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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라!”
+ 본 문 : 사도행전 1장 3절 - 8절 (신약성경 186쪽)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앞으로는 더 평안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앞으로는 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영혼이라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전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3절부터 8절의 말씀에 있는 그대로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라!” 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눌 때에, 성령의 임재와 권능이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의사 누가라는 사람이 누가복음을 기록한 다음, 누가복음의 후편으로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복음이신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십자가의 고난 받으심과 부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신 예수님의 3대 사역인 가르치심, 병 고치심, 전파하심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국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병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신 예수님의 3대 복음사역이,
누가복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오순절 성령의 임재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음을 기록한 책이, 바로 신약성경의 다섯 번째 책인 사도행전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속 증거 되고 확장되어 가기에,
우리는 사도행전을 가리켜 “전도행전” 이라고도 하고 “성령행전” 이라고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아멘!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아멘!
우리를 도와주시는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어려울 때 도와주시는 성령을 보내 줄테니,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 잘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그토록 빠르다는 정보검색을 하면서도 몇 초를 못 참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정보가 아니다 싶으면 금방 바꿉니다. 아예 느리다고 스마트폰까지도 바꾸어 버립니다.
세상은 분명히 초스피드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빨리 빨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오래전 영화가 있습니다. 사진관을 통해 인생과 사랑을 말하는 그런 영화입니다.
그 영화 속에서는 사진을 찾으려면 며칠 걸려요, 매우 여유롭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 로맨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사진은 어떻습니까?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나옵니다.
더 나아가 로맨스가 진행된 남녀가 같이 사진을 찍으면, 앞으로 태어날 아기도 함께 나오는 세상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후닥닥 결혼합니다. 그러다가 헤어지는 것도 후다닥입니다.
오죽했으면 요즘 부모들이 자식들 신혼여행 갈 때 "잘 다녀오너라." 하지 않고, "같이 오너라." 한답니다.
이렇게 세상은 초스피드로 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다리라!” 하십니다. “성령을 기다리라!”
어디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십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떠나지 말아야 할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고향이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곳입니다.
그러니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승천하면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으라고 한 장소는, 최후의 만찬을 나눈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아직도 예수님의 체취가 배어 있고, 지금도 예수님의 육성이 들리는 것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이제 다시 살아났으니 절망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말씀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임하시기 전에는, 한 발짝도 예루살렘에서 움직이지 말라. 그대로 머물러 있어라.
성령님께서 너희들에게 강력하게 임재하시고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함을 입을 때까지, 바로 이 예루살렘,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도 최후의 만찬을 나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머물러 있으라.” 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기다리되 어떻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빌기를 다하매”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가족들을 포함한 120여 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힘써 기도하던 열흘 만에 불같은 성령, 바람 같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처음으로 수도가 설치되었을 때,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조그마한 수도꼭지 하나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온 어떤 사람이 철물점에 가서 수도꼭지 하나를 사온 다음, 집 벽에 붙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돌렸는데, 물이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아무리 돌려도 안 나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철물점에 가서, 화를 내면서 불량품 수도꼭지를 팔았다고 따졌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물이 안 나왔습니까? 수도꼭지가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나 물탱크에 연결되어 있는,
수도 파이프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밖에요. 문제는 연결입니다.
수도꼭지와 같은 기도의 파이프가 영이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을 때에,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언과 같이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관심사요. 제자 자신들의 공통된 관심사인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생뚱맞게 물었습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그래, 그게 궁금하니?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900년 후인,
1948년 5월에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세울 것이다. 이제 됐냐?” 이랬으면 얼마나 속 시원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입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아멘!
“그게 그렇게 궁금하니? 그걸 알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니? 아니다. 그것을 너희가 알면 감당 못한다.
알고 싶은 것 다 알면 시원할 것 같지만, 시원은커녕 안 시원이다. 그것보다 먼저 알고 할 일이 있다.”
그게 뭡니까? 제자들이 지금 당장 관심 가져야 할 우선적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너희들이 지금 당장 가져야 할 우선적인 관심은 성령 충만이다. 성령 충만하면 권능을 갖게 된다.
그 권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는 명령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바로 이 사도행전 1장 8절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성령님이 임하시면’ / 둘째 ‘권능을 받고’ / 셋째 ‘증인이 되리라.’ 는 세 부분입니다.
먼저 첫째 부분인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라는 주님의 말씀부터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다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죄와 허물로 찌들어있는, 부끄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우리 안에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품고 가십니다. 우린 이런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리석고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 안에,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신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돌보십니다. 치유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어울리게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어느 성도님께서 창문을 열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자기 아들과 친구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갑자기 아빠 자랑을 합니다. 한 아이가 “우리 아빠 군수하고 친하다.” 하고 자랑하자,
그러자 다른 아이가 “우리 아빠는 군수님보다 더 높은 도지사님 하고 잘 아신다.” 하고 자랑합니다.
그러자 다른 한 아이가 뻥을 칩니다. “우리 아빠는 대통령과 날마다 만난다.” 하고서 자랑합니다.
이제 그 성도님의 아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성도님은 자기 아들이 뭐라고 할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귀 기울여 듣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빠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무진 친하다.”
그 말에 그 성도님은 너무 기뻐서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만하면 자식 참 잘 키웠잖아요.
세상에 대통령 자녀도 있고, 재벌 자녀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세상의 명문가의 자녀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과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복 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복 된 자녀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의 충만함 속에서, 능력 있는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돕는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범사가 잘 되고 형통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라는 말씀은, 내 모든 삶의 주체가 성령님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의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함께, 내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이가 성령님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나를 장악하기 원합니다. 내 모든 삶의 운전사가 되어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이 아니라 아직도 자기주장, 자기의지가 강한 사람,
자기의견을 하나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사도행전적인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내 자아와 고집이 깨지기를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내 인격, 내 마음, 내 영혼을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불같은 성령의 임재는, 우리들 속에 자리 잡은 모든 죄악의 찌꺼기까지도 남김없이 다 태워 버립니다.
