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월요일 맑음 아침은 숙소에서 제공해 준다. 빵과 치즈, 잼, 계란, 바나나다.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아침 7시 경이다. 식사 중에 한국 관광객 모녀가 눈에 띈다. 숙소에서 투어를 하는데 17,000짯에 하루 종일 다니는 것인데 인원수에 관계없다. 모녀를 만나 함께 투어를 권유했더니 흔쾌히 찬성해서 함께 다니기로 했다. 문제는 2명에서 4명으로 늘어났으니 요금 25,000짯을 내란다. 4명이던지 2명이던지 17,000짯이라고 얘기할 때와 다르다고 언쟁을 하다가 20,000에 하기로 합의했다. 기분이 좀 나쁘다. 돈을 좀 더 벌어보려는 이들의 생각이 보인다. 주요 코스를 만달레이 주변의 잉와와 아마라뿌라, 사기앙으로 정했다. 택시도 숙소에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개해주고 나눠 먹는 식이다. 그냥 밖에서 택시를 잡아 흥정해도 될 것 같다. 미니트럭이라 좀 고생스럽다. 어머니와 함께 온 김양은 회사원이다. 시간을 만들고 만들어 어렵게 어머니와 여행을 온 것이다. 어머니는 60세가 넘어 보이는데 남미도 여행을 한 부지런하고 건강한 분이시다. 함께 여행을 하게 되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김양도 성격이 소탈하고 순수하며 생각이 긍정적이라 편했다. 미니 트럭 택시를 타고 투어를 출발했다. 먼저 간곳은 골동품 가게다. 오래된 카펫과 목가 인형, 불교용품이 가득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인도네시아 전통 가옥과 비슷한 전통가옥이 인상적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겁고 습하고 어둡다. 퀘퀘한 냄새에 산만하게 진열된 물건들이 먼지가 가득하다. 이것도 관광이라 생각하고 둘러보고........ 차는 출발한다. 거리는 매연으로 숨이 막힐 것 같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는다. 검은 콜타르를 끓여 통에 메고가는 두 젊은이가 현재 이곳의 경제 사정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철길도 나오고 이라와디 강 위에 세워진 철교도 보인다. 2번째로 멈춘 곳은 이름도 모르는 절이다. 대충 둘러보고 나오는데, 처음으로 주유소가 보여 더욱 신기했다. SToil 이라는 작은 주유소다. 트럭택시와 자가용이 연료를 보충하기위해 줄을 서고 오토바이 핼맷을 쓴 사람들은 따로 줄을 서서 기름을 사려고 한다. 우리차도 이곳에서 연료를 보충한다. 사가잉으로 달려간다. 사가잉(Sagaing)은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으로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명상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사가잉 다리를 건너면 동서로 가로지르는 아라와디 강을 따라 흰색의 파고다들이 산등성이에 점점이 박혀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나오는데 이곳이 사가잉이다. 사가잉은 주로 산족들이 살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흰색 회칠을 한 형태의 파고다들이 많다. 입장료를 내지 않고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사가잉 언덕을 올라가는 곳을 기사가 알려주었다. 사가잉 언덕에 있는 수우보야신 사원이다. 계단에서 신을 벗고 올라간다. 올라가는 계단이 제법 길고 가파르다. 힘겹게 언덕을 오르니 제법 큰 절이다. 반대편에 서니 이라와디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오르는 계단이 또 보인다. 이 언덕을 중심으로 강과 숲이 펼쳐져 있는데, 흰색의 파고다들이 많이 보인다. 바간 보다는 탑이 적지만 그래도 숲과 어우러져 깨끗해 보인다. 정말 전망이 좋다. 시원하다. 바간 왕조가 망하고 난 다음 어와 왕조와 스가잉 왕조가 건국된 1300년대부터 파고다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꽁바웅 왕조가 멸망할 때 까기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유적지와 불교 명상의 장소로 주목 받은 곳이다. 멀리 까웅무도 파고다도 보인다. 1636년 어와 왕조의 ‘따웅밍떠야’ 왕의 명에의해 스리랑카의 마하제디 파고다를 모델로 건축하기 시작하여 1649년 그의 아들 ‘삥들레’ 왕에 의해 완성되었다. 언덕 위에 세워진 우리가 서있는 사원도 제법 크다. 지붕 장식이 화려하고 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바닥은 색깔 타일이 예쁘게 까려있어 맨발이 시원하다. 현 대통령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어 흥미롭다. 안경 쓰고 군복 입은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 사진이다. 군복입은 모습이 군사독재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현재 최고 권력자인 딴쉐 군 총사령관 겸 국방장관이다. 그래도 정당은 2개란다. 2007년부터 활동 중 인 아웅산 수찌의 민족주의 연맹과 군부 관변 정당이 있다. 사진 몇 장에서 미얀마의 현 정치 상황을 엿 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무를 먹고 있는 토끼상의 헌금 통이 재미있다.
