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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에 피운 實相의 꽃
서재영(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허공으로 흩어지는 연기
실상화 보살님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던 49재 날은 12월 초였지만 봄날처럼 포근했다. 자비롭던 보살님의 손길처럼 바람은 훈훈했고, 그늘진 곳을 보살피던 눈빛처럼 햇살은 따사로웠다. 보살님은 마지막 떠나시는 순간조차 따사로운 햇살처럼 세상을 비추고, 한 줄기 훈풍처럼 온화함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았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례가 모두 끝났다. 참석자들은 보살님의 영정을 따라 길게 줄 지어 진관사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 소전대로 향했다. 49일 동안 영단을 지켜왔던 위패와 종이옷들이 하나씩 소전대 위에 올려지고 마지막으로 영가를 떠나보내는 봉송의식이 진행되었다.
보살님이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차마 보살님을 보내지 못하고 영정과 위패에 마음을 의지해 왔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허공을 가르는 봉송게와 함께 불꽃으로 사라졌다. 순간 한 줄기 하얀 연기가 솟구치는 불길을 따라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 때 천년 고찰 진관사의 해묵은 소나무 군락 사이로 초겨울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영가를 맞이하러 오는 아미타불 성중들같이 햇살은 소전대 위로 눈부신 빛의 다리를 놓았고, 하얀 연기는 찬란한 광명을 따라 허공으로 흩어졌다.
본시 삶이란 한 점 뜬 구름이 모이는 것과 같기에(生也一片浮雲起), 죽음은 허공을 떠돌던 구름이 흩어지는 것과 같다(死也一片浮雲滅).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이(浮雲自體本無實), 나고 죽는 것도 그와 같아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본래 없다(生死去來亦如是). 이치야 그렇지만 한 줄기 빛을 따라 허공으로 흩어지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사무치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었다.
실상의 입장에서 보면 오고 감이란 본래 실체가 없다. 하지만 바람 따라 일어나고, 바람 따라 사라지는 뜬 구름 같은 흐름 속에서 오히려 실상의 작용이 드러나는 법이다. 실상화 보살님은 뜬 구름 같은 인생 속에서도 베풂의 삶을 살았고, 오고 감에 자유롭지만 사바세계를 향기롭게 하는 보살행의 삶을 살았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흩어지는 뜬구름 같은 삶 속에서도 보살님은 천리에 향훈을 풍기는 실상의 꽃을 피워 낸 것이다. 그 분의 삶 자체가 그대로 실상의 꽃이었기에 그 이름도 ‘실상화(實相華)’로 불렸다. 비록 육신은 뜬 구름처럼 인연의 바람을 따라 흩어졌지만 이 땅에 쌓아올린 공덕의 탑은 천추가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무주상 보시로 피운 보살행의 꽃향기는 만인의 귀감이 될 것이다.
여성운동의 선각자
보살님의 삶을 되짚어보면 그 삶이 그대로 보살행의 여정이었다.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보살님은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사회에 첫발을 들려놓았다. 보덕 거사님과 백년가약을 맺은 이후에는 지혜로운 아내로 보덕 거사님을 내조하며, 여러 명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보살님의 활동과 지혜는 가정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뻗어갔다.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정책 자문위원, 한ㆍ일 친선협회 이사, 향산 장학회 회장, (사)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 수 많은 여성단체와 사회단체에서 중요한 소임을 맡아 우리나라 여성운동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실상화 보살님의 사회활동은 특히 불교계 여성단체에서 그 활약이 두드러졌다. 여성 불자 모임인 불이회의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재단법인 보덕학회 이사, 사단법인 지혜로운 여성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불교계 안팎으로부터 신망 받는 여성 불자로 존경을 받아 왔다. 수십 년 동안 한결 같은 원력으로 활동해 온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불교여성개발원으로부터 ‘여성불자 108인’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09년에는 제3회 ‘한국여성불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살님이 이 땅에서 보여준 행적은 그런 상으로 담아낼 수 없을 만큼 가치 있고 큰 것이었다.
재가불교운동의 새장을 연 불이회
실상화 보살님이 본격적으로 불교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4년 여성 불자 모임인 불이회의 결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살님은 미술관 순례모임에서 만난 6명의 여성 불자들과 원력을 모아 ‘불이회(不二會)’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후 3차례에 걸쳐 불이회 회장을 맡아서 회원들의 신심을 견고히 하고, 전국 각처의 선지식들을 모셔서 불이회 법석을 열었다. 불이회는 회원들 상호간의 친목도모와 자기 공부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봉사활동과 후원활동으로 실천영역을 확장해 갔다.
실상화 보살님이 초대와 2대 회장을 잇달아 맡은 불이회는 창립 첫해부터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체계적으로 불교를 배우고, 바른 신심을 고취하기 위해 1974년부터 경향각지의 큰 스님들과 우리사회에서 존경받는 학자와 명사들을 초빙하여 불이회 강좌를 열기 시작했다.
불교와 인문학을 주제로 한 수준 높은 강좌를 통해 불법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심을 고취하였고, 회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게 하고, 책임 있는 리더로서의 품성을 함양하는 기회로 만들어 왔다. 이렇게 시작된 불이회 강좌는 지난 40여 년간 매년 연평균 10회 내외로 꾸준하게 지속되었으며, 현재까지 총 500회가 넘는 강좌를 개최하며 최고의 법석을 만들어왔다.
