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없는 결론은 위험하지요... 엘리제 쉐핑인가 하는 여자의 주장은 뒤에 말하는 주장과는 또 다른거 같은데... 19세기정도까지 0.16%만 이름이 있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주장같은... 글고 기사문 찾아보니 이 여자분이 일했던 곳은 한센인, 걸인들 사이였던... 당연 이름이 있기 힘든... 천민들이었다는 것... 뒤에 글도 일반화의 오류가 많은 듯 합니다. 과연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되는게 일반적일 정도로 족보가 쌌을것인가, 그 비싼 걸 살 정도로 천민들의 생활이 윤택했던가를 생각하면 일반화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문중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거의 족보를 외우십니다. 가짜는 보면 바로 알죠...
그리고 조선에서 상천이 뒤섞이기 시장한 것은 거의 후기입니다. 상민보다 못살아서 남의 집 일해서 입에 풀칠하는 양반이 나오는 것도 후기죠... 그것역시 경제적인 문제였는데 조선도 보수화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재산이 점점 더 소수가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지금보면 대학 나온사람들간에 대다수의 저임금과 소수의 고임금으로 나눠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죠... 그 계급은 점점 더 세습화하고 있구요. 조선 말기 현상은 학문적 계급가치에서 경제적 계급가치로 이전하면서 생긴 현상이지 일반 민중에게 생긴 현상은 아닙니다.
조선의 전주이씨는 어떤지 몰라도 고대 성씨의 경우 나라에 공의 세우고 임금의 성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주장의 근거로 삼기는 힘들거라고 봅니다. 저희 집안의 성씨는 물론 왕가의 성씨는 아니지만 왕으로부터 성을 받아서 쓴 경우입니다. 그보다 공이 높으면 왕의 성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압니다. 여러가지 반대 논거를 들고 싶지만 전체적으로 일반화의 오류가 여러번 겹친 글이네요... 좀더 근거다운 근거가 제시되었으면 합니다.
또 한가지 전국에 거의 대부분의 마을이 집성촌이었던 사실을 보면 말씀하시는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일부 마을에서 죄를 짓고 쫓겨나는 경우에 유랑민이 되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같은 반촌(양반촌)안에서도 머슴사는 사람도 같은 성씨거나 타성이라도 성이 있는 경우였다는 점을 간과한 듯... 결국 성이 완전히 없는 사람은 옛말로 '근본없는'사람이었던 성밖 칠패의 천민(칠패는 여진족도 많이 들어와 살았다고 하지요)들이나 떠돌아다니던 유랑민(유랑민도 조상을 모르는 경우)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고, 일부 노비의 경우 해방되면서 주인의 성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주장하시는 통계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조선을 오해하기 쉬운 것이 귀족들이 노동을 천시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조선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벼슬하고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재산을 모은 사람이 논밭일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일하는 것 자체를 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농사는 양반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국에 성씨도 없는 사람의 노동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거지요. 그런 상황에서 이름도 없는 천민이 늘어날 이유는 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없어지기 마련이죠.
ㅋ 전 진짜네요 ㅎㅎ 저희 아빠만해도 어릴때 종갓집을 비롯한 동성동본들이 모여살던 마을에 살았고 거기에 가짜동성들이 들어와 살아도 이미 기존의 동성친척들이 서로를 알고 있기때문에 진짜성의 어르신들끼리 그 가짜성씨들을 따로 일컬어 칭하는 이름도 있고ㅋㅋ대문중 2개있고 ㅇㅇ이미 나라에 기증한 족보도 있고 그 안에 아버지와 친가쪽 어르신들 함자 다 들어가있음. 친척들 모두 성의 발생지에 계심 거기 가면 건너건너 서로 다 암ㅋㅋ그곳에서 몇천년동안 계속 터를 잡고 산 성이라 친척들이 많아서 아빠 함자 되면 도시안에 아빠 아는 사촌 친척 널렸음 ㅋㅋㅋ
솔직히 말해서 전혀 생산성없는 토론이죠.. 조선건국한 세력인 신진사대부나..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 등등 고려왕조속에서는 평민 또는 여진족임.. 그런데 나라한번 엎고 왕족.. 귀족된사람들,,, 지금은 대한민국의 시대.. 낡은 조선의 시대는 절단난 시대죠.. 성씨의 근원은 양반 평민을 나뉘는 엉뚱한 짓거를 하죠..ㅋ
맞는말씀이지만 이성계손자로 인하여 이 지금 이 글을 쓸수있게도 만들었담니다 그리고 고려말 거의 나라라기보단 귀족들에의해 나라가 개판이였죠 어차피 흘러간시대였고 역행할수없는 흐름이였죠 고려는 신라가그러했듯이 영원한건 없다는걸 보여주었죠 ㅎ 딴곳으로 많이 세어나갔네요 과거엔 야반들에의해 지금은 상위1%에의해 백성과 국민이 놀아나고있담니다굳이 과거 조상님께서 김씨였는지 개똥이였는지 뭐그리중요할까요 당장 내일 기사가 더 무서운시국인데. . . .
