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길 토마스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1요한 3,11-21 요한 1,43-51
이미 나를 아시는 분
창세기가 전하는 창조 이야기 가운데 으뜸은 ‘인간 창조’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를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당신 모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당신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다(창세 1,26; 2,7 참조).
그래서 고대인들은 인간의 들숨날숨이 하느님과의 보이지 않는 끈이라고 생각했으리라.
하느님과 연결된 우리의 숨결은 불가분의 관계성을 의미한다.
숨이 붙어 있는 한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 계시며 이끌어 주신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첫 만남을 전하고 있다. 처음에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증언을 듣고 비아냥거린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1,46) 곧 나자렛 출신 예수가 메시아일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그의 됨됨이를 알고 계셨다.
복음사가는 나타나엘에 대한 선견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듯이 제자들에 대해서도 잘 아신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신다(2,25 참조).
예수님은 이미 나를 알고 계신다. 그분이 나를 알고 계심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때 유행가처럼 번지던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가 있다.
모 방송에서 지체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노래를 합창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어떤 형태의 삶이나 인생도 주님은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하신다.
하느님 앞에 무의미한 인생, 쓸모없는 생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어렵게 세례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자매님이 있었다.
자식을 못 낳아 소박을 맞은 이후 외롭게 살아온 분이었다.
세례식이 끝난 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 그분의 말씀이 가슴 뭉클했다.
늦게야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고백이리라.
우리도 ‘주님이 나를 알고 내가 주님을 알기에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했으면 좋겠다.
청주교구 주영길 토마스 신부
*********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1요한 3,11-21 요한 1,43-51
예수님을 구약에 예언된 예언자로 알아본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자신의 체험을 전했을 때,
나타나엘은 편견의 늪에 갇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반문합니다.
필립보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라고 말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을 눈여겨보셨고
그의 흠 없는 인품을 알아보십니다.
자신의 내면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죄스러움을 가졌지만,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더 나아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한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려면 내 안에 편견과 선입견이 없어야 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이 상대방과 공감할 수 없도록 벽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도 아벨과 비교당한 속상함을 넘어,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미움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 안에 미움과 분노가 커지면, 상상으로나 말이나 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살게 되는지 되돌아보면 압니다.
요한 사도는 사랑은 자신뿐만 아니라 내 형제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혹시 지금 내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음의 고통 속에서
용서와 자비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류한영 베드로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1요한 3,11-21 요한 1,43-51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와 또 다른 요한의 제자에게
이미 했던 말입니다(요한 1,39-40 참조).
필립보는 같은 고향 출신인 안드레아로부터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해 들었습니다.
필립보는 이 기쁜 소식을 또다시 나타나엘에게 전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당신의 예지 능력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필립보와
만나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라삐들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성경 공부에 전념하곤 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나타나엘 역시 성경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
곧 메시아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해 더 신비로운 계시를 해 주십니다.
창세기 28장 12절에 나오는 야곱의 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야곱과 하느님 사이를 오가면서 축복을 전해 주는 예표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2) 기적으로 당신의 영광을 더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축복을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 기쁨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전하고 있습니까?
청주교구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