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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iaDyon 탑 끝에 맺혀있는 달빛의 조각들이 아직 내게 시선을 허용하고 있는가? 내 의식은 그들의 시선에 감응하여 발 내딛음의 순간 순간을 탑으로, 혹은 달빛의 심연으로 이끌어주고 있는가? 망각의 숨은 어디까지 닿아있으며 사라진 것들은? 그리고 남아있는 것들의 의미는? 내게 남은 기억의 지속은 언제까지? 그리고 이 지속의 궁극적 의미는? 기억이 나로 하여금 각성케 하는 것은 개인에게 한하는 것인가 인류 전체에게 고뇌 설정을 종용하는 것인가? " 휴 " 비스파곤은 잠시 사유의 고리를 멈춘 체 짧은 숨이나마 크게 내뱉어 본다. 그리고는 걸음을 멈춘다. 도시에서 약 2일간의 거리. 망각으로부터의 기억 지속을 위한 도피. 하지만 본질은 그러할지라도 지금 심연의 수면 위에 비춰지는 것은 탑의 그림자뿐이다. 가야만 한다는 문구만이 차 오르는 그 심연을 가지고서 어찌 망각 속에 잠기어 사유만 전개할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사유와 고뇌를 형성케 하기 위해 난 심연을 비워야 한다.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 탑에 대한 이 사념을 지워야 한다. 그러하기에 나 비스파곤은 탑 끝에서 파쇄되어 흩뿌려지는 저 달빛의 음영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2일을 걸었다 하더라도 아직 도시의 반도 못 벗어났을 것이다. 아마도 하루 반을 더 걸어야 도시와 바다의 경계선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시야 안에서는 거대한 빌딩의 흔적 말고는 발견할 수 없었다. 저것은 아마도 파이쟈 호텔의 잔해일터. 내노라 하는 젊은 연인들이 밤마다 클럽과 수영장을 수놓으며 파티를 즐기고 도시 1년 예산의 백분의 일 정도를 하루 밤만에 소비하던 고급 화류계의 정점. 비스파곤 역시 학계의 떠오르는 해석학자로서 언론 매체를 가리지 않고 거론되고 있었기에 몇 번의 기회를 통해 그곳의 기억을 공유한 적이 있었다. 그 꺼지지 않는 밤의 태양 빛. 이성의 경계선마저 지워버리는 본능의 증폭. 쾌락의 향유. 짐승의 악취가 온 몸을 감싸안은 체 떠나지 않던 공간. 비록 매번 2시간도 체 있지 못했지만 그 때의 악몽 같은 혼돈은 여전히 그 기억을 부정적 기운에서 건져내지 못했다. 헌데 이젠 그러한 기억의 증거조차 스러져가고 있다. 파이쟈 PAIJYA 라는 네온사인만이 생명이 다한 체 건물의 파편에 박혀있을 뿐인 조각들. 조각들. 창도 기둥도. 사라져버려 그저 하늘에 가로 걸려있을 뿐인 외벽 한 채. 망각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만약 무엇을 각성케 하는 것이라면 ? 어째서 허무의 밤자락을 대동하고 나서는 것이지? ' 그렇게도 궁금한 것인가? 그대는? ' " 허무여. 오랜만이구나. 도시를 떠나오면서 들었던 네 음성을 지워버렸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적절한 때 태연히 질러오는 너의 음성이 오만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야.. 그래. 너는 무엇을 알고 있길래. 나의 물음표에 반문을 제기하는 것인가? 의문의 본질적 의미를 외면한 체 문구의 끝에만 매달려 생성시키는 물음표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그대는 정녕 모르는 것인가? " ' 비스파곤. 논리와 사유로 설명하려 하지 마라. 지금 네 앞에 벌어진 현상들은 그것으로 설명되고 언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 우습게 보지마라. 경계선 밖의 현상이라 할지라도 내게 있어 논리와 사유는 나만의 세계관이자 어법일 수도 있는 것이야. 나에게 달려드는 대상과 현상을 나의 어법으로 언급하고 나의 세계관으로 해체하는 것이 어째서 아닌 것이지? " ' 우리의 앞에 서서 밤을 넘겨주고 있는 망각의 의지 또한 정확히 이해되고 있지 않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 혼돈이 아니라는 것. 과정 중에 하나라는 것. 인간을 제외한 세계의 변이를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이, 삶이 포함되는 거대한 변이 과정 중에 하나라는 것. ' " 그렇다면 넌 무엇인가? " ' 난 그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밟고 나가기 위해 장치된 존재일 뿐. 한 과정에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해 망각이 너희 생을 지닌 존재들을 위해 배려한 밤의 숨결이다. ' " 점점 더 알 수 없군. 