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은 뜻깊게 보내셨겠지요?
울각시랑 도대체 뭘 해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싶어 울딸한테 도움을 청해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인데 알아서 하라고만 하고, 엎친데 덮친 겪으로 울각시는 며칠 전부터 머리가 띠잉~ 하다고 종합감기약을 한 번 더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고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기분전환이 최고죠.
얼마 전에 방영된 착한 가격 팥죽이 생각났습니다.
울각시가 요 팥죽을 또 좋아하걸랑요.
기대했던 대로 바로 콜이 들어왔습니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 날씨라 시원해서 드라이브 하기에 그만입니다.
한참 붐빌 시간을 피해서 줄도 안 서고 바로 가게 안으로 입성했습니다.
팥죽과 늙은 호박죽을 큰 걸로 하나씩 시켰습니다.
맛도 좋은데 1만 원 밖에 안 되네요. 작은 건 3천 원씩이니 말 다했죠.
울각시가 연신 맛있다를 연발합니다.
3천 원짜리 팥빙수까지 먹고 기분 좋게 나왔습니다.
여기서 그대로 집으로 갈 수는 없지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화룡점정을 찍을 생각으로 시흥 물왕저수지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시흥에 있을 때 종종 목욕하러 다녔던 목감동이 대단지 아파트 촌으로 되어 가는 상전벽해의 현장을 지나서 물왕저수지에 오니 여기도 미어터지네요.
조용한 카페를 기대했는데 아니다 싶어 제가 근무했던 곳으로 방향을 다시 잡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부대는 그대로였습니다. 옛날 살던 관사도 그대로 있고요.
내친김에 울강생이들이 다니던 유치원도 보려고 가는데 이쪽은 15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무색할만큼 자고나면 바뀌는 도시에서 의외다 싶게 말이죠.
이리저리 추억을 쫓아다니다 블루베리 농장이 보였습니다.
주렁주렁 다닥다닥 달린 블루베리를 보고나니 안 사고는 못 베기겠더라구요.
블루베리 대박을 그리며 3만 원짜리 하나 샀습니다.
조금 굵어진 비를 따라 집에 오는 길이 시원했습니다.
이슬비가 살포시 내리고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이수역쪽을 보니 자동차의 라이트에 쌓인 먼지들이 말끔히 씻겨나갔는지 후미등 불빛이 유난히 밝습니다.
동작 현충원이 옅은 안개에 쌓여 있는 게 편안해 보입니다.
이슬비 오는 날, 따뜻한 하루 되세요. ~^.^~
♥연락처에 '두부 한 모'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
일주일치 식단을 짜고 장을 봤더니 제법 그럴듯했다.
내심 만족해하는데 일곱 살 난 손자가 식단을 읽기 시작했다.
"두부 된장찌개, 두부 부침, 두부 조림...
할머니는 만날 부두만 먹어?"
"두부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싸니까 그런 거면서, 돈가스 먹고 싶어요."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두부도 이미 서민 음식이 아니다.
두부 한 모가 200원이던 시절은 내 나이 서른 즈음인 25년 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두부 값이 오른 건 당연한데도 괜히 화가 났다.
그때 "드르르~."
휴대전화 진동음이 요란하게 방바닥을 때렸다.
"ㅇㅇ보험 상담원입니다."
"보험이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다시 파득거리는 휴대전화!
"좋은 조건의 상품이 나와서..."
"여윳돈이 없어요."
"고객님, 월 5만 원 정도만..."
"저기요. 정말 여유가 없다고요.
2,800원짜리 두부 한 모 사서 찌개에 넣고, 나물이랑 무치고, 부쳐 먹으며 겨우 살아요.
한 모를 찌개에 죄다 집어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사분의 일만 넣으며 산다니까요."
얼른 전화를 끊으려는데 상담원이 말했다.
"고객님, 정말 야무지게 사시네요.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힘드시죠?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고객님처럼 살려고요.
힘내시고 꼭 부자 되세요.
여윳돈 생겨서 저축 생각나시면 꼭 전화 주세요."
퍽퍽한 삶을 살아내는 나를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아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전화를 끊고 상담원 전화번호를 휴대 전화에 저장했다.
이름은 '두부 한 모'.
언젠가 경제적 여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두부 한 모 상담원에게 꼭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다.
-고마워 좋은생각/월간 좋은생각 201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