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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복음 6:1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히 담임)
https://www.youtube.com/watch?v=RV6LpAMjnaM
기도가 안 되는 분들은 주기도문으로 기도해보세요. 저는 종종 주기도문으로 기적을 체험한 간증을 듣습니다. 최근에 들은 간증입니다. 어떤 여선생님이 혈압이 매우 높아서 교직생활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는데, 어떤 분의 권유로 기도원에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식기도, 통성기도, 방언기도를 하는데 이분은 기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이 기도를 잘 못하시면 주기도문으로 기도해 보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이분이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계속 암송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일째 되던 날에 목에서 핏덩어리 3개가 넘어오더니 혈압이 낮아지고 어지럼증도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이 기도는 기도의 방향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방향성입니다.
제 큰 아들 모세가 신학을 시작한 것은 아시죠. 저는 모세가 저보다 더 훨씬 좋은 설교자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한 번은 아들이 제게 “아빠!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에요.”라고 하더군요. 훌륭한 통찰력입니다. 그때 제게 떠올랐던 말씀이 딤전 2:4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과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사람들만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존재들이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천군천사들도,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도 다 기쁘고 즐겁게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마귀와 귀신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빛과 어둠의 전쟁이 있습니다.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이 계속 됩니다. 사랑과 미움이 충돌합니다. 평화와 다툼이 대립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성숙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성숙하면 기도의 무게 중심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초창기에는 나 중심의 기도를 하다가 신앙이 성장하면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신앙의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건강하고, 내가 부자 되고, 내 문제가 해결되고, 내가 잘되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됩니다.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의 절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철저히 아버지의 뜻에 초점이 맞추셨습니다. 요 5:30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님은 모든 일을 스스로 선택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요 6:38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한 번도 자신의 뜻을 추구하며 사신 적이 없습니다. 철저히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9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칼빈 선생은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나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고 우리 가정과 교회와 대한민국과 열방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1. 아버지의 뜻을 알라.
미국이 남북전쟁을 할 때 양쪽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 하나님이 자기들의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어떤 편을 도우셔야 할까요? 그때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도록 기도합시다.”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아버지의 뜻은 다양한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환경이나 양심 그리고 영적인 지도나 표적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만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방법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은 성경으로 알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말하는 첫 번째 아버지의 뜻은 잃어버린 영혼이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요 6:39, 40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와 선교의 열매가 풍성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말하는 두 번째 아버지의 뜻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외적인 증거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살전 5:16-18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인지 성경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것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만 번의 기도응답으로 유명한 죠지 뮬러 목사님은 30세에 고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 68:5에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다. 이 말씀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 당시 런던 거리에는 수많은 고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가슴 아팠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빛을 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다. 자식을 먹이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고아들을 먹이신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아들을 돌보기로 결심하고 일평생 그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30세에 고아원을 시작하여 93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63년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그가 고아원을 하면서 기도응답으로 받은 금액만 무려 150만 파운드였습니다. 약 25억입니다. 지금도 25억은 큰돈인데, 약 150년 전에는 얼마나 큰돈이었겠습니까? 제가 자장면 값을 비교한 표를 봤습니다. 1970년에 자장면 한 그릇에 100원이었습니다. 2023년에는 6,361원이었습니다. 평균값이겠죠. 53년 동안 약 63배 올랐습니다. 단순하게 이런 계산을 해보면 150년 전보다는 약 190배 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25억 원이면 현재 가치로는 약 4,700억 원입니다. 그는 그 많은 돈을 단 한 번도 사람들 앞에 손 내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여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고아의 아버지시니 당연히 아버지가 자식을 먹인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기도와 믿음으로 3천여 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의 기도에서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반드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내용이 성경의 어디에 약속되어 있는가를 꼭 찾아 확인한 후에 기도했지 막연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뮬러 목사님은 반드시 기도의 내용과 관련된 성경을 찾았고, 그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으로 반드시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를 하기 전에 며칠 동안 성경을 찾을 때도 있었습니다. 성경 읽으면서 내가 기도하는 제목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가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뮬러 목사님은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유대인은 교육의 민족, 책의 민족입니다. “책이 없는 집은 혼이 빠진 몸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은 전 세계에 1,500만 정도로, 80억 세계 인구 가운데 약 0.2% 정도인 소수민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 경제, 정치, 문화, 과학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663명의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140명이 유대인입니다. 무엇이 유대인을 이렇게 막강한 사람들로 만들었을까요? 그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교육의 민족이고, 책의 민족입니다. 그들의 교육의 중심에는 책이 있고, 책의 중심에는 구약성경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자녀가 보통 3살 정도만 되면 구약성경을 펴놓고 꿀을 떨어뜨려 빨아먹게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평균 아이큐 94입니다. 우리나라의 평균 아이큐는 106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유대인들 가운데 성인식을 통과한 사람들의 아이큐는 평균 170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성인식은 여자는 13세에, 남자는 14세에 합니다. 성인식을 할 수 있는 조건은 모세오경 암송입니다. 아이큐 94였던 사람들이 모세오경을 암송하고 나면 170이 됩니다. 유대인의 힘은 성경에서 나옵니다.
우리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자신을 보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계시의 책입니다.
2) 성령의 인도로 알 수 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지만 성경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나온 것은 성경대로 하고 성경에 없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선하신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개개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독특합니다. 성경에는 전반적인 하나님의 뜻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개개인을 향한 독특한 하나님의 뜻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다양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지만 두 가지만 나누겠습니다.