바람 같은 성령의 임재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밖의 삶에서, 모든 악한 것들을 날려 버립니다.
생수 같은 성령의 임재는, 갈급한 우리들의 심령을 시원하도록,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합니다.
이처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나의 주인이 성령님이시오. 내 삶의 모든 주체도 성령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의 주인이신 성령님의 임재로 충만하기를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함으로 내 자아가 깨지고, 성령님께서 내 마음, 내 영혼을 사로잡고,
나의 주인이 성령님이시오. 내 삶의 모든 주체도 성령님이 되도록, 온전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부분인 ‘권능을 받고’ 라는 주님의 명령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권능은 외적인 권능이 아니라 내적인 권능입니다.
지금 당장 이 권능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군사적 권능도, 정치적 권능도 아닙니다.
지금 당장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고, 뱀들에게 명하여 생선이 되게 하는 신비적 권능도 아닙니다.
권능이라는 말의 뜻은 ‘다이나마이트’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만, 당장 폭발하는 외적인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의 권능을 받고” - 바로 이 성령의 권능은 내적인 폭발력을 가진 권능입니다.
보십시오.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는 순간,
스승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던 비겁한 제자들이 아니라, 강하고 담대한 용기를 가지게 만들었고,
겁쟁이 제자들이 아니라,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담대히 증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증거로 많은 사람들이 “어찌할꼬?” 회개하고, 성령 받고,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성령님의 권능은, 내 모든 삶의 주체가 성령님이 되도록 나를 변화시켰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악령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받게 하는 영적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는 신앙고백도, 그 주님을 담대히 전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한마디로 내 삶의 모든 주체도 성령님이요.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전도의 주체도 성령님이십니다.
물론 전도는 사람이 합니다. 그러나 전도는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복음전도는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임해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그 권능으로 전도하게 하시는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게 임하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나 자신을 이깁니다.
내 마음의 염려 근심이 사라집니다. 나의 몸에 질병이 치료되고, 내 육체의 한계도 극복하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의 몸이 의의 병기로, 전도자로 쓰임 받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권능입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 부분인 ‘증인이 되리라!’ 는 주님의 명령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증인이 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우선 증인이 되려면, 분명한 사실을 목격해야 합니다.
목격자가 아니면, 체험자가 아니면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는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아무리 심증이 가도 증거가 없으면, 보고 들은 체험자 - 목격자가 없으면 사건은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목격자가 보고 들은 체험적인 확실한 증언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건을 목격했어도 증인되기를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증인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그 피고가 풀려나서 증인에게 보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격자라 할지라도 아무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거부할 수도 있고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 특별히 부활의 복음은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서 온 세계에 전해져야 할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목격자들인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 문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오늘 날도 바로 이런 영적 자폐증 그리스도인이요, 말 못하는 벙어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 같은데, 세상에 나가서는 숨죽이고 살아갑니다.
“이런 영적 자폐증 그리스도인이요, 말 못하는 벙어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여 임할지어다. 아멘!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 할지어다. 성령의 권능이 임할지어다. 증인 될지어다. 아멘! 아멘!”
1944년 순교하신 최봉석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일명 그 유명한 최권능목사라고도 합니다.
이 분이 성령의 권능을 충만히 받고, 전도하기 위해서, 거리를 다니면서, 또는 버스타고 다니면서,
“예수 믿으세요!”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하고 외치면서 전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십니다.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유명한 채필근 목사님도 그 버스에 탔습니다. 두 분이 서로 아는 사이입니다.
최권능 목사님이 채필근목사님 앞에 가서 “예수 믿으세요!” 했습니다. 깜짝 놀란 채필근 목사님께서,
“이보게 최목사! 나요 나! 나 채필근목사요!” 그랬더니 최권능 목사님이 “아, 벙어리 교인이구먼!”
저는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물론 저 자신까지도 벙어리 교인, 영적 자폐증 환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 성령의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나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증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담력이 있습니다. 일단 증언대에 섰으면,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보통 용기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증인노릇 하도록 성령의 권능을 주신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 사도 바울이 순교한 곳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목을 치는 것과 다르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죽일 사람을 멍석 위에 앉혀놓고, 망나니가 요리조리 춤을 추다가 칼로 목을 칩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절구 통 같은 나무토막에 목을 걸쳐 놓고는, 작두질을 하듯 목을 내리 쳤습니다.
비참한 죽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에, 기쁨으로 그렇게 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들이 승리하는 방법은 말로만이 아니라, 죽음으로 증거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부활과 천국을 믿는 성도가 안 죽겠다고 살려 달라고 바득바득 소리 지릅니다.
그게 무슨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예수 믿는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놓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죽어서 천국에서 만납시다. 먼저 가서 기다릴테니 할 일 다 하고 나중에 오세요!” 이 정도는 되야죠.
여러분! 이런 모습이 바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권능을 받은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하십니까? 성령님의 권능으로 증인의 사명을 다하고 계십니까?
저는 이 시간, 한 영혼을 구원하여 그 영혼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고,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히시기를 원하며 선포합니다. “성령이여 임할지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할지어다. 성령의 권능이 임할지어다. 증인 될지어다. 아멘! 아멘!”
이렇게 성령 받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불타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주님의 말씀,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순종하되 기쁨으로 순종하고, 죽을 각오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전도의 결실을 얻고,
영혼 구원의 열매와 전도의 상급으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영광과 상급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