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젓가락이 숟가락에게☆]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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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숟가락에게]
신진호 시집 / 북나비(2019.02.07)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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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숟가락에게
신진호
그대 만난 지 스무 해가 훌쩍 넘었구려
은 빛 광채에 바라보기 눈부시던 당신
어느덧 잠잖은 농회색이 어울리는 중년이 되었구려
처음 그를 만난 날
타원형 얼굴에 생기 넘치던 미소는
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소
우리는 어디서든
사이좋게 한 곳을 바라보곤 했지
그러면서 기운차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대 따라
나도 덩달아 우주를 비행했소
온화한 그대 얼굴에 때로 내 모습 비춰보며
어긋난 몸가짐을 가다듬기도 했다오
젓갈과 숟갈로 나뉘어 수저통에 뉘일 때면
단아한 그대 옆자리가 무척인 그립기도 했지
언젠가 개숫물 속에
홀로 담겨 있는 그대를 보며
남모르게 안타까워하기도 해ㅛ했었소
그러다 우리 함께
거품 샤워라도 학 되면
새상 다 가진 듯 즐거움도 누렸다오
어느 날 밤 ㅍ출출한 시각
나 홀로 라면발이라도 건져 올리게 되면
뜨끈한 국물을 뜨기 위해
언제쯤 그대도 불리어질까 내심 기대했다오
먼 훗날 그대가
더 이상 국물 뜨는 것도 버거울 즈음
어느 광산 태생인지 알 수 없는 그대와 나
끓는 용광로에서 하나 되어
웃음 떠나지 않는 어느 집 식탁 우
작은 냄비로 만나길 바라오
* 추신) 《대한문학》 신인공모 완료추천작
나에게로 가는 길
우리 관계 항상
초록불이진 않아
윙크하며 깜박이면
너를 향해 전속질주
노란불엔 멈칫멈칫
속이 타 바질바질
갈등의 빨간 등 켜지면
오매불망 그리는 초록등
이럴 때
육교가 있다면
선 고운 아치형 육교가 있다면
부드럽게 너에게 닿을 수 있겠어
연필이 지우개에게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는 군
뽀오얀 피부빛이 눈길을 끌었지
내모이면서 묘한 말랑말랑함도
매력이었어
더구나 그 특유의 풋풋한 향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지
널 만난 뒤로
좋지 않은 기억은 저장되지 않았어
온전한 것만 남도록 네 몸을 문질러
내 잘못을 지워버렸거든
때론 연필깎이 몸단장에
세신랑 같다며 황히 반겨주곤 했지
세월이
강물처럼 느껴지던 날
우리 둘 모두
점점 작아지는 서로의 모습에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길 바래
조금씩
닿아서 간다는 것
너와 나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이 친구야
자동세차
“백미러 접으세요
기어 중립에 놓고
브레이크 밟지 마세요.”
달음질 멈추었어요
날개도 잠깐 접었답니다
비눗방울 간지럼과
조각천 마사지에
그대의 고단한 몸을
온전히 맡겨 보아요
물방울 흡입기의
강풍 드라이도 마치면
얼룩진 삶에게
광채가 선사 된답니다
그런 세차장이고 싶네요
나 너에게
사랑초
옹기화분
연녹색 잎자루에
사뿐히 올라앉은
자줏빛 나비 떼
삼각 날개 펼친 대낮
햇살과 사랑놀이
고요한 한밤중
날개 접고 다소곳이
하늘하늘 연분홍 꽃잎들
귀에 대고 속삭이지
“당신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 당신과 늘 함꼐 하겠습니다: 사랑초의 꽃말
섬
나는
망망대해 섬이라오
그러나
외딴 섬으로 살지 않았소
때때로
보이지 아노는 바다 밑에서
손 잡아주는 이 있어
곱절로 훈훈했다오
산책
콧속 간질이는 바람
설레는 만남
마음의 텃밭 잡풀
솎아내는 여유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보배로운 공간
사색의 다락방 한 모퉁이
움트는 싹
죽단화*
초록 가지마다
송송 박힌 별빛
노랑 손수건 되어
내걸린 소망
봄빛 영그는
어느 싱그러운 날
“그대를 기다렸어요.”
