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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
안가근시(晏家近市)
재상 안영의 집이 번잡한 시장 근처에 있다는 뜻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며 권력자에 굴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신하의 모습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晏 : 늦을 안
家 : 집 가
近 : 가까울 근
市 : 저자 시
중국의 역대 재상 중에서 안영(晏嬰)은
관중(管仲)과 함께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후대에까지 존경을 받는다.
둘 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의 재상으로
100년 이상 앞선 관중이 환공(桓公)을
첫 패자(覇者)로 올리는 데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면
안영은 세 임금을 모시며 나라를 바르게 이끌었다.
관중이 목적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직진한 데 비해 안영은 몸소 검소하게 생활하며
작은 몸집에도 권력자에 굴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거인으로 안자(晏子)라며 존경받을 정도였다.
안영에 따르는 여러 고사 중에서 재상 신분임에도
그가 사는 집(晏家)은 초라하고 시장 가까이
번잡한 데 있었다(近市)는 이야기부터 보자.
안영이 모신 제나라 세 군주는 영공(靈公)과
장공(莊公)과 경공(景公)이다.
경공은 사냥을 좋아하고 세금을 무겁게 매겨
사치에 빠지고 혹형을 일삼아 어지러웠다.
장공의 횡사 후 은거하던 안영을
다시 불러들인 뒤 차츰 안정을 찾게 됐다.
경공은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안영의 집이
초라하고 비좁으며 시장과 가까워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바꿔 주겠다고 했다.
안영은 임금의 신하였던 부친에게서 물려받아
분에 넘치게 살고 있다며 사양한다.
"게다가 소신은 시장 가까이에 살아
조석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니
그것은 소인의 이익입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전하는 내용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안영은 검소한 삶이
생활화되어 있어 불편을 득이라 본 것이다.
안영의 재치 넘치는 간언으로
혹형을 폐지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경공이 시장 가까이 살고 있으니
물건의 비싸고 싼 것을 아는지 물었다.
당연히 안다며
"의족은 비싸고 보통 신발은 쌉니다고 답했다.
(踊貴屨賤/ 용귀구천)"고 답했다.
뛸 용(踊)은 옛날 다리를 잘린 사람이
대신해 신던 의족을 말한다.
당시 경공은 형벌을 남용하고 있어
죄인의 발꿈치를 베는 월형(刖刑)이
가혹하다는 진언이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처형을 완화한 것은 물론이다.
권세가 높을수록, 돈이 많을수록
더 높이 더 넓게 호화주택을 가지려는 요즘
사람들에겐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안자의 상상이 안 되는 검소한 생활과
젠 체하며 앞으로 나서지 않는 태도를 말하는
성어를 더 보면 명성을 실감한다.
안영호구(晏嬰狐裘)와
안어양양(晏御揚揚)이 그것이다.
안자는 재상이 된 뒤에도 한 벌의 여우갖옷을
30년이나 계속 입어 검소함으로 칭송을 받았다.
또한 안자의 수레를 끄는 마부가 키 크고
늘씬했던 모양인데 재상보다 제가 잘나 모두
엎드리는 줄 알고 거들먹거리다
부인의 이혼 요구를 받은 뒤 고쳤다는 이야기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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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