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누가 지배합니까? 아니면 무엇이 지배하고 있습니까? 사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윤리도덕을 배우고 공동체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도 합니다. 그래도 실제로 힘과 권력을 행사하는 실권자가 있습니다. 생명체도 없지만 생명체를 좌지우지 합니다. 더구나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교과서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현실 속에 처해 있고 그 현실을 헤쳐 나가야만 합니다. 설령 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강제로 잡아 가둘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당한 사람만 아픔을 감내해야 합니다.
생각해봅니다. 과연 사채업자 ‘랑’을 불법자로 체포 구금할 수는 없을까요? 어떤 법률 조항을 대들어서 체포할 수 있지요? 그가 직접 나서서 학생들에게 이자를 뜯은 것은 아닙니다. 이용당한 학생도 스스로 약점을 지니고 있으니 나서서 고소고발하기도 어렵습니다. 사채업자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법의 현실적 요소를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악의를 가진 어른들이 어떻게 미성년자를 이용하여 사익을 취할 수 있는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당하는 자가 아플 뿐입니다. 소위 악덕(?) 사채업자에게 어떻게 되갚아줄 방법이 없다는 것에 속으로 분만 삭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지요. 과연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네 이야기 속에 많은 부분 돈이나 재물이 껴있습니다. 결국 돈이지요. 돈이 권력입니다. 돈을 쥐고 있는 자가 힘을 사용합니다. 어쩌면 돈으로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돈에 혈안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세상 어디를 가도 돈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돈을 마다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돈 자체를 모르는 젖먹이가 아닌 이상 돈은 그 누구라도 웃음 짓게 만듭니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지요. 성직자라고 예외입니까? 미안하지만 그런 수도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단한 종교단체일수록 사실 돈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돈의 위력이 학교 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옵니다. 학생들을 휘어잡고 나아가 교사까지 끌어들입니다. 대단한 영향력입니다. ‘강진’이도 ‘다영’이도 모두 부모의 빚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처럼 주어졌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집에서의 굴레가 학교 안으로까지 들어옵니다. 돈이 없기에 약자입니다. 아주 영리한(?) 사채업자 ‘랑’이 기회를 포착하여 강진이를 끌어들입니다. 학교 안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길이 됩니다. 강진이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역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따라왔으니 구태여 피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강진이를 못살게 굴던 ‘남영’이 강진이 가지고 있던 사채업자의 돈을 몰래 빼앗습니다. 괴롭히려고 가로챈 것인데 그만 그물에 걸린 꼴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반대로 강진이에게 매여 힘든 상황으로 바뀝니다. 왜냐하면 강진이 뒤에 사채업주가 힘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강진이는 노예 신세에서 왕처럼 바뀝니다. 그리고 교내 학생들에게 사채놀이를 하게 됩니다. 아직 미성년자이니 사채업자가 그냥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 부모의 인적사항을 불게 하여 담보로 붙잡습니다. 돈이란 것이 받는 것은 쉬워도 갚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채업주는 바로 그 점을 노려서 그 부모들을 닦달하여 원금에 높은 이자까지 뜯어내는 것입니다.
당장 돈이 필요한 교사까지 껴듭니다. 가까이 있으니 편하고 그래도 잘 아는 사람(학생)이니 믿음직하겠지요. 사실 말려야 할 입장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돈의 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습니다. 쉽게 걸려들고 빠져나가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걸려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기관을 통하여 돈을 빌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고 돈이 급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채업자라는 것이 바로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단 빠져나가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어디에서도 도움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짐을 아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구제책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이의 삶을 망가뜨리고 공부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앞을 가리게 됩니다. 당시의 학창생활뿐만 아니라 장래까지 어둡게 만듭니다. 장래에 대한 희망까지도 빼앗을 수 있습니다. 막아주어야 합니다. 교내 생활지도 담임이 그것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지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불법의 현장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에 상응하는 벌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묘한 세상이지요. 어디서 들은 말이 떠오릅니다. 세상 참 살기 더럽네. 영화 ‘사채소년’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돈의 힘이 무섭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