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9호
호주 시드니에서 온 백 스물 여덟 번째 편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해외한인장로회(KPCA, 전 미주한인장로회)의 노회장회의가 미국의 올랜도에서 있어 지난 7월은 한국과 미국을 방문하며 무척 바쁜 여정을 보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자매노회인 남원노회(통합)에도 방문하였고 또 한국과 미국에서 만나고 싶었던 그리운 얼굴들을 대면하며 참 유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꼭 만나고 싶어 하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을 굉장히 힘들게 해 드린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힘들게 해 드린 것이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서 부모님께 많은 심려를 끼쳐 드린 것 같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내 몸이 너무 바짝 마르고 병약해 보여서 주위 사람들은 내가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분은 오래 못사니 갔다 버리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 당시는 육이오사변을 치른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었다고 합니다. 또 그렇게 말해야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그렇게들 말했다고 합니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병을 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감기에 절여 살고 툭하면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합니다. 한 번은 코에서 고름이 막 쏟아져 나와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누나가 나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갔더니 전염병이라고 해서 주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큰 병원으로 가서야 그것이 전염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한번은 유치원 때 건널목을 건너다 그 어린 나이에 빈혈로 쓰러져 옆에 있던 큰 트럭에 부딪쳐 이마에 아주 큰 혹이 생겨 수많은 병원들을 찾아 다녔던 기억도 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반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번호를 정해 주는 것입니다. 입학식을 한 첫 날 선생님은 학생들을 다 복도로 데리고 나갑니다. 그리고 작은 사람을 앞으로 나와 서게 하면서 키 순서대로 쭉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순서대로 번호를 정해줍니다. 그렇게 반에서 번호를 정해 줄 때마다 나는 무조건 제일 앞으로 나가서 줄을 섰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기도 전에 항상 맨 앞자리는 내 자리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비실비실 거리고 몸이 약한 원인이 편도선이 항상 부어 있어서 그렇다며 편도선 수술을 받을 것을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이 부모님께 권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해서 편도염 수술을 받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수술실로 들어가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침대차에 누워 무섭다고 울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그 당시 제일 맛있게 먹던 버터 사탕 한 알을 입에 넣어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술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거야. 하나님이 해 주시면 하나도 안 아파. 수술을 하고 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클 수 있어” 그 어린 나이에 나는 그 사탕 하나에 현혹(?)되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에 가면 가끔 그 때 먹었던 버터 사탕을 사먹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의사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은 지금까지도 나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수술 이후로 나는 편식하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었습니다. 항상 배탈과 설사로 지내던 내가 무슨 음식이든 잘 소화시켰습니다. 그렇게 맨날 골 골 하던 내가 병치레도 하지 않고 살이 붙더니만 키도 막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에는 그 당시 남자 평균 키인 170cm로 자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으나 이미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집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예수님께로 내리게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씀하시며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중풍병자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마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친구인 중풍병자에게 가서 예수님의 소문을 말해 주며 예수님께 가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운신할 수 없는 중풍병자는 친구들이 마련해 준 상 위에 자신의 몸을 맡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신 그곳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와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지붕을 뚫어 중풍병자를 내리기로 결심하고 중풍병자에게 그 상황을 설명했을 것입니다.
지붕을 뚫고 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내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창피한 일이었겠습니까? 아마도 중풍병자는 친구의 제안에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풍병자는 친구들의 이 말을 듣고 그대로 따랐을 것입니다. “네가 지붕도 뚫고 예수님께 가기만 한다면 너는 나을 수 있어. 분명히 그 분은 너를 고쳐 주실 거야.” 그리고 정말 중풍병자가 지붕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께서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나도 그때 그 의사 선생님처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처럼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이끌어 그들의 병을 치유케 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수술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거야’ 라고 말하시는 의사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지붕을 뚫어서라도 친구의 병을 낫게 해 주려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 사람들처럼 나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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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살다보면 세월과 환경,이 두가지 제약을 피하기가 참 어려운데, 그 속에서도 잠시 쨤을내어 무시로 자신을 돌아보며 초연해질수 있는 그런 여유(?)를 부릴수 있다면,,,내가 이런 사람되면,이웃들이 그리워하며 되돌아보는 그런,운치있는사람,되지 않을까요? 문득 목사님 어린시절 이야기가 저의 동심을 반추해 주네요.아름다운 추억어린 말씀,감사드립니다.샬-롬...
이제야 조금은 그리움이 뭔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마음아프게 하는지.. 얼마나 기대하게 하는지..주님도 나의 첫사랑을 그리워 하시고 계시는 건 아닐까! 주님의 자랑이고 싶습니다. 내 기억속 사람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