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이민철 씨 냉장고 청소를 돕기로 했다.
뜻하지 않은 손님으로 생각보다 늦게 찾아뵙게 되었다.
간단한 청소는 그때그때 묻고 돕지만, 냉장고를 청소하려면 직원이 집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지고
안에 든 것들을 모조리 꺼내야 할 테니 이민철 씨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함께 사는 박상재 아저씨도 직원이 오래 머무는 것은 원치 않으시니,
이민철 씨가 미리 양해 구할 시간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청소를 돕기로 하고 냉장고를 여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청소’라는 구실이 있으니 마음이 편했다.
평소에는 냉장고 안까지 직원이 관여하지 않는다.
정리를 도와도 결국 이민철 씨가 편한 대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니. 그를 두고 실랑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냉장고 여기저기에 갖가지 양념이 길을 따라간 흔적이 있다.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한곳에서 모이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싶게 구석구석 덩어리진 양념이 있다.
행주로 닦아도 꿈쩍하지도 않는다. 이왕 청소하기로 했으니 아예 깨끗이 씻어내기로 한다.
먼저 이민철 씨에게 버릴 반찬을 일일이 묻고 버린다.
반찬통은 설거지 돕기로 하고, 너무 오래된 반찬통은 정리한다.
다음으로 직원이 냉장고 칸칸이 선반을 뺀다.
이민철 씨가 선반을 화장실 앞으로 옮기고, 남은 선반을 직원이 마저 옮긴다.
직원이 화장실 문턱에 앉아 선반을 세제 묻힌 수세미로 씻고 샤워기로 헹군다.
이민철 씨가 씻은 선반을 수건으로 닦아준다.
“무결 샘, 이거는 어떻게 떼는 겁니까?”
선반 끝에 테이프가 붙어 있다.
냉장고를 샀을 때부터 붙어 있던 것 같은데, 냉장고 벽에 붙어 고정력을 더하는 테이프 같다.
이제는 떼고 싶으신 것 같다.
잘 안 떼지는 테이프는 직원이 반쯤 떼는 것을 돕고 이민철 씨가 완전히 떼어낸다.
선반을 씻는 중에 동거하는 박상재 아저씨가 잠시 대화를 요청하셨다.
씻던 것만 마저 씻고 아저씨 방문을 두드렸다.
이민철 씨가 주방에 있는 사이 잠시 문을 닫았다.
아저씨는 이민철 씨가 반찬을 꺼내 식사한 뒤 뒷정리가 아쉬울 때가 많고
날짜가 지난 반찬을 그대로 두기도 해 걱정하셨다.
아저씨 이야기를 잘 듣고 적극 반응했지만,
아저씨의 기준과 이민철 씨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게 전하고 싶었다.
반찬이 소비기한이 지나지 않게 살피는 것은 잘 돕겠다고 했다.
곧 날이 더워질 테니 반찬이 상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겠다.
이민철 씨가 닦은 선반이 건조되는 동안 냉장고 내부도 닦는다.
가장 아래에 있는 야채실 서랍장을 깜빡해 다시 화장실로 향한다.
“무결 샘이 오늘 오래 하시네.”, “민철아, 냉장고 좀 깨끗이 써라.”
청소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이민철 씨가 무안해서인지 미안해서인지 혼잣말처럼 말하신다.
직원은 오히려 흔쾌히 청소하자 하신 이민철 씨에게 고마웠다.
청소에 관해 의논하기 좋은 때인 것 같아 주기적으로 챙길 청소를 의논한다.
지난 개인별 지원 계획 워크숍에서 ‘집안일 표’에 관한 피드백이 있었다.
매달, 매주 정해두고 청소하면 이민철 씨도 직원도 기억하기 쉬울 것 같다.
이민철 씨도 좋다고 하셨다.
직원이 먼저 관련 자료를 더 찾고 공부해 보고, 이민철 씨에게도 함께 표를 채워보자 제안할까 한다.
옷장이나 냉장고를 살피고 정리하는 건 이민철 씨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직원도 조심스럽다.
지혜롭게 돕고 싶다.
선반 물기가 어느 정도 말라서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세척 직후라서 새 냉장고 같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데 이민철 씨가 기분 나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눈에만 담는다.
이민철 씨도 깨끗해진 냉장고에 뿌듯하신 듯했다.
또 언제 양념 국물에 길을 내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이민철 씨가 깨끗이 사용하겠다 다짐하신 것으로 족하다.
2026년 3월 6일 금요일, 서무결
시원하게 돕고 싶지만, 각자의 여러 사정으로 그러기 쉽지 않죠. 때맞춰 관계 살펴 도우시는 서무결 선생님의 지원이 참 슬기롭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소통과 지원이 결국은 이민철 씨 집 밖 관계, 소통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 확신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박효진
수고하셨습니다. 신아름
입주자의 삶, 그 경계가 불분명할 때가 있죠. 삶의 경계는 분명한데, 우리 지원의 경계가 불명확한 것일 수도. 지혜롭게 지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월평
이민철, 주거 지원 26-1, 이민철 씨께 여쭙는 주거 계획
이민철, 주거 지원 26-2, 어렵다는 말
이민철, 주거 지원 26-3, 곳간에 가득가득
이민철, 주거 지원 26-4, 시장 단골 해프닝
이민철, 주거 지원 26-5, 이민철 씨의 위로
이민철, 주거 지원 26-6, 앉아 보이소
이민철, 주거 지원 26-7, 잘 먹었습니다 갑니다
이민철, 주거 지원 26-8, 외상할 수 있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