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승 李順承 (1902~1994)】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1902년 11월 12일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출신지는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남면(南面) 황방리(篁芳里)로 알려져 왔으나, 이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의 본적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 호적법상의 주소이다. 따라서 이 출신지는 남편 조시원(趙時元)의 주소지이다.
1920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간 남편을 쫓아 1923년 상하이로 건너갔다. 1930년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인천(仁川)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20일간 구류되었다.
1940년 6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1940년 5월 통합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창당되자, 같은 해 6월 방순희(方順熙)·정정화(鄭靖和)·김효숙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 부인들이 주축이 되어 임시정부 외곽단체로 결성되었다.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하고, 여성들을 독립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한 활동에 주력하였다.
1940년 한국독립당 창립위원이 되었고, 1941년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江北區黨)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3월 한국독립당 충칭시 및 시외조직 구역이 다섯 개 구(區)로 정리되면서 유동열(柳東說)·박찬익(朴贊翊)·신환(申桓)·양우조(楊宇朝)·엄항섭(嚴恒燮)·유진동(劉振東)·나태섭(羅泰燮)·고일명(高一鳴)·김응만(金應萬)·송복덕(宋福德)·윤용희(尹龍熙)·최형록(崔亨錄)·민영주(閔泳珠) 등 총 14인과 함께 제5구 소속으로 편제되어 활동하였다.
1943년 1월 한인애국부인회(韓人愛國婦人會) 재건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이 되었다. 한인애국부인회는 여성 민족운동단체이자 충칭에서 결성된 임시정부 외곽단체로서, 주로 국내외 여성을 상대로 한 각성과 분발 촉구, 중국인과 한인 사병에게 위문품 전달, 중국 포로수용소에 수용 중인 한인 위문, 전쟁피해 한인에 대한 위로와 구제, 한인 자제에 대한 민족교육 실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인애국부인회는 1943년 3월 8일 국제부녀절 기념행사를 치렀으며, 위로금 2,000여 원을 전방 장병 위로금으로 기탁하였다. 기관지 『부녀의 앞길』을 발행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 하에 아동국어학습반을 개설하여 아동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