 듣는 것만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재산이 많더라도 세간을 벗어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산중에 꼬리에 긴 털이 있는 게조(揭鳥)라는 새가 있다. 그 새는 털이 닿는 곳에는 다시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사랑스런 그 털이 빠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냥꾼에게 잡혀 몸이 갈가리 찢기는 신세가 되니, 바로 털 하나 때문이다. 사람이 뜻과 생각을 산만하게 하고 재산을 아끼고 사랑하면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니, 탐욕과 음욕 때문이다. 사람이 살림을 모으는 것은 마치 벌이 꿀을 만드는 것과 같다. 온갖 꽃에서 꿀을 채취하며 수많은 날을 고생해 만들고 나면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빼앗아 가버리니, 자기는 먹지도 못하면서 죽을 고생만 한 것이다. 인간 역시 동쪽 서쪽으로 달리며 마땅한 것을 구하고 마땅한 일을 하며 재물과 보배를 모으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한다. 그러나 목숨이 다하면 다른 사람이 그 재물을 가지게 되고 몸으로 지은 무거운 죄만 남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진흙으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과 같아 배를 띄우자마자 곧 무너져버린다. 사람의 몸 역시 진흙으로 만든 배와 같아 오래 가지 못하니 속히 도를 행해야 한다.
황금은 네 가지 방법으로 시험하니, 첫째 태워보고, 둘째 갈아보고, 셋째 두드려보고, 넷째 달궈보는 것이다. 이에 빗대어 사람을 시험하는 방법에도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홀려보고, 둘째는 함께 일을 해보고, 셋째는 색(色)을 대해보고, 넷째는 제지했을 때 그치는지를 보는 것이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데 필요한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함께 지내보는 것, 둘째는 오래도록 함께 지내보는 것, 셋째는 함께 얘기를 나눠보는 것, 넷째는 함께 일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알 수 있다.
도인인지를 알아보는데 필요한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나쁘고 어지러운 말을 들어도 곧 생각을 돌리는 것, 둘째는 남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는 것, 셋째는 자신의 논리에 빠지지 않는 것, 넷째는 능히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스스로를 보호하는 도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는 네 가지 인연으로 복을 받으니, 첫째는 처소이며, 둘째는 때이며, 셋째는 업이며, 넷째는 스승이다. 사람이 머물 곳이 있어 편안하고 뜻대로 이루어지면 이것이 처소이다. 30세가 되어야 부자가 될 사람은 15세에는 아무리 구하여도 얻지 못하며 30이 되어야 비로소 얻으니, 이것이 때이다. 어떤 사람은 흰 구슬이나 다른 물건을 사야만 이익을 얻으니, 이것이 업이다. 분별하여 경을 말해 주는 밝은 사람[明人]을 만나면 마음이 열려 이해하게 되니, 이것이 스승이다.
누구보다 힘세고 용감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3형제가 함께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두 형은 먼저 누웠고 작은 동생만이 홀로 앉았는데, 불길(不吉)이라는 벌레가 와서 그의 볼기를 물었다. 동생이 손가락으로 짓누르자 벌레는 도리어 커졌고 때리면 때릴수록 더 커졌다. 그 사람은 성이 나서 벌레를 잡아 발로 짓밟았으나 지칠 때까지 해도 벌레는 더욱 커지기만 해 그 사람은 곧 그만두었다. 초저녁이 지나고 가운데 형을 불러 일어나자 벌레가 다시 물었다. 형도 역시 동생처럼 벌레와 싸웠으나 벌레는 더욱 커져 집채만 해졌다. 이렇게 지칠 때까지 하다가 또 그만두었다. 한밤이 지나고 다시 큰 형을 불러 일어나 앉자 벌레가 또 물었다. 큰 형 역시 손가락으로 문질렀으나 벌레는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형이 꾀를 내어 독으로 덮자 눈 깜짝할 사이에 벌레는 독을 벗어나 달아났다. 다음 날이 밝았는데, 두 동생은 끝내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형은 두 동생이 벌레와 싸운 것을 알면서 물었다.
“왜 일어나지 않느냐?”
두 아우는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였다. 형이 말하였다.