수줍게 고백하는
산책로 꽃 향연에
살며시 달아보는 내 마음
*죽단화: 겹쌍매화라고도 하며 꽃말은 숭고, 기다림
추절秋節에 다한 바람
시골집 앞마당
잘 익은 주홍 노을
주렁주렁 걸려있는
오래돤 감나무
가을 산 오르니
노랗게 빨갛게
경지境地 깊어지는
고운 나뭇잎
은근하게 농축되어
원숙한 심성이
꽃 피워지길
나의 추절秋節에도
억새
가을 들판에 무리지어 있는
은백색 별똥별
찰나의 낙하로
지구라는 큰 별에 씨앗 내린
밤하늘의 유성
억새란 이름으로 환생했지
돌보는 눈길 없어
외로이
척박한 땅에 뿌리박고
메마른 토양 이겨내며
양털 같은 군락 이루기까지
억세게 살아온 그대
가녀린 몸으로
세찬 발비바람 몰아쳐도
땅속 발치마다
인내의 마디를 새기며
거뜬히 견뎌내더니
어느덧 마주한 황혼녘
단아한 허리에
발끝 기 모으며
부푼 은발로 다시금
바람 따라 하늘 높이
날아올라
찬란한 비상을 꿈꾸는
*추신) 《대한문학》 신인공모 초회 추천작
치악산 1
― 이른 봄날 풍경
햇살 스미는
맑은 날
산봉우리
하얀 눈 고깔모자 쓰고
구름 그림자
산 중턱에 내려앉는다
골짜기 따라
드리워진 음양
기기묘묘한 바위와 어우러져
한 폭의 멋스런 산수화
마음은 어느새
그 화폭 속으로
쏘~옥 들어앉는다
가족
같은 공간 아니어도
닮음이 있는
추억을 공유하는
따순 손길 만져지는
그윽한 눈길 느껴지는
아늑한 울타리 안 포옹 연상되는
기운 뚝 떨어질 때 생기 돌게 하는
썰물처럼 밀려났다가도 와락 밀물지는
단단한 고리
설레었을까. 1
노랑가방 메고 유치원 문 두드리며
반짝이는 두발 자전거 페달에 발 맞춰보며
화분 속 완두콩이 떡잎 되어 인사할 때
초등학교 입학식 눈에 담으며
학예발표회 날 복도에 어리는 엄마 모습에
읽다만 걸리버 여행기 가슴에 품고 잠들어
교복에 넥타이 매고 첫 등굣길 행차하며
통할 것 같은 친구와 통성명하며
미래상과 똑 닮은 선생님을 만나고
너도 설레었을까?
만약에 당신이 계시다면
가족 식탁에
아버지 함께 하실 수 있다면
따뜻한 밤 한 끼
대접해 드리고 싶다
아버지 어깨 품
잴 수 있다면
옥색 모시적삼 한 벌
지어 드리고 싶다
노래방 마이크
아버지 손에 쥐어 드릴 수 있다면
두만강 푸른 물에
예약해 드리고 싶다
그 옛날 시장통에서 사 주시던
뜨끈한 국밥 한 그릇
과학경시대회 나간다고 사 주신
분홍 내복 한 벌
지금 계신 곳에서도
소통할 수 있다면
못 다한 이야기 주섬주섬
전해 드리고 싶다
팔짱을 끼다
팔과 팔의 엮음은
체온과 체온의 나눔
마음과 마음의 연결고리
내 구역 안에
네 공간 들여
허물어진 경계
나란히 걸으며
한 목표를 향하여
우리 되는 일
상실喪失을 말하다
수도관 공사로 단수 된 날
생명수의 펄떡임 알겠더라
시계추처럼 다니던 직장 퇴임한 날
힘차던 생기의 터전 그립더라
아버지 다른 별 여행 떠나신 날
그 깊은 자리 보이더라
길초롱
좁은 도로
꽉 막힌 길
옴싹달싹 못하는
암담함 뿐
차아느이 도우미 간절한 시점,
변함없이 낭랑한 목소리의 천사
우회전 좌회전
다시 우회전하란다
이 골목 저 골목 막다른 골목 구경
드디어
탁 트인 대로大路 만나
신나게 달려도 보고
맘껏 누려도 보고
그러다가 어느 덧
한적한 소로小路 갈망하던 그곳이 보인다
설렘과 평온의 공종세계에 들어선다
이젠
나도
누군가의 길초롱을
꿈꿀 때인가
강아지와 산
이웃집 작은 강아지
무슨 사연인지
복슬복슬 하얀 털 밀고
간신히 헝겊조각
몸통은 가렸으나
드러난 분홍 다리
슬며시 애처로운데
위엄 있는 큰 산 밑자락
포클레인 여러 대 모여들더니
가차 없이 밀리는
울창한 초록 털
황토 속살 훤하게 드러나
시린 허리 끙끙 앓더니
간밤 쏟아진 폭우에
허리 움푹 패여
우웅 웅 울던 산강아지
흘린 눈물이
산 아래 마을을 덮었다하는데
푸른 조각이불이라도 누비어
그 시린 허리
포근히 덮어주고 싶어라
보름달을 보며
초순에 태양과 살며시 윙크하고
열 닷샛날 만삭되어
보름마다 어김없는 해산
쑥숙 잘도 낳는다
점점 홀쭉해져가는 배
수천 년 이어온 월중 행사
끝없는 젊음
이윽한 밤 아기별들과 다정한 다산녀
난임難姙으로 애 태우는 여인
부러움에 한껏 그녀를 올려다 본다
말[言]의 뿌리를 찾아서
말 뿌리는
생각에 잠겨있고
생각은
행동반경에 발목을 묻고
행동반경은
품은 꿈의 세계만큼 다채롭지
품은 꿈이 생기로우면
말도 싱싱 곱더라
응시
바닥에 등 맡기고
엄마 얼굴 바라보던 아기
쑥쑥 자라
