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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
가장주서(家獐注書)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家 : 집 가
獐 : 노루 장
注 : 부을 주
書 : 글 서
돈이나 재물을 주고 벼슬을 사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은
다양한 말이 남아있는 만큼 예부터 성했던 모양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전가통신(錢可通神)이라 했으니
개도 멍 첨지(僉知)라며 누구나 벼슬을 사고팔 수 있다고 봤다.
중국에선 포도주 한 섬을 보내 지방관 벼슬을 땄다는
일곡양주(一斛凉州)나 빚을 내어 장수가 되고
시장판이 된 관아라는 채수시조(債帥市曹)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선 큰 재물이 아니라도
특산 기호품으로 벼슬을 따낸 예화가 많다.
조선 중기 더덕을 바쳐
사삼재상(沙蔘宰相)으로 불린 한효순(韓孝純)이나
희귀한 채소를 상납한
잡채판서(雜菜判書)의 이충(李冲)이 그들이다.
여기에 개고기 요리를 권력자에 입맛에 맞게 한 덕에
벼락출세한 중종(中宗) 때의 이팽수(李彭壽)가 더해진다.
중종실록 78권, 중종 29년 9월 3일 2번째기사
조선 중종(中宗) 때 권신 김안로(金安老)가
개고기를 매우 좋아하여 봉상시(奉常寺)
참봉 이팽수(李彭壽)가 늘 개를 대어 주었다.
그리하여 이팽수를 승정원(承政院) 주서(注書)에 임명하자,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겨 '개장주서'라고 하였다.
왕실과 민간 모두 널리 먹었다는 개장국은
집에서 기르는 노루(家獐)라 했는데 임금의 사돈인
권신 김안로(金安老)가 무척 즐겼다.
어릴 때 같은 동네서 자란 이팽수가
국가제사 관장의 봉상시(奉常寺)에 말단으로 있으면서
맛좋은 개고기 요리를 자주 상납했다.
틈만 나면 이팽수의 개고기 요리를 일품이라며
칭찬하던 김안로가 어느 때 그를 임금 비서실인
승정원(承政院)의 주서(注書)라는 정7품으로 발탁했다.
주위의 추천도 없었는데 벼락출세하자
면전에서 반대는 못하고 사신이 말한 것이
중종실록(中宗實錄)에 나온다.
이팽수가 개고기를 좋아한 김안로에게
크고 살진 개를 골라 구미를 맞췄으므로
매번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다며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청반에 올랐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개고기 주서라고 불렀다
청반(淸班)은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앞날이 보장되는 벼슬이었다.
뒤에 따르는 이야기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팽수의 출세를 보고 역시 봉상시의 진복창(陳復昌)이
매일같이 김안로에게 개고기 구이를 갖다 바쳤고
개 요리는 자신이 제일이라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고관의 입맛에 안 맞았는지
벼슬은 오르지 않고 비웃음만 샀다.
돈이면 죄를 없게도 하고 죽음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의 세상은 옳을 수가 없다.
예전의 벼슬자리는 전제(專制)의 절대자와
간신이 쥐락펴락했으니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은 어떨까.
공직이나 대기업 등은 공채(公採)가 확립돼 있으나
그렇지 않은 정무적인 자리가 많다.
당파적 충성에 좌우되는 현대판 엽관제(獵官制)는
낙하산 인사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 한 몫 한다며 마구잡이 요직에
내리꽂는 현상은 민주화된 이후에도 욕하면서 닮아간다.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인사도 수시로 나타난다.
개고기 주사를 떳떳하게 욕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뇌물과 청탁으로 권력을 획득하거나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한 순간 잘못된 선택들이 후대의 냉혹한 평가를 받고,
역사에 우셋거리로 남아 회자된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역사는 미래라고 하지 않았나.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앞날을 예찰(豫察)하라는 귀중한 울림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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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