➀성령님은 꿈이나 환상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 보십시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환상 중에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가브리엘을 통해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할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리아와 파혼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뜻이 꿈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요셉에게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마리아에게는 환상으로 요셉에게는 꿈으로 하나님이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성령께서는 꿈과 환상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행 2:17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님은 예언과 환상과 꿈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➁성령님은 마음의 소원으로 인도하십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감동이나 마음의 부담감 혹은 내적인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성경 외에 가장 평범하게 하나님 뜻을 아는 길은 마음에 소원입니다. 빌 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믿는 자 속에서 성령으로 행하시는 방법은 마음의 소원입니다.
시 107:30입니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바라는 항구는 개역성경에서는 소원의 항구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에 소원을 주십니다. 그 소원은 아침에 일어났다 저녁에 사라지는 소원이 아닙니다. 불 같이 일어날 수도 있고 천천히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 소원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지만 성경에 없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2. 아버지의 뜻을 믿으라.
마 13:58입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주님은 믿음대로 역사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향이 배경입니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니 사람들이 놀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놀랐지만 믿지 않았고 배척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고 놀라는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독교의 문을 여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독교에 참 입문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고 많은 사역을 했어도 믿음이 없다면 그는 교인이지 성도는 아닙니다. 믿어야만 구원이고, 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엡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확실한 진리입니다. 그래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그러나 믿어야 응답이 있는 것이고 믿어야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을 받습니다. 약 1:6,7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이런 사람은 기도는 하는데 믿지 못하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러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응답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약 5년 쯤 지났을 때입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는 오금동에서 상가 2층 35평에 월세로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분이 교회 이사할 때 쓰라고 2천 만 원을 헌금했습니다. 제가 이사할 곳을 알아보려고 오금고등학교 앞에 있는 어느 건물에 들어갔는데, 제 안에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예비한 건물이다” 우리 교회가 그곳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가진 돈은 그곳으로 이사하기에 너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들은 성령님의 음성을 믿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사할 날이 다가왔는데 우리는 돈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에는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속에서 들린 음성이 성령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했고, 성령님의 음성이라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서 이사 당일이 되었는데, 잔금이 준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저는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은 음성이 성령님의 음성임을 조금도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충만한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교회가 이사하는 날 아침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전화를 해서 제게 잔금이 준비 됐는지 물었습니다.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하자 집사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시려고 하세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목사님! 얼마나 부족하세요?” 제가 부족한 금액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집사님이 부족한 잔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집사님의 남편은 국내에 잘 알려진 큰 회사의 사장이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분은 아내에게 생활비를 늘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집사님은 남편이 주는 돈에서 일부를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주의 일을 위하여 따로 통장에 넣어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저와 통화를 하고 보니 우리 교회 잔금부족분과 집사님 통장에 있는 잔금이 1원하나 오차 없이 같았습니다. 집사님은 “하나님께서 이 돈을 마목사님 교회 이사를 위해서 준비하셨구나”라고 생각하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늘 무모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면 내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더라도,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이 들어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일반적으로는 상식적인 선에서 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무모한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믿어야 합니다. 믿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기도하라.
기도 응답은 때대로 신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십니다. 지난 주 중에 총신 동기인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정두환선교사님을 만나서 교제했습니다. 정선교사님은 자녀가 둘인데 선교비로는 사역하고 자녀 교육 시키고 생활하기에 부족해서 자녀들을 국제학교가 아닌 현지 학교에 보내야 했습니다. 한 번은 생각지 못했던 지출이 생겨서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랑 통화를 하면서 기도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카드 대출을 받아서 200만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정선교사님은 부모님도 힘든데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채워주세요” 그런데 통장에 100만 원이 입금되어서 확인해 보니 보낸 사람 이름에 “하나님”이라고 찍혀있더랍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풍성하게 응답됩니다. 요일 5:14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기도를 담대하게 할 수 있고 그대로 응답 됩니다. 아이가 아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데, 자기가 요구하는 것이 아빠의 뜻과 다르다면 그 아이는 담대하게 아빠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요구하는 것이 아빠의 뜻과 같다면 아이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어느 날 강철 왕 카네기에게 기자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성공비결을 세 가지로 대답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은 너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가난을 면해야 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둘째는 자신이 비록 무식하지만 무엇을 하든지 세계에서 1등을 하겠다는 마음의 집념이 있었고, 셋째는 가난하고 공부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다스려주실 줄을 믿고 주야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한 결과 세계에서 가장 큰 강철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또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아버지의 뜻에 헌신하라.
눅 6:46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주님께서 평지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하지만 주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우리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는 모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헌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성도들의 헌신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고 기도하지만 헌신하지 않습니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려고 집에서 기르는 모든 동물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주인은 동물들에게 물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대접을 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동물들은 일제히 “대찬성입니다”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거위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거위요리가 좋겠다.”라고 말하자, 거위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에게 큰 알을 낳아주잖아요. 저 암탉을 잡으시지요.” 그러자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암탉이 손을 저으며 “저는 매일 ‘꼬꼬댁'하며 아침을 알려주잖아요. 저 양을 잡으시지요.” 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따뜻한 털을 제공해주잖아요. 말고기는 어떤가요?” 그러자 말이 소를 가리키며 “주인님이 여행가실 때 누가 태워 줍니까? 암소고기가 최고지요.”라고 하자, 이번에는 소가 고함을 치며, “주인님, 나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는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동물들은 먹고 마시는 흥겨운 잔치에는 동의했지만, 결국 아무도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려면 헌신해야 합니다. 마 16:24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의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헌신 되어야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뜻을 위하여 헌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