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으로 거룩함을 추구하기
1테살 2,9-13; 마태 23,27-32 /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2023.8.30.;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두 가지 부류의 인간형이 날카롭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은 율법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교우들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한 바리사이들이 있는가 하면, 경건하고 의롭게 처신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오로가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는 위선자들이 있는가 하면,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하느님을 전하면서 사도로 살아가는 바오로가 있습니다.
바오로도 바리사이 출신이지만, 위선자로 지탄받는 동료들을 떠나 그가 인생을 전환한 계기는 예수님을 만난 덕분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도 열성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바리사이였으나, 그 길에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 빛 때문에 눈이 멀게 되었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벼락 소리 덕분에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진리이심을 깨닫게 되었고 진리를 향한 십자가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있을 수 있는 부활의 신비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테살로니카를 비롯한 그리스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던 바오로에게서 그 이방인들이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비결은, 바오로의 삶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셨기 때문이고 그들은 진정성 있게 믿음을 전하던 바오로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신성의 현존과 체험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사람에게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의로움이라는 가치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사람에게는 의로움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의로움을 겉으로만 흉내내면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정서적 평안을 좇는 위선자들을 예수님께서는 가차없이 질타하셨습니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과 삶을 본받고자 전 동료 바리사이들로부터 배척받고 매를 맞기도 하며 밤낮으로 노동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이를 십자가로 승화시키고 거룩하게 변화되고자 무진 애를 썼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거룩하게 변화되고자 하는 의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위선자들이 무수히 많고 무신론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이런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의인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무일도의 아침 기도마다 즈카르야의 찬가를 바칩니다. 신약시대 아나빔 중의 하나인 유다인 사제 즈카르야는 늦은 나이에 천사를 만나고 늦둥이의 탄생을 예고받았습니다. 그 시작이 이러합니다.
“주여 이스라엘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는 당신 백성을 찾아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가문에서 능하신 구세주를 우리에게 일으키시어,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옛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또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리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거룩한 당신 계약을 아니 잊으시려,
우리에게 주시기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 손에서 구원하시어 어전에서 겁 없이,
성덕과 의덕으로 우리 모든 날에 주를 섬기게 하심이로다.
아기야, 너 지존하신 이의 예언자 되리니 주의 선구자로 주의 길을 닦아,
죄 사함의 구원을 주의 백성에게 알리리라.
이는 우리 하느님이 자비를 베푸심이라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게 하시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며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리라.”
이 찬가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성덕과 의덕으로 우리 모든 날에 주를 섬기게 하심이로다.”입니다. 성덕과 의덕이야말로 주님을 섬기게 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로움으로 거룩함을 추구하게 인도하는 길입니다. 거룩함을 향하여 의로움을 성숙시킬 수 있을 때 우리가 변화되고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거룩함과 의로움 - 성덕과 의덕 - 이 두 가치는 한 쌍입니다. 이 길을 벗어나면 하느님을 벗어나서 세속적인 악마의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을 계속 가면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닥쳐도 부활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걸어간 길이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독서는 신약의 첫 번째 책인 테살로니카 전서입니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경건하고 의롭게 처신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했던”(1테살 2,9-10) 사도 바오로가 자신의 수고와 고생을 테살로니카 공동체 교우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유 역시 단 하나, 자신의 의로움이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거룩하게 변화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의로움을 더하고자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 의로움이 거룩함으로 변화되도록 믿음의 눈을 뜹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