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 다녀와서
광주 장례식에 다녀왔다.
원각사 신도인데 마땅한 스님이 없어 바쁜 사정에도 불구하고 다녀온 것이다.
법회를 봐달라고 했다면 사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이다.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는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일이다.
장례야말로 종교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강원의 학인스님들은 시달림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영결식을 집전하고 장지까지 따라가기엔 아직 미숙하다.
8시 10분 출발해서 9시 20분 원각사 도착.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상갓집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와 있다.
도시의 단독주택 대부분이 그렇듯 비좁은 집이다.
시신 썩는 냄새가 난다.
몇 번 맡아본 냄새고 앞으로 나도 죽으면 날 테지만 그래도 오래 맡기엔 너무 독하다.
사람의 욕심이 썩는 냄새일까.
짐승 썩는 냄새는 이렇게까지 심하지 않다.
인도산 향이 독한 것은 더운 날씨에 부패한 시신 냄새를 상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은사스님은 워낙 마르신 탓에 욕심까지 말라버리신 모양인지 지금부터 80일 전인 가을이었는데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사흘동안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가끔 들여다보았지만 모습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오늘 장례식을 치른 영가를 매도할 생각은 없다.
은사스님처럼 노쇠하여 마른 잎이 사그라지듯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환갑을 목전에 둔 젊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마당에 제상이 차려져 있다. 어수선하다.
돼지머리에 명태도 있다.
돼지머리라니,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모자랄까.
지금 무슨 고사라도 지내는 줄 아는가?
향도 촛대도 어지럽다.
평소에 제사 한번 안 지낸 집 같다.
사실 이 집이 정통 불자는 아니라고 한다.
원각사 청년회원의 고모부 되는데 특별한 종교가 없으니 그래도 심정적으로 믿는 불교식을 택한 것이지만 방식은 전래되고 있는 유가식을 쓰고 있다.
삼베옷에 굴건, 대지팡이. 나무랄 것은 없다.
그런데 정작 유가식 장례법은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는데서 문제는 시작된다.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는 것 외에 영결에서 발인하고 노제 지내고 장지에서 매장할 때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 시대의 마지막 유학자라고 했던 합천의 초계선생 장례식은 유월장이라고 해서 달을 넘기면서까지 거창하게 치렀지만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 낼 일.
그저 장의사에서 와서 염하고 삼일만에 장의차에 실어 묻거나 화장하면 그뿐이다. 구슬피 울 줄은 알아도 망자에 대한 예의는 엉망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진도의 씻김굿은 참으로 망자에 대한 정중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한 의식이다.
가사장삼을 수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간단하게 영결식의 개요를 설명해 주며 식순에 따라 고인의 약력을 누가 말하라고 하니 그냥 넘어 가자고 한다.
조사를 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
아무리 이름 없는 사람이기로서니 한 사람의 존재가 소멸되었는데,
3남 2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인데 약력이 없겠는가.
주위 사람 중에서 정녕 추도사 하나 해줄 사람이 없다니 말이나 되는가.
삼귀의로 시작하여 영결식을 시작했다.
나 외에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이다.
아니, 나를 초청한 원각사 지장회 회장단 보살님들 세분이 따라와 같이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고마운 분들이다.
엄숙한 얼굴로 천혼법어를 했다.
"신원적…후인…영가시여!
이 세상에 오실 때는 어디로부터 오셨으며 이 세상을 떠나실 때는 또 어디로 가시나이까?
옛 어른의 말씀에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이는 것이요,
사람이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실다운 본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태어나는 것이 구름이 이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영가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룩하신 자취가 너무나도 역력하며,
떠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영가께서 떠나신 뒤에는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오열만이 천지에 사무치나이다.
영가시여!
평생을 애지중지 하시던 육신과 꿈결에도 잊지 못하는 부인과 자식들을 일조에 던지신 채 머나먼 길을 떠나는 영가의 마음인들 어찌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옛 조사의 말씀에 '한 물건이 있어 천지보다 먼저 있었고 천지보다 나중까지 존재한다.'하셨으니 이 한 물건의 정체를 알아차리신다면 당신의 앞에는 대열반의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사랑하는 혈육과 친척,
그리고 친지들이 모두 모여 머나먼 길을 배웅하오니 6식을 매하지 마시고 자세히 들으소서.
그리하여 이 사바세계에서 못 다한 인연 더 생각지 마시옵고 부디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품에 안기옵소서.
대승경전 반야심경을 독송하여 드리리다.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상투적인 말이지만 뜻은 결코 상투적이 아니다.
그 다음 몇 가지 염불, 이를테면 십이불, 무상계, 오방번, 공덕계 등을 마친 후 관을 선도하여 요령을 흔들며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골목길을 빠져 나왔다.
주위에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 구경한다.
나도 늙어 가는가,
아니면 노련해졌는가 천연스레 당당히 염불을 한다.
5년 전만 해도 부끄러워했다.
구경꾼들은 거의 노인네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들의 장례식을 미리 보는 듯한 진지함이 있었다.
장의차와 차량 행렬이 출발했다.
장지는 망월동 묘역.
이렇게 망월동을 가게될 줄이야.
나는 망월동이 5.18 희생자들만 묻혀져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이전부터 공원묘지로 쓰고 있던 곳이다.
수천 기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모두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혀있다. 옆의 무덤과 아주 가까워 땅속에서 손이라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우리가 묻을 곳 바로 옆의 산소에 가족들이 왔다.
오늘이 삼우제라고.
자리를 깔고 음식을 차리고 절을 마칠 때까지 우리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비좁은 무덤이었다.
서너 가족이 올라와 있다.
바람은 차다.
그래도 우리 팀이 가장 그럴듯한 것은 스님이 선도하여 요령소리를 내며 매장의식을 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의식이 필요하다.
유럽인들이 기독교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장례식 때문이라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아무 의식 없이 그저 땅에 묻어버리는 가족은 얼마나 허망할까.
흙을 덮어주는 인부의 오만함.
상주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죄인처럼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
도대체 그럴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처음 관을 내려놓자마자 바로 묻을 기세라 내가 저지했다.
아직 묻지 마시오.
의식을 해야되니까.
그러자 그 인부는 뻣뻣한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얼마나 걸립니까.
사뭇 시비조다.
한 20분 정도, 아마 그 정도면 될거요.
정색을 하니 한풀기가 꺾이는 기세다.
아, 예…시간을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물러나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이 맥주를 마시며 오징어 다리를 뜯는다.
산왕경과 하관송, 환귀본토진언을 독송하고 산좌송을 끝으로 매장의식은 끝났다.
흙이 덮어졌다.
노잣돈을 영정 앞에 놓고 가족들이 통곡한다.
옛날에는 화장장이나 묘지에 전문 염불승이 있어서 주된 돈벌이 사업을 했다고 한다.
언뜻 들으니 지금도 벽제에는 있다는 소문.
어디 승려뿐이랴.
목사도 있어서 어설피 나타나는 도전자에게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한다고 하니 세상은 요지경,
산자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인 셈이다.
산소에서 준비한 쇠고기국 한 그릇 자시고 가시라고 했지만 사양했다.
못 먹을 것은 없다.
먹고 싶지 않았을 뿐.
나의 일은 끝나고 남은 일은 세상 사람들의 몫이다.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그들은 새삼 인간사의 허망함을 돌이켜 보다가 다시 바쁜 일상의 일들을 생각해 내고는 서둘러 산을 내려올 것이다. (96.1)
<나와 인연이 있는 스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