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실 내 용
저는 장애로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나이를 먹고 장가를 가지 못해서 국제결혼을 결심하고 1살 많은 친구와 필리핀으로 갔어 2 ㅡ3명 여성과 맏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맏선을 본 여성들이 내 몸은 보던니 다 그절하고 뜬났습니다
4번쩨 본 여성이 지금 챨리 지금 아내 입니다. 아무련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저와 결혼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꿈꾸던 여성과 많이 틀렸습니다. 피부도 캅아고 나이도 어리고 학벌도 등등, 내가 좋아하는 것 보다 미래에 아내가 남편을 좋아하면 행복하게 잘 살겠군나“! 결심을 하고 제가 내 대해서 소개를 했습니다. "나는 가진것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찰리는 그런 것 신경을 안 썬다고 했습니다
다음날에 결혼식을 하고 신혼 여행을 떤났습니다. 그런데 잠자리를 그부를 해서 현지 체임자한데 물어 보았습니다. 필리핀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는 잠자리를 잘 안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갑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신혼 여행을 갔다 와서도 잠자리 개속 그부를 해서 나도 화가 났어 현지 체임자한데 전화를 했습나다. 현지 체임자한데 찰리;한데 통화를 끝나고 찰 리가 울면서 저에게 잠자리를 요구를 했습니다. 저도 마음을 편치 안았습니다. 그리고, 10일동안 필리핀에 있다가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매달 5.000페소 그 나라 월급 수중 맡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4개월 있다가 12년 7월 27일날 찰리도 한국으로 들어 왔습니다 일주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그 찰 리가 안니고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깨어려고 집안 사림도 잘 안하고 아침에 일하려 나갈때도 일어나지도 안고 필리핀에서 약속과 전형 달랐습니다 1달 2달 전형 달라진 모습을 보지지 안았습니다.
그때서야 말싸움을 조금식(갈등)했습니다. 살기 싫다고 집에서 나갔습니다. 저는 경찰서에 가출 신고를 몇 번이나 했습니다. 배 속에 아이도 있는데 저는 말도 못하고 스텔레스를 수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달래서 집에 될리고 오면 그 때마다 필리핀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를 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없이 필리핀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 주었습니다. 몇일 있다고 또 집 나가고 그런 생활을 10번 이상 했습니다. 자기는 죽겠다고 칼을 자기 몸에다고 위험을 주었습니다. 그런 생활이 4 - 5개월이나 흘려서 많은 사람들이게 피해만 갔어 자기 나라로 보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집으로 들리고 와서 “너 짐 다 체결라”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서야 예정처럼 말성도 잘 안 불리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빨래도 하고 집안 일도 하고 별일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빨래를 할 때마다 락스 냄새 온 집안 진동을 나게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배 속에 아이도 있는데 락스는 아이에게 많이 아프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대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습니다. 빨래를 할 때마다 락스를 사용을 했습니다. 내 마음 속으로 “아이가 무사이 태어나야 할 된테데”라고 기도 했습니다. 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산모는 많이 운동을 해야 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도 아무련 소용이 없었습니다. 밥 먹고 자고 또 밥 먹고 자고 또 같은 반보이고 다른 사람 말을 전형 듣지도 않고 임신 6개월이라는 새월이 흘렸습니다. 병원에서 3D 초음파를 하니까 아이 한쪽 페가 없고 그 자리에 혹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도 받고 아이 태어날 때 수술을 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5개월 동안 아이 분유 톡수분유를 먹었어습니다. 새월이 홀려 1년이 지났어 아이도 큰 수술을 받고 퇴원도 하고 집에서 1년 동안 아이만 보고 있습니다. 다문화 센터 한글 선생님께서 찰리(아내)를 가르키려고 몇 번이나 공부를 시도록 했습니다. 선생님 도저이 못 가르키겠다고 다른 선생님 알아바라고 했습니다. 두 번쩨 선생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3번쩨 선생님도 마찬가지여고 선생님께서 “이련 에기 엄마는 내 태어났어 처음이다고”말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자도 포기를 했습니다.
진주 내에서 찰리 아는 사람을 다 알겁니다. 고집도 쌔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그러다가 아이 2살 때 어린이 집에 보내놌고 돈 벌리로 나갔습니다. 돈 벌리는 다 필리핀으로 송금을 시켜 주고 집에는 생활비 도착 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일하려 왔나 살려고 왔나“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외박도 가끔식 하다가 시간이 지나수록 와박도 자주하고 부부관게도 말어져 갔습니다. 심지어 자다가 전화를 받고 친구가 부부싸움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밥 10시에 나갔어 아침 6시에 들어왔어 누워 자고 이런 생활이 반복 되었습니다. 밖에서 술을 맛시고 뼉을 있는 상태에서 내 친구하고 2-3번에 내 친구하고 가서 업고 집에 왔습니다 술자라 갈 때마다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새벽에도 술 맛있고 남자들이랑 돌아 단니고 그리고, 집안 대소사 때마다 일이 있다고 빠지고 또 빠졌습니다.
법원에서 온 내용을 지인들에게 보여 들이던만 “참 삼육 소설”같은 내용을 보냈다고 말을 했습니다. 온 각 거짓말을 다 써서 보냈습니다. 진실된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피 등어리(아이)를 벌리고 어떻게 도망을 갈수가 있는 참 연구 대상자입니다. 지금 와서 비자 만기 된니까 아이 핑기를 되고 한국에 게속 남아 있겠다는 속샘입니다. 자기는 돈 만 벌고 필리핀으로 송금만 시키고 하고 싶은 것만 할 생각입니다.
반 박 내 용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고 말을 안했고 자는 기초수금자입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시장에서 알바를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장거리 꼬리차도 2년 넘에 했습니다. 수금비하고 알바비 더하면 매월 200만원 됩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주시 금산에 시골 집이 있는데 빌라에서 살기 싫어면 금산 집에 들어가 살자고 찰리에게(아내)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싫다고 했습니다.
음주는 일주일 소주 한병 맛입니다. 저는 미래를 생각해서 안써고 안입고 저금을 했습니다. 자식한테 튼튼한 아버지로서 조금식 저금을 합니다. 그래도 내 돈으로 쌀도 사고 반찬도 사고 아내에서 한달에 20만원씩 주었습니다. 물른 아내가 일을 안하때만 줍니다.
부부관계는 아내가 일하려 나갈부터 점점 머려지게 되었습니다.(4년 전부터)
제 반박내용이 삼척동작들이 잘 알겁니다. 지금 아내는 한국에 살려고 온 것이 아니고 일하려 온 목적입니다.
제가 찰리(아내)에게 속았습니다. 제 말을 다문화 센터도 알고 지인들도 다 압니다. 찰리는 살려고 저와 결혼을 했는 것이 아니고 일하려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절대로 못 만나게 할 것이면 저랑 아이 미래에 희망도 없습니다. 그리고 위자로까지도 청구를 합니다
한글 선생님께서도 찰리에게 몇 번이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찰리는 아이를 벌리고 집에서 나갔습니다. 폭해 등등을 삼육소설입니다 말도 안되 내용을 지어 내었습니다. 무거운 벌를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kkimhnan@네이버,com
첫댓글 네이버 번역? 구글번역?
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