“벌레와 싸우느라 피곤하냐?”
아우들은 그렇다고 하였다. 형은 아우들에게 말하였다.
“다음에 혹시 또 불길이라는 벌레가 나타나거든 독으로 덮기만 해라. 손가락으로 짓눌러선 안 된다.”
비유컨대 어리석은 사람은 상대를 만나면 곧 성을 내어 그 까닭에 죄를 얻는데, 이는 그 동생들이 벌레와 싸우다 스스로 지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상대가 오는 것을 보면 문득 피해 복(福)을 얻으니, 마치 불길이란 벌레를 독으로 덮는 것과 같다.
옛날에 어떤 도인이 왕에게 경을 설하자 왕이 물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많은 사람이 도를 얻었는데, 지금은 부처님의 경을 똑같이 말해도 사람들이 도를 얻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도법(道法)을 가지고 가기라도 한 겁니까?”
도인이 대답하였다.
“비유컨대 천하에 맛있기로 포도주(葡萄酒)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한 되를 마시면 곧 취합니다. 그러나 한 되의 물을 갖다가 한 되의 술에다 섞으면 다 마셔도 취하질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의 마음상태를 알고 경을 말씀하셨으니, 마치 사람들이 한 되의 술을 마시고 곧 취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상태를 알고 경을 말씀하신 것은 병에 맞추어 약을 주신 것이므로 많은 사람이 도를 얻었던 것입니다.”
어떤 국왕이 여러 비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때 천신이 내려와 왕에게 손으로 가리켜 보이며 ‘이 사람은 아라한(阿羅漢)을 얻었고, 이 사람은 보살이고, 이 사람은 도의 자취를 얻었고, 이 사람은 계행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왕은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평등이 가지고 다른 마음을 갖질 않았다. 그러자 모든 천신들이 그를 대신해 환희하였다.
어떤 국왕이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값을 두고 어떤 사람과 경쟁하였는데, 왕은 더욱더욱 높은 값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때 그 사람이 말하였다.
“저는 지금 가졌던 재물과 처자를 팔고, 내 몸까지도 남의 종이 되어 부처님을 목욕시키겠습니다.”
그러자 왕도 어쩔 수 없었다.
아육왕(阿育王)은 8만 개의 탑을 세웠는데, 목숨을 마치려 할 때 보살과 아라한 5백 명이 함께 모여 보살피고 또 경을 읽어 주었다. 그러나 어떤 부인도 가까이 오거나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 왕을 하늘에 오르게 하고자 함이었다.
어떤 작은 나라의 왕이 늘 전쟁을 일삼자 큰 나라 왕이 생각하였다.
“몸을 망치고 죄악을 얻는 것은 모두 탐욕에서 생긴다. 나는 차라리 나라를 그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
큰 나라의 왕은 나라를 버린 채 다른 나라로 가서 평민이 되었다. 오랜 뒤에 옛 나라로 돌아오자 어떤 백성이 고자질하고 “대왕께서는 사람들을 보내 그를 잡아 죽이소서” 하였다. 죽음에 임한 그는 아들을 불러 놓고 한 마디 유언을 남겼다.
“절대 잊지 말거라. 너는 원수를 생각지 말고 반드시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국왕이 평등하게 다스리지 않고 백성들을 수탈하며 그릇된 법을 받아들이자 하늘에서 비가 계절에 맞지 않게 내렸다. 어떤 여인이 말하였다.
“하늘에서 비가 때맞춰 내리지 않는 것은 왕의 정치가 평등하지 못한 까닭이다.”
왕은 이 소문을 듣고 곧 여인을 불러 비를 청하게 하였다. 그 여인은 세 개의 그릇을 땅에 놓고 가운데 그릇에만 비가 내리기를 소원하였다. 또 차례차례 다른 그릇도 그렇기를 바랐더니, 모두가 소원대로 되었다. 왕이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되는가를 묻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의 지극한 정성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땅이 있어야 만물이 있듯 사람에게는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 도가 있다.”
어떤 국왕이 성을 나섰다가 비할 데 없이 단정한 여인을 보았다. 왕이 그 남편을 죽이고 그 여인을 가지려고 마음먹자 곁에 있던 신하가 말하였다.
