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나?
허만 명예교수/전 한국유럽학회 회장
푸틴은 친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 영토화하고,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조프 민병대를 재거 하고, 크림 반도를 군사력으로 재점령하여 완전한 러시아 영토화 함으로써 러시아 국익을 증진하는 동시에 러시아 안보를 한 충 더 공고히 하겠다는 이기적 발상에서 3일 특수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3일 작전은 1년 7개월을 넘기는 순수한 침략전쟁임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외교안보의 문제가 유럽연합과 나토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이에 도시리고 있었다. 제랜스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두 기구 가입을 반복적으로 요구했었으나 양자는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지연술을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유럽연합은 90년 대 초 이미 공동외교안보 정책과 유럽안보방위정책을 수립해 대외정책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의 반복적 나토 가입 요청을 회피했다. 1994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아나와 미-러-영간에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부다패스트 매모를 체결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하고, 대립의 씨앗을 뿌렸다. 이 나라에 있었던 1800개 핵탄두를 러시아에 이관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주권과 국경을 존중하겠다는 6개국 협정이다. 제랜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전쟁을 억지하는데 목적을 둔 나토 가입 협상이 무위로 돌아가 있는 것을 지켜만 볼 수박에 없었다. 이 위험한 지연 상태는 푸틴에게는 침략 전쟁을 계획하도록 유도한 결과가 되었다.
그러면 왜 유럽연합과 나토는 이러한 소극적 대처로 임했는가? 유럽( EU)내에 있는 외교안보 정책의 모순 때문이었다. 유럽 중심기구의 하나인 집행기구(Commission)가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교안보 고위대표(High Representative)가 독자적 권한을 갖은 채 대외 문제에 개입해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권한이 매우 제약되어 있다. 회원국 외교장관 이사회의는 자국의 외교안보에 더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외교안보 문제에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로 임하는 경향이 강하다. 1998년 리스본 조약은 이러한 한계(또는 제도의 복잡성)를 개선하는 조항을 만들었지만 역시 이 한계를 뛰어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유럽연합 정상회의 지위를 갖은 유럽이사회( European Council )는 유럽의 포괄적 이익과 미래를 조정하는 최고 기구이지만 합의를 찾는데 늘 진통을 격어 왔다. 푸틴은 이 같은 무기력한 유럽에 즉각적으로 군사 작전을 전개하는 것이 러시아 국익과 안보를 돕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그의 판단에 지적으로, 전략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는데, 푸틴 뒤에서 조용하게 자문 역할을 오랫동안 한 세르게이 카라가노프다. 그의 전략관은 서구는 오래 전부터 정치, 외교-안보, 경제적으로, 이에 더해 문화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으니 지금 무력 침공을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중-러 간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 연합을 통해 일대일로를 양국이 주도하면 더 큰 힘을 생산할 수 있다는 신념을 폈었다. 세르게이는 러시아는 그러한 힘을 통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유럽연합은 제도적으로, 기능적적으로 회원국의 눈치를 살펴 가면서 외교-안보 문제에 임해야 하는 다층적 연합체다. 필자는 최근 이러한 약점을 제거할 수 있는 기구 개편을 브뤼셀에 건의한 바 있다. 연방외교정책이사회( Council for Federal Foreign Policy)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외교안보 최고대표 기구를 연방외교정책이사회에 흡수해서 유럽이사회와 동등한 지위를 설정하고, 독자적으로 대내외 외교-안보-방위 문제를 결정하는 확대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이사회와 동등한 자격에서 보조를 맞추어 공동 전략을 구상하는 기구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이 같은 기구가 일찍 가동했더라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는데 성공했을 것이고, 푸틴이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깨트리는 침략전쟁을 저지했을 것이다. 비록 나토의 과도한 동진이 있었더라도 푸틴 전쟁은 억지됐을 것이다. 전쟁 와중에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단지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만이 결정됐을 뿐이다. 이 불균형적인 결정은 연방외교정책의 부재에서 왔다.만일 서방의 민주주의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유를 수호하는데 실패한다면 푸틴에게 루한스크와 돈내스크 지역은 물론 크리미아 반도를 포함한 지역을 장악할 기회를 내 줄것인다. 최악의 시나라오의 경우 핵선제공격을 할 유혹마저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