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며 / 김명은
정해진 대로 정지선에서 동쪽으로
달리는 버스 유리창이 번쩍인다
열린 창문에서 밥 냄새가 난다 끼니는 건너뛰고
횡단보도도 건너뛰고 버스 번호를 확인한다
타일 벗겨진 골목은 딱딱한 이빨을 머금고
좁고 어두운 창문들에게 손을 내민다
일상은 버스를 오르고 내리는
사소한 과정일 뿐
일이요 그냥 하는 거죠 대충 사는 거죠
원자폭탄이 이로운가 해로운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든 말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쏘든 말든 버스는 출발한다
경계도 숨을 곳도 없다 흰 손은 더욱 희고
전문가들은 마음을 읽는다 피의 양이 달라
이미 마음의 혈관에서 감정을 찾아냈다
어린것들 죽이지 말고 너 혼자 죽어
댓글 창에서 악플과 생각을 쓸어 담는다
정면은 홑겹
낮은 콧날이거나
선만 남은 귓바퀴이거나
아직 돌아가지 못한 달의 속옷은 얇고 엷은 푸른빛
사는 게 전쟁터죠 글쎄 태어난 게 무슨 잘못
서쪽으로 서쪽으로
꽃 필 자리로 돌아오는 두 눈이 눈부실 것이다
ㅡ 계간 《시산맥》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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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은 시인
1963년 전남 해남 출생. 경희대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시와 시학》 등단.
시집 『사이프러스의 긴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