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건 움직이는 일인데... 며칠 걷기를 마다했더니만 몸살이 날 지경이다. 어디를 가고 싶어도 허리 아프고 다리 아파 선뜻 길을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여 한참 궁리를 했다. 그리고 집을 나선 건 오후 4시쯤. 서울에 닿을 땐 적당히 어둠이 밀려올테니까 지금이 適時.
강남을 지날 때 석양은 빌딩 유리창을 붉게 물들이더니 한남교를 건널 때는 해는 서쪽에 몸을 숨겼다. 금새 어두워졌다. 바람도 차가워지고.
딱히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서울 한복판에 섰다. 서먹한 나의 표정을 어둠이 가려주지 않았다면 이 처량한 늙은이의 모습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지... 다행이다. 어둠이 감싸준 겨울밤에, 나는 고독한 산책을 했다. 실은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건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고 기도하는 일은 영혼을 맑혀주는 일이다. 나는 영혼이 깃들 수 있는 몸을 챙겨야 한다고 되뇌이면서 서울시청 광장에 당도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일은 얼마나 큰 축복인데....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멈췄으나 스케이트장의 즐거움이 하얀 不夜城을 이룬다.
물! 여름에는 강이나, 바다에서 노니는 사람들이 겨울엔 눈이나 어름 위에서 즐긴다. 그렇다. 물과 사람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그래서 이렇듯 사람은 어떤 모양이로든지 물과 가까이 지내고 있나보다.
그러는 나는 수영도 못하고, 스케이트도 못하니 그저, 물이라면 겨우 맥주를 좋아하는 처지...이래도 되는 걸까?
겨울의 밤공기는 차다. 자칫 감기라도 걸리면 아니되겠기에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눈부신 불빛때문이었는데 지난해보다 경기는 나쁘다는데, 어찌 불빛은 더 화려해졌는지 모르겠다.
을지로 지하도에서 들리는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리도 무섭고 지겨운 계단의 공포를 잊었다. 수많은 계단을 딛고 분당행 버스를 탔다.
혹, 곁에 좋은 친구가 있었다면 다리도 쉴 겸 선술집에 들어가 따끈한 청주라도 마셨을 것을.
그러나, 형상 없고, 소리 없는 님과의 대화를 하며 나는 어두운 일요일 밤거리를 걸었다. 그건 12월 14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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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대 그리고 나 원문보기 글쓴이: 보견심
첫댓글 보견심님 파이팅!!!!!
감사! 파이팅하려고 오늘 병원에 가서 관절에 주사 맞고 왔답니다. ㅎㅎ
안녕하세요?전 용인 삽니다 분당에 살았더라면 같이 동행해 드렸을거에요.술도 한잔 ...멋지십니다.주변에 혼자 영화도보고 음악회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다니는일 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건강하세요.
연산홍같은 붉은 가슴을 지니고 계실 영산홍님....고마워요.
다소 쓸쓸하면서도 담담한 산책, 청주보다 더 맛있었을..
보견심님의 걸음걸음 뒤따라 가면서 가만히 겨드랑이을 파고 들고 있습니다. 제가 함께 동행 해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쉽지만 모시고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네요..
그럴 날이 손꼽아 기다려집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도회지의 밤은 저렇게 생겼군요.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풍경 같아서 한참을 보았습니다.
보견심님~~ 정말 멋지게 사십니다. 관절이 좋아지셔서 더 좋은 산책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이 사진과 글을 보니 저도 한 밤의 불빛산책을 하고 싶습니다.
벌써 시내에....츄리가 저리 영롱하네요^^ 딱히 볼일 없어도 길 나서면 보는 눈요기가 또한 멋이라지요^^ 한해가 저무는 징후가 곳곳에....그 사이로 찬찬히 걸으시면서 여러 생각도 하시고^^ 작은여행이셨습니다^^
서울은 겨울 맛이 보이네요. ㅎㅎ 여긴 청주는 덜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