잠들라. 허무여. 아직 난 무언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지 않다. 하지만 해석학자라는 직함이 너에게 묘한 감정을 지니게 하는 군. 넌 내게 나의 방법론으로 이 현상을 받아들이게 해줄 변환 장치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잠들라. 허무여. 이제 또 다시 걸어야 하므로. " 비스파곤의 마른 골격이 다시 신발을 끌고 달빛의 심원으로 향한다. 31세. 시립대학 인문학 재정의 연구소 수석팀장. 권위 높은 인문학지(誌) 시간(時間)에서 선정한 주목받는 10인 1997, 1998 연속 선정. 하지만 지금은 기억을 가진 체 탑의 그늘 안에 잠드는 자. 그 뿐이다.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날의 마지막 고뇌가 비스파곤의 입술에 맺혀진다.
달빛에 빛나는 일본도가 하늘을 가르고 망각에 사로잡힌 사내를 가른다. 동맥을 끊어버린 도의 궤적을 따라 붉은 피가 원을 그리고 이윽고 사내의 절단면에서는 길 잃은 핏줄기가 뿜어져 허공을 적신다. " 끄끄끄...꺼 억.. " 이것이 몇 번째의 칼부림이던가. 날 따르던 친구 녀석들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의 바람 소리가 이미 날 광기의 입구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망각의 숨소리가 허무의 밤자락이 내뿜는 침묵의 아우성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여행을 결정했던 때. 날 따르겠다며 나섰던 녀석들. 잭은 다리가 반쯤 스러진 체 일행의 뒷자리에서 우리의 길에 의지를 불어넣었으며 어니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은 아직 날 기억하고 있다며 절규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스러진 나의 마지막 친구. 아메드는 시시각각 자신의 기억을 둘러싸는 망각의 북소리를 들으며 울부짖었다. 날 베라. 날 베라고. 프라이언 !! " 난 널 베고 싶지 않아. 그냥 그대로 스러져서 천천히 가.. " " 난 이미 많은 것을 기억에서 지웠다. 하지만 너마저 지우고 싶지는 않아. 프라이언. " " .... 이미 난 둘을 벴어. 그것도 단지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는 너희들의 이유로 말이야. 내게 이런 기억까지 남기게 할거냐. 이유 따위는 알지도 못하지만. 너희들이 있어야 할 곳은 그 도시였어. 어째서 날 쫓아온 거야 !! " 프라이언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며 벌겋게 달아오른다. 다 잊어가던 친구들 중에서 어째서 너희는 남은거냐. 그리고 왜 내 여행에 동행한 거지. 무엇 때문이냐. 너희 자신이냐. 아니라면 진정 나를 위한 것이냐. 자신의 마지막 기억에 의해 죽음을 당하면서 '나'를 지키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난 너희들의 목을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가란 말이냐. 어떻게. " 프라이언 세스 !! 날 이대로 먼지로 산화시킬 거냐 !! 날 이대로 스러지게 하고 싶어? 차라리 죽는 것이라면 두고 가라고 빌겠어. 두고 가겠다면 기어서라도 널 쫓아갈 거라고. 하지만 이건 그 문제가 아니야. 난 나로서 사라지고 싶어. 어차피 이미 난 몸의 절반이 스러졌어. 아픔이 느껴지지도 않아. 고통도. 말도 잃어가고 있어. 그런 내게 남아있던 것은 너야. 프라이언.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마지막 기억이 너란 말이다. 헌데... " "....." " 이젠 안될 것 같아. 이젠 지워져가. 너와의 기억들이 서서히 저 밑바닥에서부터. 네 이름 밖에 남기 전에 어서 날 베라. 난 이 따위에 스러져 가는 게 아니라 '나' 인체로 죽는 거야. 난 '나'인체로 숨을 끊는 거라고. 알 수 있겠어? 적어도 기억을 가진 자로 죽고 싶은 거야. 살 수 없기 때문에 기억을 가진 체로는 이 도시!! 내가 사랑을 했고 일을 했으며 살았던 곳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죽어서라도 '나'를 이곳에 두고 싶은 거야. 내가 선 이 도시에서 죽어서라도 남고 싶어. 기억. 너를 가진 체. 아메드란 이름을 가진 사내로 말이다. " " 이 칼은 그래서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아메드.. " " .... 프라이언. 프라이언 세스. 