“죽여서는 안 됩니다. 상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국왕은 그 남편에게 관직을 내리고 금가락지를 주면서 말하였다.
“가락지를 잃어버리면 너를 죽이겠다.”
그리고 왕은 몰래 그 여인을 불러 그 가락지를 훔쳐 오게 하였다. 뒷날 왕은 그 남편을 불러 가락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물었다. 남편은 찾았으나 알 수가 없었다. 왕은 곧 신하에게 죽이라고 명하고 마지막으로 맛좋은 음식을 먹게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두려워서 먹지를 못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그대는 곧 죽는데 왜 먹지 않는가?”라고 하자 남편은 마침내 생선 하나를 먹으려 하였다. 그때 고기 배에서 가락지를 얻었다. 이것은 모두 지극한 정성의 결과이다.
어떤 가난한 도인이 10만 냥을 가지고 살림을 하는데, 먼저 3만 냥은 보시를 하고, 나머지 돈으로 장사를 떠났다. 그러나 도중에서 일행과 함께 도적에게 빼앗겼다. 그러자 왕이 곧 진기한 보물들을 나누어 주었는데, 큰 주머니와 작은 주머니가 있자 다른 사람들은 제각기 큰 주머니를 가지고 갔다. 도인은 ‘나는 잃은 돈이 적으니 큰 주머니를 갖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는 작은 주머니를 가지고 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온통 하얀 진주가 가득해 팔아서 6천만 냥을 얻었다. 지극한 정성으로 욕심내지 않은 까닭에 이렇게 진귀한 보배를 얻은 것이다.
옛날에 어떤 국왕이 나라 안의 모든 맹인을 불러 놓고 코끼리 우리에서 코끼리를 구경시켜 주었다. 그 중에는 코끼리의 발을 만진 이도 있고, 혹은 코끼리의 귀를 만진 이도 있고, 혹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진 이도 있었다. 그 뒤에 그들은 서로가 물었다.
“코끼리는 어떤 것인가?”
코끼리의 발을 만진 이는 “코끼리는 큰 기둥과 같다”고 하고, 코끼리의 코를 만진 이는 “코끼리는 새끼줄 같다”고 하고, 코끼리의 귀를 만진 이는 “코끼리는 키[籏箕]와 같다”고 하고, 코끼리의 꼬리를 만진 이는 “코끼리는 큰 지팡이 같다”고 하면서 맹인들은 제각기 자기의 뜻을 고집하며 다투었다. 비유컨대 사람들이 제각기 경을 조금 보고는 그 뜻도 깨닫지 못하고서 스스로 크게 알았다고 하는 것이 이와 같다.
어떤 국왕이 성 밖에서 크게 음악과 연희를 베풀자 온 나라 백성이 모두 구경하러 나왔다. 성 안 어느 집에 늙은 아비가 있었는데 병이 들어 걸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함께 부축해 데리고 나섰으나 성을 나서자마자 곧 멈추었다. 나무 아래에서 자기는 갈 수 없다고 말하고는 가족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가서 구경하고 돌아올 때 나를 데리고 가거라.”
이때 하늘의 제석(帝釋)이 한 도인으로 변화하여 그 옆을 지나면서 병든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그대의 병을 고쳐 주리라.”
병든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여 곧 일어나 그를 따랐다. 제석이 그를 데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궁전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금ㆍ은 등 좋은 물건들이 매우 많았다. 누군가 말해 주되 “맘에 든다고 얻으려 하지 말고 병[匈甁]을 구하라” 하므로 병든 사람은 제석의 앞에 갔을 때에 말하였다.
“저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이 병을 갖고 싶으니 저에게 주십시오.”
제석은 곧 주면서 병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 안에 그대가 소원하는 물건이 들어 있다.”
병든 사람이 가지고 돌아와 집안사람들과 함께 뒤져 보니, 마음속 소원대로 금ㆍ은ㆍ보배들이 모두 뜻대로 얻어졌다. 그는 안팎의 일가친척들을 모두 모아 서로 즐기며 취하고 배불리 먹었다. 나중에 병을 들고 뛰면서 “내가 네 은덕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뛰기를 멈추지 않다가 그만 땅에 떨어뜨려 깨져버렸다. 그 후로는 원하는 것을 다시 얻을 수 없었다.
