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화요일 강론>(2023. 10. 3. 화)(루카 9,51-56)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마리아의 한 마을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루카 9,51-56).”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라는 말은, 지금 예수님의 여행은
수난, 죽음, 부활을 향해서 가는 여행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이 예수님의 일행을 거부한 일은,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의 예고편과 같습니다.
여기서 심부름꾼들은 예수님과 사도들과 신자들의 숙소와 음식을
미리 준비하려고 간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려고 그 마을로 간 것이 아닙니다.
하룻밤을 지낼 곳과 음식을 구하려고 갔습니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은,
유대교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적대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원래 두 민족은 서로 ‘원수’처럼 지내면서
접촉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요한 4,9),
큰 축일을 지내려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 때에는
사마리아인들의 적대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신앙과 성전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것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릴래아 지역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려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에, 아마도 크고 작은 충돌이 자주 일어났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일행을 거부한 것은,
예수님을 거부한 것도 아니고, 메시아를 거부한 것도 아닙니다.
‘낯선 유대인들’을 거부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과 사도들 입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가는 순례 여행 중에 생긴 일이기 때문에
‘종교박해’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마리아인들은 ‘어떤 마을의
사마리아인들’이지 사마리아인들 전체는 아닙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요한 4,28-30.39ㄱ.40-41).”
그렇다면 56절에 언급되어 있는 ‘다른 마을’은
‘다른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일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와 요한 사도는
사마리아인들 때문에 몹시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두 사도가 바로 심부름꾼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도 사마리아인들은 단순히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심한 폭언과 모욕과 폭행으로
예수님의 심부름꾼들을 쫒아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는,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릴까요?”입니다.
두 사도에게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말은 두 사도가 그만큼 크게 화가 나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도를 꾸짖으신 것은,
당신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이야기에서는 그냥 그 마을을 떠나서 다른 마을로
갔다고만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 사람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사실 앙갚음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 자체도
‘복음의 씨’를 뿌린 일이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테파노 순교 후에 큰 박해가 일어났을 때,
흩어진 신자들은 가장 먼저 사마리아 지역으로 갔고,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사도 8,5).”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사도 8,14-15).”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전파한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다(사도 8,25).”
<만일에 화가 난 두 사도가 원한 것처럼
예수님을 거부한 마을에 ‘천벌’이 내렸다면,
사마리아인들의 반감과 적대감만 더 커졌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나중에 그 지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주님의 복음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출처]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은혜로운 강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