꼬마 승려 5명과 여승하나가 와서 절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 소를 죽이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동물을 살해하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면도칼을 가지고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보인다. 검은 기름(콜타르)을 재료로 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멋지고 특이하다. 주로 풍경이고 승려들 또는 절 그림이다. 물감을 이용한 수체화도 있는데 우베인 다리 그림이 제일 눈에 들어온다. 대충 절을 둘러보고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온다. 차는 또 달려간다. 논이 보이고 물이 많이 보인다. 가로수가 오래된 뚝 길을 한참 달려가니 이라와디 강이 나온다. 둑에서 차는 멈추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11시 30분인데 점심을 먹는다. 허름한 대나무집에 들어가 식사를 주문하고 화장실로 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화장실이 생각보다 깨끗하다. 음식은 포크커리(돼지고지) 와 누들 수프다. 밥과 돼지고기 덩어리, 야채, 콩, 국이 나온다. 창밖으로 보이는 농촌은 풍족하다. 강이 있어 농산물 재배가 잘된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뚝 길 끝에 서니 강이 펼쳐지고 작은 모타 보트가 강을 건너온다. 우리도 타고 갈 배다. 뚝 길에는 연탄이 펼쳐져 있다. 구멍이 12개이고 우리 연탄의 절반 크기다. 19공탄이라는 우리말이 생각난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비용은 1000짯이다. 판자를 짜서 만든 간이 선착장에서 기다리다가 배를 탄다. 손님은 외국인이 더 많다. 긴 나무배가 강을 가로질러 건너간다. 자연 그대로의 강이 편안해 보인다. 어린 시절 한강이 생각나는 이 강은 제법 넓고 모래톱에는 배와 집이 하나보이고 사람도 보인다. 이 강을 건너 도착한 곳이 잉와다. 배에서 내려 언덕을 오르니 수십 여 대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다. 모두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가격이 제법 비싸다. 둘이 타고 돌아오는데 5000짯이다. 이것이 이곳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잉와는 첫 번째 통일 왕조인 바간 왕조 이후에 북부지역에서 생긴 샨족의 왕국인 잉와 왕조의 수도였다. 1752년 몬족에 의해 망하고 폐허로 남아 이제는 잊혀진 도시가 되었고 풀이 자라난 목욕탕(수영장)의 석조 건축물만이 당시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몇 개의 건축물이 있어 몬족, 샨족, 미얀마족의 건축양식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의미 깊은 곳이라 해서 기대를 갖고 찾았다. 기대보다는 실망이 더 컸다. 길 입구 초입에는 제법 고급스러운 식당이 하나있다. 더 길을 걸어가니 이제는 정말 시골길이다. 아무 특징도 없는 평범한 강변의 농촌이다. 집도 별로 없다. 대나무를 사용해 만든 2층집이 시원해 보인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박함이 가득하다. 흰 돼지들이 아무 경계심도 없이 길가에 벌렁 누워 잔다. 가끔 마차만 우리 앞을 지나간다. 나이 많고 깡마른 할머니를 만났다. 맛사지를 해 준단다. 무슨 힘이 있다고........ 힘 있어 보이는 장닭이 바짝 서서 키를 자랑하고 등에 혹이 하나 있는 소들이 여물통 앞에서 유순한 눈을 껌뻑인다.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없고 자전거도 보이지 않고 오직 마차만 길을 다닌다. 조용해서 좋다. 마하 아웅웨 뽕장(Mahir Aungmye Bongsan Monastery)에 도착했다. 13세기 원나라의 침공으로 파간왕조의 세력이 약해짐을 틈타 이 지역의 샨족은 Ava 왕조를 세운뒤 16세기 무렵 버마족이 다시 국력을 회복할 때 가지 세력을 떨쳤다. Ava 승원이라고, 또는 옥자웅 이라고도 불리는 이 파고다는 바지도 왕의 부인인 메누의 명에 의해 1818년 지어졌다. 