네 이름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어. " " 하아 !!! " 다시 그 피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피는 닦지 않겠다. 아메드. 저 탑이 날 부르는 이유 따위는 알 수 없지만 내 검에 맺혀진 너희들의 붉은 얼룩을 헛되게 하진 않겠어. 어째서 내게 이런 기억들을 짊어지게 했는지 묻겠다. 탑이여. 내겐 눈이 부시다 못해 빛나는 그 달빛이 너무나 잔혹하게 느껴지는 구나. 달빛이여. 내 검에서 울부짖는, 절규하는, 아우성치는 친구들의 넋을 달래다오. 그 은은함으로 붉은 기운을 달래다오. 적어도 그들의 죽음은 그들 자신을 지켰으므로. 넌 단지 비춰주는 것만으로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달램 뒤에 빛이 남는다면 그 때는 날 감싸다오. 원혼은 내게 맺혀있나니. 그대의 진정한 달램과 위로의 빛은 내 기억에 비춰져야 할 것이다. ' 묻는다 했는가. 그대 붉은 기억을 지닌 자여. ' " 누구? " ' 난 허무. 그대의 심연에서 처음으로 음성을 전하게 되었군. ' "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난 지금 심히 피곤하다. 내 일본도 또한 지쳐있지. 그래서 만약 날 더 이상 방해한다면 그냥 베어버릴 것이다.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베어버릴거라고. " '벨 수 있다면 베어 보라. 그대의 심연을. 이미 벌써 베어진지 오래인 것 같지만. 친구들을 하나씩 쓰러뜨릴 때마다 이었나. 이 검흔들은. " " 어디 있나 !!! " ' 난 망각의 뒤에 숨어 그대의 심연에게 남은 상실감과 흔적마저 집어삼키는 밤의 자락. 허무다. 단순히 탑에 도착해서 물어볼 심산인가. 프라이언 세스. 사유하라. 생각해보라고. 이 현상의 의미를. 어째서 네가 친구들을 베고 그들의 기억마저 짊어져야 했는지 생각해보라고. 생성되어 허공에 떠다니는 이 의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대는. ' " 닥치라고 했다. 생각은 이미 많이 했다. 무엇인가? 인류를 멸망시킬 셈인가?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기억을 지워서 끝내 존재를 소멸시켜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그리고 이따위 잔인한 장난질을 좀 더 하고 싶어서 날 끌어들이는 것 아니냐고. 그저 지켜보면 재미있는가? 기억이 사라지면 생조차 유지할 수 없는 인간들이 버둥대는 꼴이 꽤 볼만하냔 말이다 !! " ' 그댄 아직 사유하는 방법을 더 배워야겠군. 잠시 언급해주지. 지금 이 공간에서 스러지는 기억들과 지속되는 기억을 짊어져 매야하는 너의 의미란 ... ' " 그만하라. 허무여. 너의 그 간악한 혀놀림을 멈추어라. 난 그대의 숨소리가 들릴지니. " 칼을 땅에 꽂아 놓은 체, 가슴을 안은 체 괴로워하던 프라이언 세스는 갑작스레 들리는 인간의 실제 음성에 뒤를 돌아본다. 보통의 머리 길이에 작고 가느다란 아니 약간은 마른형의 얼굴과 골격의 사내였다. 인간인가? " 누구인지 이름은 알 수 없으나 허무에 시달리는 자여. 그대 또한 나와 같이 기억을 지속해야 하는 자. 망각이 건널 수 없는 성역에 안착한 자. 난 노마비스크. 망각에서 살아남아 허무와 공존해온 너와 같은 사람이지. " 27세. 프라이언 세스. '20세기 마지막 십자군'에 선정된 검술사. 성단(聖斷) 도장의 운영자. 친구를 베어버린 기억마저 짊어지게 된 자. 허무의 끝에서 공유에 닿는다.
" 난 프라이언 세스. 보시다시피. 이미 스러져 가는 친구들을 베어온 자. " 그는 붉은 빛이 얼룩덜룩 묻어난 일본도를 들어 보인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온 사내인가. 노마비스크는 서서히 그에게 다가간다. 미리 예상했던 일. 이 망각이 도시 전부를 집어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남는 자. 말하자면 망각으로부터 제외된 자가 나 이외에 또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 만약 홀로 남는 것이었다면 홀로 선택받는 일이었다면 나만을 위한 계시랄지, 징조랄지, 그리고 날 인도할 특별한 장치가 존재했을 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알고 있었다. '망각에서 제외된 자들이 무리를 이룰 것이다 .' 라는 사실을. " 그대여. 이제 다시 걸읍시다. 저 탑을 향해 다시 몸을 움직입시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 프라이언 세스는 말없이 매우 숙련된 자세의 움직임으로 땅에서 묻은 흙을 일본도에서 떨어내며 칼집에 집어넣었다. 마치 소리 없는 춤의 격한 절정처럼. 