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용묵-어떤 무명작가의 질문에 응하여
-분야: 어문 > 수필 > 경수필/수필
-저작자: 계용묵
-창작년도: 1956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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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목(盲目)
지식욕이 한참 부글부글 끓을 학생 시절에는 알아지는 것마다 새로운 맛이 난다. 그리하여 그때마다 거기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게 되고, 그 가치의 예찬자가 된다. 한 권의 서적을 접하고 새롭다는 것을 느낄 때에, 그 서적이 기천 기만의 부수가 전 세계에 유포되어, 기천 기만의 인사로 하여금 새로움을 느끼게 하고 있으리라는, 또 느껴 왔으리라는 그런 생각은 한참 지식욕에만 감각이 마비된 약동하는 핏속에서는 첩경 맹목이 되기 쉬운 까닭이다.
• 사상
하나의 사상은 완성됨에 따라 까풀이 벗는다. 그것은 한 개의 과실이 숙성함에 따라 꼭지가 물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과실의 육은 썩고, 씨만 남아서 후인(後人)의 구미를 돋구는 역할이 되듯이 사상도 그 사람에게서 완성이 됨에 따라 육은 썩고 씨만 남아서 후인의 구미를 돋구는 역할이 될 뿐이다.
사상이란, 완성 이전에 그 효력이 발생된다. 완성되었다면 그것은 벌써 무사상으로 돌아간 것이니까. 그러므로 무서운 것은 사상 그것이 아니요, 사상의 배태기인 것이다. 이 배태기에 기성(旣成)은 무사상의 낙인이 찍힌다.
• 문단 등용
일제 말기였다.
신문 잡지에 소설을 몇 편 발표하고 나서도 문단은 신진 작가로 대우를 해 주지 않으니까,
"신진작가 소리를 한번 들어 보고 죽어도 한이 없겠다!“
고 나에게 말한 문청(文靑)이 있었다.
그 문청이 지금은 대학 교수로 있다.
옛날에는 문학 등용이 그렇게 어려웠다.
• 소설
나는 소설을 술에다 비해서 생각해 본다.
장편 소설은 ‘막걸리’
중편 소설은 ‘약주’
단편 소설은 ‘배갈(고량주)’
• 문장
명문과 악문과의 차는 종이 한 겹의 차라는 말이 있다. 용이히 그 차를 따지기 어렵다는 데서 나온 말인 듯하다.
그러나 이건 문장을 겉으로만 핥아 본 말이요, 씹어 본 말은 아닐 것이다. 씹어 보면 그 차는 현저하다.
우리 문단에는 문장의 차가 몇 겹으로 층이 진다. 그러나 문장에 대한 시비는 좀체 들어 볼 길이 없다.
이 종이 한 겹의 차에서 소설이면 소설이 꼭 같은 대우를 받는다.
• 집필
쓸 이야기가 없는데 써야 할 경우처럼 딱한 일은 없다.
"못 쓰겠습니다."
"못 쓰겠다는 그 심경 피력이 좋습니다."
"정말 쓸 수 없습니다."
"정말 쓸 수 없는 이야기는 더욱 좋습니다."
이런 강요에서 붓을 들면 무엇이 나올까?
그래도 붓을 들었다가, 그대로 붓을 던질 때의 그 유쾌한 마음이란.
• 문단 미풍
백중(伯仲)을 다툴 때는 질투가 있어도 진출에는 질투가 없는 것이 문단의 미풍(美風)이다. 바다에의 진출이 자유이듯이 문단에의 진출도 자유다. 벌거벗고 다니는 자유는 어디서나 허하지 않는 것을 바다는 허하듯이, 남자뿐이 아니라 여자도 허하듯이, 아니, 남녀가 같이 쭉 벌거벗고 뛰어들어도 허하듯이 문단도 허한다.
〔발표지〕《새벽》(1956. 7.)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