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요한 1,35-42
이 성서 구절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자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의 요구에 무엇이라 말씀하지 않고 직접
“와서 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갔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진정 메시아이심을 여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여쭈었으니까... 예수님께서 나에게 똑같이 물으시자,
예수님께 가서 묻는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인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 대해 묻습니다.
곧, 이 물음은 세례자 요한의 말을 믿는다면,
바로 ‘너희가 찾는 메시아이고, 믿지 않으면, 메시아가 아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르심에 대한 응답의 결단은 우리가 할 수 있도록...
각기 자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맡겨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따르라는 강요 같은 부르심이 아니라,
당신에게 와서 직접 보고, 느껴서 따를 만 한지를...
자신의 인생, 자유, 목숨을 걸 수 있는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면, 충실하고 굳건하게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학식 있고 똑똑한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소박하게 당신을 따를 사람을 부르는 것입니다.
곧, 어떠한 이익이나 목적을 얻기 위한 응답이 아니라,
진지한 부르심에 대한 가식 없는 응답,
엄마의 부르심을 듣고 ‘네’ 하고 달려가는 아이의 응답 같은 그런 응답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부르심의 의미를...
“와서 보아라.” 라는 말씀의 참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르심은 베드로의 부르심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베드로는 단순하고,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평생을 고기잡이로 보낸 뱃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는 솔직함과 굳건함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따르는 것을 변치 않고 충실하게 지킬 믿음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이런 베드로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첫 대면에서 ‘게파 곧 반석’ 이란 이름을 주십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 어떤 역할, 일에 대한 부르심이라 하더라도..
강요나 압박이 아니라, 불림 받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응답을 전제로 합니다.
이 성서 구절을 묵상하는 내내,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자유롭게 우리를 부르시고,
자유롭게 응답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멘.
서울대교구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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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영 베드로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요한 1,35-4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뒤따라오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고 계신 곳을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사시고 어떤 음식을 드시며 어떠한 일상을 지내고 계신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고 따르고자 할 때 그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원의가 생깁니다.
우리가 성경 공부를 하거나 성당에 가서 봉사를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모시고 그분을 만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그분의 축복을 가득 받고 싶어서 성당에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따르려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분의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라고 대답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찾는 것은 삶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입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세상의 종말에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천지 창조 이전부터 사랑하셨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만났습니까?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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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신 이냐시오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요한 1,35-42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깨우쳐 주는 작은 목소리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어긋난 우리를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잊고 살았던 삶의 진리를
새롭게 체험하게도 합니다.
제가 얼마 전 경험한 일입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 본당 관할구역에 있는 한 양로원을 방문합니다.
그 날도 몇 명의 신자와 함께 약속된 시간에 양로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한 할머니께서 매달 찾아와 줘서 고맙다하시며 조그마한 선물이라며
포도주 한 병을 내놓으셨습니다.
날씨도 더웠고, 저는 제가 할머니들을 위해서 뭔가 해드려야 한다는 입장만을 생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포도주를 받아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자세히 포도주를 보니 그 포도주는 국산으로
지하철 티켓 두 장 값이면 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참 싼 포도주도 있구나 했는데 사제관 식사를 도와주시는
자매님께서 옆에서 듣고 계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포도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포도주네요."
사제가 되어 신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좋은 선물, 값비싼 선물에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저는
그 한마디의 말씀에 큰 방망이로 머리를 맞는 듯 큰 충격을 받았고,
그동안의 삶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큰 것, 좋은 성과, 인정받는 일에 관심을 가지도 보니 작지만 소중한 진실을 보는
눈과 귀가 멀었나 봅니다.
아직 가격표도 떼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 포도주는
지금 제 방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으뜸 제자인 베드로와의 첫 만남을 전합니다.
어부인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아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부로서 어디서 고기잡기가 좋은지 더 잘 아는 베드로,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지쳐 있었던 베드로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더 해보겠노라며 다시 그물질을 합니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습니다.
베드로가 왜 처음 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호수로 나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일수도 있고, 복음서가 전하듯
색다른 권위를 가진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호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그 말씀을 받아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사실입니다.
외면해버려도 상관이 없을 법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했기에
그는 놀라운 결실을 맛볼 수 있었고, 고기낚는 어부로서의 삶에서 사람을 낚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지만 그래서 소홀할 수 있는, 지나쳐버릴 수 있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외면하고 무시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작은 그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도 있고, 잊고 살았던 진실의 모습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시장 사람의 성실과
정화원들의 정성된 빗질로 유지되는 깨끗한 거리.
아이스크림 하나에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어린아이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이웃이 건네는 인사와 미소.
우리 주위엔 나를 가르치는 작은 목소리를 많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 주위에서 함께 하는 사랑을 담은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 작은 목소리가 주는 작은 감동으로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이 넘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부산교구 이창신 이냐시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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