차분하지만 제어된 힘의 극한을 보는 듯 했다. " 훌륭하군요. 혹시 .." " 그렇소. 말하자면 검사 출신입니다. 검술도장을 5년 째 운영해왔으니까. 당신은 말하는 게 일반인과 조금은 다른 듯 한데. " " 전 세뮤얼 철학 아카데미에서 강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어투가 다른 편이죠. " " 헌데 당신은 어떻게 내 심연 속에서 울려 퍼지는 허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소? " " 아 그것은.. 당신의 말에서 듣고 있었답니다. " " 대화라는 것은 말입니다. 한 쪽의 문구들만 정렬하더라도 나머지 상대방의 문구들을 유추해낼 수 있거든요. 당신의 괴로운 모습과 당신이 내뱉는 말을 듣고서 허무, 말하자면 당신의 가슴속에 흘러 다니는 허공의 음성을 잡아낸 것입니다. " " 그렇다면 뭐라고 하던가요. 아니 말이 끊어져서 다 듣지 못했습니다만. " " 그들은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익숙지 못한 사유를 비아냥거리는 것뿐이죠.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과정이다. 보다 큰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난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 그렇다면... " " 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죠. 지금 일어나는 것이 분명 우리가 알고 있던 현재와는 다르거든요. 그렇다면 어딘 가로 가고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현상 이후로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 가는 존재라면 이 현상, 망각의 하위적인 존재. 말하자면 어딘 가로 가기 위한 부가적인 장치이겠죠. " " ... " " 아닙니다. 물론 그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었겠죠. 들어보니 그렇군요. 하지만 아직 저에게는 이 현상보다 제가 베어 쓰러뜨린 친구의 음성이 더 강렬하답니다. 그 피냄새가 아직 저를 떠나지 않고 있거든요. 현상이나 논리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 " 예.. " " 어째서 기억이 내게 남아있는가 " " 바로 그것에 대한 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 사유와 실제의 검으로 부딪쳐 베어온 자의 만남이라... 어찌 되었든 허무의 목소리에 의지하지 않고도 우린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상에 대한 것이든 지금 걷고 있는 나와 그대, 프라이언 세스에 대한 것이든 간에 말입니다. " " 예.. 배고파 보이시는데 무엇 좀 드셨습니까? " " 아뇨. 적당한 책 몇 권과 소량의 식량만 준비하는 바람에 만 하루 째 굶고 있습니다만." "그럼 이것부터 드시죠, " 웃으며 프라이언이 내놓은 것은 작은 소시지였다. 노마비스크는 사유를 잠시 멀리 놓아본다. 지금은 배고프다. 빵만 가지고 살 수 없다 했는가? 아니 그전에 빵이 없다면 그 이후의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 없다. 이제야 그 의미를 이해할 것 같다. 생각할 것이 산재한 시공간과 배고픈 물리적 상황에 처한 지금 그 간극에 갇힌 뒤에야 진정으로 몸의 언어로 이해한다.. 잠깐. 휴. 어쨌든 지금은 배가 고프다. 생각은 멈추자. 노마비스크는 입에 소시지를 문다. 시선을 닫고 사유를 진정시키고 배고픔을 달랜다. 세뮤얼 철학 아카데미의 수석 강사. 25세 노마비스크. 그토록 수많은 사유로 세상을 재고 어법을 수행해왔지만 그에게는 오늘에서야 달빛을 향해 걷는 여정에 대화가 형성되었다. 처음으로 망각에서 살아남은 나 이외의 존재를 만나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공유하고 대화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정체성을 정립해온 기반이 모두들 지워진 다음에야, 망각의 숨에 기억들이 스러지고 허무의 자락이 그들을 삼킨 뒤에야, 홀로 남은 기억의 소유자는 그토록 원하던 시점에서 대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탑 위에서 지지 않는 달의 은은함에 취하며 오랜만에 사람의 향취에 중독 되어 그들은 걷는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가슴에 꼭 껴안은 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