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 사림의 붓끝에서 시작된 곧은 충언이
화 — 화를 부르리라 누가 알았으랴,
무 — 무심히 남겨진 글 한 줄이 빌미 되어
오 — 오랜 원한과 권세 다툼 속에 피바람이 일었네
사 — 사초를 둘러싼 억울한 죽음 이어지고
화 — 화마 같은 정치의 칼날이 조선을 뒤흔들었네
의 ㅡ 의리도 저바리고 반대파의 세력을 타파하기 위한 간교가
시 ㅡ 시작에는 임사홍같은 원흉이
작 ㅡ 작심하고 벌인 사화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2
- 사화(士禍), 그리고 무오사화의 시작
사화(士禍)는
조선시대에 조정 중신과 선비들이반대파에게 몰려 화(禍)를 입은 사건을 말합니다.
드라마 인수대비 에서 연산군
조선 개국 이래 세종 성종 등 임금이
문치(文治)에 힘을 쓰고 유학을 장려했기 때문에
우수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기에,
선비들 사회,
즉 유림(儒林)은 활기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조, 성종 때에 이르러
그들 사이에 주의, 사상, 향토관계 등으로 파벌이 생겼는데,
이를 크게 대별하면,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입니다.
훈구파는 세조의 정난을 도와
높은 지위와 많은 땅을 소유한 일파로서
정인지, 신숙주, 이극돈 등이 그 일파입니다.
그리고 사림파는,
경상도 출신의 대학자 김종직을 필두로,
그 제자인 정여창, 김일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파로서,
사림파는
세조의 정난에 동의하지 않으나
기회가 오면 정부 요직에 들어가
포부를 펴보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훈구파와 사림파는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훈구파와 사림파가 1차로 맞붙어
사림파의 선비가 무수히 죽는 사건이 일어나니,
이것이 바로 연산군 시대의 무오사화입니다. .
연산군 시대에는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2차 사화가 또 다시 발생하는데 이것이 갑자사화입니다.
이와 같은 무오사화, 갑자사화와 더불어 후대의 기묘사화, 을사사화를 합쳐 4대사화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정쟁은 크게 보아 훈구파와 사림파가 끝없이 대를 이어 대립하고 분파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이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는 불가피합니다.
지금부터 연산군 시대의 1차 사화인
무오사화를 간결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의 수장 이극돈(훈구파)은사초, 즉 사관들이 비밀리에 작성하는실록 편찬의 기초자료를 살피던 중,
자신에 대한 민망한 기록(불경을 잘 외운 덕에 전라관찰사가 되었다는 등)을 발견하고, 이를 작성한 사관인 김일손(사림파)에게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김일손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이극돈은
김일손이 쓴 사초에서 다른 문제의 기사를 찾아 볼 요량으로 사초를 자세히 보다가,
“김종서, 황보인 등은 절개를 지키려다 죽었다”는 등 세조 집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내용과 “세조는 아들인 의경세자의 후궁 권씨에게 관심을 가졌으나 권씨가 세조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는 등 세조를 비하하는,
경천동지할 기록을 발견하고 말았으니
이로 인한 피바람이...
담회로~
小任崇載大任洪 (소임숭제대임홍)
千古姦兇是最雄 (천고간흉시최웅)
天道好還應有報 (천도호환응유보)
從知汝骨赤飄風 (종지여골적표풍)
작은 소인은 숭재요, 큰 소인은 사홍이라.
천고에 으뜸가는 간흉이구나.
천도(天道)는 돌고 돌아
마땅히 보복이 있으리니,
알겠느냐.
네 뼈 또한 바람에 날려질 것을.
갑자사화(甲子士禍)의 주모자인 임사홍.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이의(而毅). 효령대군(태종의 둘째 아들)의 아들인
보성군(寶城君)의 사위.
임사홍의 첫째 아들 임광재는
예종의 딸인 현숙공주(顯肅公主)와 혼인,
셋째 아들 임숭재는,
성종의 딸인 휘숙옹주(徽淑翁主)와 혼인.
임사홍은 두 아들과 함께
駙馬로서 왕실과 인연을 맺으며
세조에서 연산군까지 정치적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던 인물.
성종이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 문제를
100년이 지난 뒤까지 아무도 논하지 말라’는
유명(遺命)을 남겼지만,
임사홍은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 문제를 거론.
임사홍의 폭로로 시작된 이 사화가
바로 1504년 일어난 갑자사화.
임사홍은
1506년 중종반정 이후 처형을 당했고,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음.
사후에도
연산군의 악행과 패륜적인 행동을 부추긴
간신의 대명사로 인식됨.
잠시간의 정치적 출세와
영원한 간신의 낙인이 찍힌 시대의 간흉
담회~~
[출처] 조선왕조 실록 36|작성자 DJ Song
첫댓글
사화를 읽으며
파벌 싸움으로
화를 이르킬뿐
무신과 문신들
권력싸움으로
오늘 날이나
자기들 힘을
키우기에 급급
사리사욕으로
병들어 가는
화평은 불안이
민초들을 울린다.
의인이여
시방이라도
나라 위해
작은 몸이지만
크게 임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