세간에 지혜로운 사람이 수없이 많지만 미륵(彌勒)만 한 사람이 없다. 미륵도 오히려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부처님께서도 도를 얻으시고 난 뒤 앉아서 안반수의(安般守意)를 행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싫어하지 않음으로써 부처가 될 수 있었다. 뒷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배워야 불도를 얻을 수 있을까?”
이미 계행을 지키는 이는 다시는 죄악을 짓지 말아야 한다. 믿지 않는 마음이 있으면 다시 계율을 범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염라왕(閻羅王)이 물을 때 “저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염마왕이 다시 물을 것이다.
“네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있겠느냐?”
어떤 거룩한 이가 도적떼에게 욕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왜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 거룩한 이가 대답하였다.
“내가 인부[人客]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제가 당신을 위해 인부를 제공하겠습니다.”
거룩한 이가 말하였다.
“그만 두라. 나는 지금 이렇게 병마(兵馬)를 갖추었다. 20년 동안 도적을 죽이니 그들은 병이 들어 죽었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당신이 죽이지 않으면 지금 도리어 죽게 될 겁니다.”
거룩한 이가 대답하였다.
“나는 병마를 갖추었다.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니, 이것이 병마를 갖춘 것이다.”
그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하나를 알면 만 가지를 아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하나라 함은 뜻이 없음[無意]이다. 무념(無念)이면 만 가지 일이 저절로 끝난다. 뜻에 백 가지 생각이 있으면 만 가지 일이 모두 잘못된다.”
어떤 도인이 밤길을 앞서 가는데 도를 얻지 못한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뒷사람이 의심을 품자 앞 사람은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 끝에서 불을 밝히고, 또 열쇠로 문을 열었다. 뒷사람이 그때서야 깨닫고 도인임을 알았다.
경을 말하는 데 여섯 가지 쇠퇴함이 있다 하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일곱 가지 쇠퇴함이니, 집이 쇠퇴하는 것은 쇠퇴함이 아닌가?”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다시 너에게는 한 가지 쇠퇴함이면 충분하다고 하겠으니, 어리석음이 큰 쇠퇴함이다. 무슨 까닭인가? 남은 몸에 대해 말하는데 도리어 집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것이 어리석음이다.”
어떤 사람이 바다에 빠졌는데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었다.
“바닷물을 다 마시면 걸어 나올 수 있다.”
그 사람은 대답하였다.
“내가 이미 마셔 보았지만 뒤에서 물이 다시 밀려오더라.”
세속은 이와 같이 앞뒤로 끊임없이 닥쳐와 다함이 없다.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데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그 사람이 단정한 까닭이며, 둘째는 지난 세상부터 사랑하던 까닭이며, 셋째는 명예가 높은 까닭이며, 넷째는 깊은 경을 듣고자 함이다. 편함[安]은 옳은 법을 아는 것이며, 안온함[隱]은 스스로를 갈무리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갈무리한다[自藏]는 것은 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간에는 무릇 천 여덟 가지의 길이 있으나 부처님은 모두 아시니, 전 세상에 이미 모두 배운 것이다. 그것들로는 도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지혜를 구한 것이다.
그 사람이 물었다.
“사람이 말할 때 소리가 먼저 생기는가, 뜻이 먼저 생기는가?”
대답하였다.
“뜻이 먼저 생긴다. 무슨 까닭인가? 뜻은 소리를 깨닫지만 소리는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구슬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다 구슬을 잃었다. 그 사람은 곧 나무바가지[木斗]를 가지고 물을 퍼서 언덕 위로 버렸다. 해신(海神)이 물었다.
“네가 언제까지 퍼야 그 물이 없어질까?”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죽으나 사나 끝까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해신은 그의 원대한 뜻을 알고 구슬을 꺼내 그에게 돌려주었다.
『삼혜경』 1권(ABC, K1025 v30, p.590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