담장을 넘고
앞길 뚫어져라
주시하던 아이
쉼 없이
내어 달리고
대지에 머리 조아리는
허리 굽은 어머니
평온한 눈길
자연을 더듬는데
이쯤에서
그대
응시하는 곳
어디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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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시인에 대한 주문
젖 먹는 아기
옹알이 하듯
숲속의 산새
흥에 겨워 지저귀듯
시인의 뛰는 가슴은 노래한다지
작은 것에서도 가치를
수수함 속에서도 어여쁨을
복잡함 내에서도 단순을
고요 안에서도 생동감을
보이지 아노는 것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시인의 눈은
알아본다지
그런 시편들이
엉긴 가슴도 어루만진다지
여기 놓는 시편들도
그러한 바람이라지
2018. 겨울
신진호 .★.
◆ 표4의 글 ◆
그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시야가 트여있어 시의 폭이 넓다.
그는 사물 하나에서조차 인간의 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소소한 특징을 발견하여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눈길이 따스하다.
정신의 결을 자아내는 글맛을 제대로 알고, 그 미적 과정에서 삶의 희열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신진호다. 그래서 그의 시편은 대체로 건실하다
―김선화. 수필가, 시인. 소설가
▶ 신진호 시인∥
∙ 1964년 충남 공주 출생
∙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졸업
∙《대한문학》으로 <억새(초회추천. 2017. 가을호)> <젓가락이 숟가락에게(추천완료. 2017.겨울호)>
∙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제직 중
∙ 대한문학 작가회, 지송문학회 회원
[책 소개]
작가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평범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무엇 하나 흠이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자기 계발에 부지런하고, 시야가 트여있어 시의 폭이 넓다. 의식이 개인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를 향하고 있다. 곳곳에서 시의 효용성도 적절히 나타나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미소 짓게 된다.
아울러 그는 사물 하나에서조차 인간의 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소소한 특징을 발견하여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눈길이 따스하다. 그러한 결과물을 안고 주말마다 마주하는 얼굴엔 생의 환희가 물려 있다. 정신의 결을 자아내는 글맛을 제대로 알고, 그 미적 과정에서 삶의 희열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신진호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대체로 건실하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The Thorn Birds Theme - Henry Mancini / 가시나무새(TV) The Thorn Birds(1983)
제작 1983년 (Mini), 미국 // 감독: Daryl Duke // 음악 : 헨리 맨시니 (Henry Mancini)
#출처: 관악산의 추억( http://cafe.daum.net/e8853/MVDb/631)
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