목조 건물 형식의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다. 1838년 지진으로 파괴되고 187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노란색 파고다인데 허술하다. 입장료가 있다. 사진만 찍을 정도로 별로 볼 것이 없다.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서 콩을 잔뜩 쌓아놓고 아주머니들과 아가씨들이 콩깍지를 까고 있다. 콩이 제법 크다. 나무 가지에는 줄이 매달려 있고 매달린 상자에는 어린애가 자고 있다. 한국에서 심어볼 것이라도 콩깍지 몇 개를 얻었다. 아가씨는 친절하게 1달러짜리 돈을 미얀마 돈으로 바꾸어 주었다. 은행도 없는 미얀마에서도 변두리에 살고 있는 이들은 환전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오랫동안 주머니에 보관한 탓인지 1$짜리 지폐가 낡았다. 유적지보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정답고 흥겹다. 어미 닭이 7~8마리의 병아리를 거닐고 나들이 가는 모습이 정겹다.
잉와 왕궁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잉와 왕궁은 1364년 알라웅 퍼야 왕이 쉐보에서 어와(Ava)로 천도하면서 꽁바웅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왕궁 터만 초라하게 남았다. 미얀마 고전문화 복원회에서 전통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1838년 대 지진으로 인해 더 이상 왕도로서의 구실을 못하여 버려진 이곳은 27m의 기울어진 워치타워와 수영장 흔적, 몇 개의 파고다가 남아 있다. 워치타워만이 힘겹게 농토로 변해버린 벌판을 지키고 있다. 바나나 밭과 파파야 나무가 많다. 밭일하는 아낙들은 나무 그늘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중참을 먹고 있다. 워치타워는 밀면 쓰러질 것 같다. 쳐다보면 곧 쓰러지거나 붕괴될 것 같은 불안한 건물인데, 사람들이 올라간다. 겁도 없이 올라가는 아내 때문에 따라 올라간다. 썩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니 오금이 저린다. 금방 무너질 것 같다.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올라 선 후 불안한 맘에 다시 내려오고 말았다. 부드러운 농로에는 마차들이 서양 관광객들을 태우고 줄지어 달려온다. 풍경이 멋지다. 워치타워에서 좀 더 걸어가니 수영장인지 목욕탕인지 알 수 없는 흔적이 잡초 속에 드러나 있다. 보호한다고 나무 기둥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다. 고목나무 가로수가 멋진 약간 큰 길 가에는 몇 채의 농가가 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박이 탐스럽게 늘어져 있다. 잠시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작은 돼지가 넓은 마당을 지키고 있다. 풀을 자르는 작두가 눈에 들어온다. 집들은 대문도 없이 모두 열려있다. 볼거리를 찾다가 다시 나루터를 향해 걸었다. 강의 절벽아래는 작은 빨래터가 보인다. 나루터는 아직도 마차들이 많다. 강 건너편에는 대형버스가 많은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 서양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마차들이 바빠진다. 강이 있어 참 풍요롭고 여유 있어 보인다. 배를 타고 다시 강을 건넜다. 잉와를 벗어나 다음 목적지로 간다. 회색빛 뿌연 도로에서 분홍색 승복을 입은 여승들이 가볍게 걸어간다. 빡빡 깍은 머리위에 수건을 얹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직사광선을 피하고 있다. 우리 택시는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더니 비단 공장과 전시장을 데리고 간다. 관광객을 안내하는 코스인가보다. 공장에서는 오래된 기계들이 돌아가고 있다. 아가씨들은 천을 짜고 남자들은 실을 감는다. 붉은 색 선명한 실이 싱싱해 보인다. 건너편 건물에는 매장이 있다. 물건은 많은데 살 만한 것이 없다. 그냥 나오려니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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