저도 족보 있는 파평윤씨라고 어렸을때 부터 역사도 개뿔 모르면서 으시대고 살아왔지만, 이런 글 보니 민망합니다. 사람에는 계급이 없죠. 21세기 현시대에 맞지 않는 논란이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 그리고 우리가 금수저, 흙수저를 논하는 사회적 비판에 상반되는 의견 입니다. 분열만 가져오죠
양반, 성씨 이런게 뭐 중요하나요? ^^ 사실 서양만해도 4대 이상 조상을 챙기거나 의미를 두는경우도 드물구요 미국이라는 나라도 3~400년 역사인데, 대부분 이주해온거니 가문이나 조상을 그리 중요하게 보는집안도 많지않구요 한국인이라는 것만 알아둬도 사는데 큰 지장은 없지않을까요^^ 뭐 조상이 엄청난 유산을 물려줬다면 모를까 ㅎㅎ
세대가 바뀌면 족보를 새로 만들어야 해서 아버지가 종친회를 방문했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방문은 뜸하고 돈만 보내는 걸로 떼우시더니.. 급기야 전자 족보로 바뀌면서 관심 밖으로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농속에 잘 보관되어 있는 족보를 꺼내 이름 찾으면 기분은 좋더라고요..^^ 딱 우리 세대까지 올라가 있는데.. 전자족보로 바뀌면 계속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혼란스럽습니다! 어디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저게 사실입니다. 김이박씨 중 하나라면 99프로는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을 선조라고 모시고 있고. 양반이 아닐 확률이 높음. 그 외도 별반 다를바 없지만
왠지 족보없는 왜구하고 키맞추려 나온 낭설 같음
통계없는 결론은 위험하지요... 엘리제 쉐핑인가 하는 여자의 주장은 뒤에 말하는 주장과는 또 다른거 같은데... 19세기정도까지 0.16%만 이름이 있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주장같은... 글고 기사문 찾아보니 이 여자분이 일했던 곳은 한센인, 걸인들 사이였던... 당연 이름이 있기 힘든... 천민들이었다는 것... 뒤에 글도 일반화의 오류가 많은 듯 합니다. 과연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되는게 일반적일 정도로 족보가 쌌을것인가, 그 비싼 걸 살 정도로 천민들의 생활이 윤택했던가를 생각하면 일반화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문중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거의 족보를 외우십니다. 가짜는 보면 바로 알죠...
그리고 조선에서 상천이 뒤섞이기 시장한 것은 거의 후기입니다. 상민보다 못살아서 남의 집 일해서 입에 풀칠하는 양반이 나오는 것도 후기죠... 그것역시 경제적인 문제였는데 조선도 보수화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재산이 점점 더 소수가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지금보면 대학 나온사람들간에 대다수의 저임금과 소수의 고임금으로 나눠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죠... 그 계급은 점점 더 세습화하고 있구요. 조선 말기 현상은 학문적 계급가치에서 경제적 계급가치로 이전하면서 생긴 현상이지 일반 민중에게 생긴 현상은 아닙니다.
조선의 전주이씨는 어떤지 몰라도 고대 성씨의 경우 나라에 공의 세우고 임금의 성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주장의 근거로 삼기는 힘들거라고 봅니다. 저희 집안의 성씨는 물론 왕가의 성씨는 아니지만 왕으로부터 성을 받아서 쓴 경우입니다. 그보다 공이 높으면 왕의 성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압니다. 여러가지 반대 논거를 들고 싶지만 전체적으로 일반화의 오류가 여러번 겹친 글이네요... 좀더 근거다운 근거가 제시되었으면 합니다.
또 한가지 전국에 거의 대부분의 마을이 집성촌이었던 사실을 보면 말씀하시는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일부 마을에서 죄를 짓고 쫓겨나는 경우에 유랑민이 되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같은 반촌(양반촌)안에서도 머슴사는 사람도 같은 성씨거나 타성이라도 성이 있는 경우였다는 점을 간과한 듯... 결국 성이 완전히 없는 사람은 옛말로 '근본없는'사람이었던 성밖 칠패의 천민(칠패는 여진족도 많이 들어와 살았다고 하지요)들이나 떠돌아다니던 유랑민(유랑민도 조상을 모르는 경우)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고, 일부 노비의 경우 해방되면서 주인의 성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주장하시는 통계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조선을 오해하기 쉬운 것이 귀족들이 노동을 천시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조선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벼슬하고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재산을 모은 사람이 논밭일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일하는 것 자체를 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농사는 양반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국에 성씨도 없는 사람의 노동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거지요. 그런 상황에서 이름도 없는 천민이 늘어날 이유는 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없어지기 마련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말씀하신 오류는 반대로 정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가짜 족보가 1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근거는 없습니다.
