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6일 가해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마태오 13,1-9
- 전삼용 신부
농부는 씨를 아끼지 않는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저는 오늘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분명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땅은 세속, 육신, 마귀를 이겨내고 주님 뜻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땅입니다. 우리는 가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더 많기에 상처받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물론 그런 사람이 많을지라도 밭 하나에서 내가 고생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확신을 줍니다. 만약 한 본당이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씨를 뿌리지 않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씨뿌리는 농부는 자신의 씨가 새에게 먹히고 햇볕에 그을리고 가시덤불에 숨 막혀 죽어도 결국엔 몇십, 몇백 배로 돌아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마약 중독자를 거쳐 늦은 나이에서야 0원에서 조 단위의 부자가 된 그랜트 카돈은 라스베가스 노숙자들 에게 다가가 부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안녕하세요. 부모님이 돈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알아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부모님은 돈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셨죠?” “저축하라고 하셨죠.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저축한 적이 없죠.” “그거 말고 다른 조언은 없었나요?” “아무것도 가르쳐 준 게 없어요.”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은요?” “없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제가 하는 말의 문장을 끝맺어주세요.” “티끌(10원)을 모아?” “태산(부자) 된다.” “돈은 절대로?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 카돈은 말합니다. “이것 봐!, 온 세상이 돈을 이렇게 배웠어! 부자들은 모두?” “나쁜 사람이다…. 대부분은요!” 그는 노숙자들에게 계속 이런 질문을 하는데 편집을 그렇게 해서 그러는지 몰라도 이들 대부분의 생각은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론에 무슨 돈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냐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할 때 십일조를 내라고 하면 대부분 신자들이 안 좋은 감정을 가집니다. 우리가 개신교냐?, 혹은 돈은 악의 근원인데 어떻게 제단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듯이 말입니다. 세상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돈이나 말씀이나 복음이나 다 같은 법칙에 적용받습니다. 모으면 똥이 되지만 뿌리면 거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딸에게 돈은 그저 은행에서 찍어내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도 돈의 가치에 집중 했을 때 망하고 고난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는 연말이 되면 모든 헌금을 부동산 등에 투자합니다. 돈은 인플레이션이 오면 정말 휴지가 될 수 있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을 계속 뿌려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잃는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이것 때문에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카돈은 어린 딸에게 영업을 가르치고 강연도 시킵니다. 재벌의 어린 딸이라면 미래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서 교만할 만도 할 텐데 딸은 실패를 묵묵히 참아냅니다. 어눌한 강연에 청중들이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씨뿌림을 멈추어서는 안 됨을 알려줍니다. 카돈은 딸에게 자기 강연의 티켓을 팔도록 전화합니다. 아마도 이전에 왔던 사람 중의 이번에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딸은 처음엔 어눌한 말투로 왜 이번엔 티켓을 사지 않았느냐고 전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찮게 한다고 끊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전화기를 꺼버립니다. 어린 딸은 그래도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전화를 합니다. 18번의 전화를 했는데 그 중 한 사람만이 티켓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일일이 전화를 걸게 시켜 4,000달러 좌석을 팔게 합니다. 직원으로 치고 10%, 곧 400 달러의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이 한 통화의 성공을 위해 그녀는 열일곱 번을 실패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카돈은 400달러를 열일곱으로 나누면 전화 한 통화에 22달러씩 버는 것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절대로 거절당하는 것 때문에 씨를 뿌리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씨앗을 아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이 스며들지 않는 땅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명만 받아들여도 그 사람이 성모 마리아일 수도 있고, 많은 성인을 낳은 소화 데레사의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아니면 수십만 명에게 복음을 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은 또한 다시 서른 명, 예순 명, 백 명에게 씨를 뿌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좋은 땅이셨기 때문에 온 세상에 사랑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우리가 몇 명을 위해 믿음의 씨를 뿌리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땅이 몇 배의 열매를 맺느냐가 결정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복음의 씨앗을 돈처럼 아끼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 성당/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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