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지 못한 것들 / 강신애
일기를 쓰다 만다
체르니 30번을 치다 만다
앵무새 죽이기를 끝까지 읽지 못한다
벚꽃 그늘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연애를 하다 만다
산꼭대기에서 활강하는 달콤한 꿈에서 깬다
유골 분쇄 후에도 반짝이며 남는 것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완성하지 못한다
한 소녀가 눈사람을 만들다 만다
카프카는 끝내 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끝내 성을 쌓지 못한다
햇빛 사각이는 댓잎 사이로 걸어가던 그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걷고 있다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하는 이 변덕은
폐활량의 결여 때문일까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환각 때문일까
완전해지기에는 세계가 너무 크고 비밀이 많아
유리병 속 매미의 날개처럼
실재와 허상의 틈바구니에서 파닥거린다
여행 가방을 싸다가 풀고
남겨진 도시에 쟁여둔 시간을 주우러 집을 나선다
저만큼 앞질러 가던 참새가
뒤돌아 떨기나무 덤불 속으로 스며든다
ㅡ 계간 《시산맥》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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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애 시인
1961년 경기도 강화 출생
1996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당신을 꺼내도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 등.
현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