ㅋ 전 진짜네요 ㅎㅎ 저희 아빠만해도 어릴때 종갓집을 비롯한 동성동본들이 모여살던 마을에 살았고 거기에 가짜동성들이 들어와 살아도 이미 기존의 동성친척들이 서로를 알고 있기때문에 진짜성의 어르신들끼리 그 가짜성씨들을 따로 일컬어 칭하는 이름도 있고ㅋㅋ대문중 2개있고 ㅇㅇ이미 나라에 기증한 족보도 있고 그 안에 아버지와 친가쪽 어르신들 함자 다 들어가있음. 친척들 모두 성의 발생지에 계심 거기 가면 건너건너 서로 다 암ㅋㅋ그곳에서 몇천년동안 계속 터를 잡고 산 성이라 친척들이 많아서 아빠 함자 되면 도시안에 아빠 아는 사촌 친척 널렸음 ㅋㅋㅋ
대부분이 가짜라니,,엘리제말만 믿고 족보는 못 믿는구먼
뭐 원래 어느나라건 귀족외에는 성이 없엇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차씨는 진짜
솔직히 말해서 전혀 생산성없는 토론이죠.. 조선건국한 세력인 신진사대부나..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 등등 고려왕조속에서는 평민 또는 여진족임.. 그런데 나라한번 엎고 왕족.. 귀족된사람들,,,
지금은 대한민국의 시대.. 낡은 조선의 시대는 절단난 시대죠.. 성씨의 근원은 양반 평민을 나뉘는 엉뚱한 짓거를 하죠..ㅋ
맞는말씀이지만 이성계손자로 인하여 이 지금 이 글을 쓸수있게도 만들었담니다 그리고 고려말 거의 나라라기보단 귀족들에의해 나라가 개판이였죠 어차피 흘러간시대였고 역행할수없는 흐름이였죠 고려는 신라가그러했듯이 영원한건 없다는걸 보여주었죠 ㅎ 딴곳으로 많이 세어나갔네요
과거엔 야반들에의해 지금은 상위1%에의해 백성과 국민이 놀아나고있담니다굳이 과거 조상님께서 김씨였는지 개똥이였는지 뭐그리중요할까요
당장 내일 기사가 더 무서운시국인데. . . .
전세계 어느나라나 국민전체가 성을 가진건 최근 몇세기의 현상이죠. 서양의 경우에도 성은 영주급 이상의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저도 "이가" 이지만 아주옛날 성을 샀다는걸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이슈가 안되었을뿐 ㅋ
저도 족보 있는 파평윤씨라고 어렸을때 부터 역사도 개뿔 모르면서 으시대고 살아왔지만, 이런 글 보니 민망합니다. 사람에는 계급이 없죠. 21세기 현시대에 맞지 않는 논란이고 인도의 카스트 제도 그리고 우리가 금수저, 흙수저를 논하는 사회적 비판에 상반되는 의견 입니다. 분열만 가져오죠
어 저도 알고있던 내용이였는뎅 전 저게 사실이라 알고있었는데 ;;
사실일겁니다 ㅋ
개똥이가 장사해서 이름을사고 족보까지 사지요 해방후 그게 정점을찍지요 그당시 잘팔리던성씨는 그동안 명망높은 아주뿌리깊은 이씨 박씨 김씨 등이였구요
그래서 그성씨들이 엄청불어나게 된거죠
그리고 또하나 동성동본결혼도 유전적으로 접근해본다면 거의 남 그러니 어디성씨에 누구라서 억지로떼어놓았던겄도 유전학적으로 접근해야할겁니다
전 전국에 몇 없는 성씨라...ㅎㅎ
저도 파평윤씨 유명한 성씨라서 아마도 선조들이 성을 샀을 확률이 농후합니다. 자기는 아마 아니겠지 이렇게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양반아니었습니다.
양반, 성씨 이런게 뭐 중요하나요? ^^
사실 서양만해도 4대 이상 조상을 챙기거나 의미를 두는경우도 드물구요
미국이라는 나라도 3~400년 역사인데, 대부분 이주해온거니 가문이나 조상을 그리 중요하게 보는집안도 많지않구요
한국인이라는 것만 알아둬도 사는데 큰 지장은 없지않을까요^^
뭐 조상이 엄청난 유산을 물려줬다면 모를까 ㅎㅎ
쫌오버네...
쪽빠리들이야 메이지유신이후로 성씨를 갖은것은 정설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않은듯..
조선초 10%의 양반들은 그렇다치고,
중인계급과 양민들의 대부분이 성씨를 이미 가지고있었습니다..
조선말기에 와선 돈좀있는 중인과 양민들이 족보를 산것을 맞지만,
성씨를 갖은사람이 10%밖에 안된다는 그건 개오버네요.
222222 조선시대 평민들도 거의 성씨는 다가지고 있었죠..
전 이씨지만 레어한 파라서... (당시 거래되던 파는 다른 파죠) 아무튼 전 왕족이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세대가 바뀌면 족보를 새로 만들어야 해서 아버지가 종친회를 방문했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방문은 뜸하고 돈만 보내는 걸로 떼우시더니..
급기야 전자 족보로 바뀌면서 관심 밖으로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농속에 잘 보관되어 있는 족보를 꺼내 이름 찾으면 기분은 좋더라고요..^^
딱 우리 세대까지 올라가 있는데.. 전자족보로 바뀌면 계속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거 예전부터 들었었어요. 강용석이 진행하는 프로에서도 다뤘던 내용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