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남항시장'
타지 사람 다독여온 정겨운 곳
설 아래 장이다.
사람들이 물결치듯 넘실거리고 있다.
대목장은 그래서 넉넉하고 푸짐하다.
사람들마저 한껏 여유로워진다.
모든 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상기되고,잠시나마 힘든 일상에서 풀려나는 시간이다.
이 많은 풍성함 앞에 누군들 푸근하지 않으랴?
손에 든 장바구니 모두가 가득 가득하다.
영도의 최대 종합시장인 남항시장.
영도다리를 건너 서너 번째 정류장 일대부터 시작되는 남항시장은,영도 사람들이 모든 농수산물과 생필품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시장이다.
그래서 영도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정겨운 곳이며,지역밀착형 시장의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원래 남항시장은 타지의 사람들을 거둬 먹이고 다독이며 커 온 세월의 시장이다.
영도가 부산 토박이들보다 타지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6.25동란 피난민들과,뭍으로 정착하기 위해 고향을 등진 제주도민들이 옹기종기 마을을 형성했던 곳이 영도이다. 이들이 모여 서로의 살림살이를 걱정하고 많은 것을 서로 나누던 곳이 바로 남항시장인 것이다.
힘겹던 시절 그들에게 설 대목은 참으로 회한(悔恨)의 명절이었을 것이다.
고향을 등지고 한 해를 보낸다는 것,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는 것은 그리움과 낯설음을,보내고 맞는 것과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항시장은 그리움을 품은 시장이었다.
아니 그리움을 달래는 시장이었다.
고향에 남기고 온 일가들과 그리운 모든 것들을 품은 사람들의 시장이자,
그 그리움을 서로 달래주는 시장이었던 것이다.
망향의 설움과 타향살이의 곤고함에 명절은 사치일 수도 있었고,생활의 걸림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타향살이의 안정적인 정착과 성공을 위해 새로운 마음을 결의하는 날이기도 했으리라.
남항시장에서 정성껏 구입한 음식으로 제사상을 차리고,고향 땅을 향해 재배(再拜)하며
제주(祭酒)를 채웠을 것이다.
그들이 남항시장을 살붙이처럼 아끼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 때문인가?
남항시장의 대목장은 차분하다.
망향의 제사상을 정성껏 차리듯,시장의 장거리는 신선하고 깨끗하다.
어쩌면 경건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바지 음식 골목에 들어서면 모든 잔칫상을 종갓집의 정성으로 제공하고 있다.
관혼상제의 모든 잔칫상의 음식을 대신해 주는 이 골목이,남항시장에 유독 성황 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 듯싶다.
설 아래의 남항시장은 목하 대목이다.
생선골목에는 생선골목대로,과일전은 과일전대로,떡집은 떡집대로 명절을 기다리고 있다.
"명태포 사이소. 명태포 두 봉다리 오천원."
"사과나 배,큰 놈으로 제사 지내소~"
"떡국 사이소 떡국."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들 사뭇 진지하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사고파는 이들의 입 실랑이도 빈번하다.
"한 개 더 끼워주면 되겠구마는..."
"아이고 그라면 남능기 있능교?"
어디서나 입 실랑이가 있는 시장은 그래서 사람들 냄새가 진한 것이다.
둘러보는 김에 덩달아 장을 본다.
떡국 떡 한 봉지와 오징어 한 마리,귤 이천 원어치... 돈 만원에 손에 든 무게가 여간 아니다.
이제껏 망향의 계절을 다독여 왔던 남항시장.
그러나 이제 남항시장은 희망의 시장이다.
그리고 미래의 시장이다.
영도는 이방인들의 망향의 고장이 아니라 부산을 아우르는 미래의 고장이므로,그래서 남항시장은
과거를 보듬고 가는 미래의 시장이자 희망의 시장인 것이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