이렇게 다진 신심을 바탕으로 건봉사, 남해 보리암, 해인사 등 전국의 대소 사찰에서 진행되는 불사에 수희동참해 왔다. 특히 군포교 활성화를 위해 직접 군부대를 찾아가는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종단을 통한 재정적 후원에도 오랫동안 참여해 왔다. 나아가 보육원, 아동복지시설, 노인복지시설, 교도소 등 도움이 필요한 복지시설 등을 두루 찾아다니며 자비의 손길로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는데 앞장 서 왔다.
인재육성의 디딤돌이 된 불이상
실상화 보살님이 불이회를 이끌면서 보여준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불이상 제정을 꼽을 수 있다. 불이회 회원들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을 통해 불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때 실상화 보살님을 비롯한 불이회의 주요 회원들은 고 이기영 한국불교연구원 원장님을 찾아갔다. 그 때 이기영 원장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불이상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한국불교를 중흥시킬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큰 원력으로 불이상을 제정하고 1986년 첫 번째 시상식을 가졌다.
이렇게 시작된 불이상은 2016년 현재까지 총 31회에 걸쳐 90여 명에게 불이상을 시상함으로써 불교인재 육성에 이바지해 왔다. 제정 당시 네 개 분야로 시상하던 불이상은 보다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술연구와 실천부문으로 시상해 왔다.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와 스님은 물론 포교와 사회봉사 분야에서 헌신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발굴하여 시상함으로써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불교인재 육성이라는 제정 취지에 맞게 현재 불이상 수상자들은 학술연구, 전법포교, 사회봉사, 문화분야 등 각 분야에서 한국불교를 떠받치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보덕학회의 설립과 무주상보시행
실상화 보살님의 불교활동은 재단법인 보덕학회를 창립하면서 활동의 폭과 깊이가 더해졌다. 실상화 보살님은 배우자 보덕 류흥우 거사님(보덕학회 이사장)과 함께 사재를 출연하여 1993년 3월 30일 재단법인 보덕학회를 설립했다. 당시 문체부로부터 제1호 재단법인으로 설립인가를 받은 보덕학회는 지난 23년 동안 학술, 문화, 사회사업 등 불교계 전반에 걸쳐 재정 후원을 비롯해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 왔다.
보살님은 재단의 감사와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사업과 전법교화를 펼치고 있는 불교계 단체와 개인들을 대상으로 재정을 후원하는 등 활동을 격려해 왔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사회에 회향하겠다.”는 정신으로 설립된 보덕학회는 “삼보를 호지하고, 자비의 손길로 이웃을 보살피겠다.”는 것을 목표로 지난 20여 년 동안 전국 곳곳에 수많은 불사를 지원하고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후원해 왔다. 그동안 보덕학회가 펼쳐왔던 활동은 크게 다섯 가지 분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덕학회가 펼쳐온 가장 비중 있는 사업은 삼보호지와 관련된 사업이다. 2010년 논산 훈련소 호국연무사 신축불사에 거액의 불사금을 쾌척한 것을 비롯해 육군사관학교 화랑호국사 연화당 건립불사 등 보살님은 군불교 진흥과 군포교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다. 나아가 전국비구니회관 서울 법룡사의 만불당 불사지원, 중앙승가대학 비구니 수행관 시설 지원, 불광사 중창불사 후원 등 크고 작은 불사에 삼보호지의 심심과 원력으로 동참해 왔다.
둘째, 학술분야 대한 지원이다. 보덕학회는 경전과 불서 발간을 꾸준히 지원해 왔으며, 불교학술 단체에 대한 재정 후원으로 불교학 발전에도 크게 공헌해 왔다. 실상사 화엄학림에 연구비를 지원하여 화엄현담 한글 역주가 발간될 수 있도록 했고, 동학사 화엄학림에도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스님들의 교육과 인재육성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아가 한국불교학회와 불광연구원 등 불교학술단체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으로 불교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 왔다.
이 밖에도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 번역사업, 한국불교연구원의 원효사상전집 발간사업, 성보문화재연구소의 한국의 불화 발간사업, 광덕스님 전집 발간사업,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빠알리 성전 번역사업 등 수 많은 학술사업과 출판사업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셋째, 보덕학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지원해 온 분야는 각종 사회복지 시설에 대한 후원이다. 복지시설 중에서도 신체적 장애로 고통 받는 장애인 복지시설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자비를 베풀어 왔다.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의 장애인 시설비와 2005년에는 승가원 이천 자비복지타운 건립에 큰 예산을 쾌척하여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큰 힘을 보탰다. 나아가 부산 천마재활원, 청각장애인시설 연화복지원, 시각 장애인시설 법등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시설 법흥사 연꽃마을, 시각장애인 시설 대전 아나율복지관, 아동복지시설 대전 자혜원 등 전국적으로 수많은 장애인 복지시절에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 왔다.
넷째,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 사업에 대한 후원이다. 월간 불광에서 개최했던 ‘부처님 그림 그리기 대회’와 글짓기 대회에 오랫동안 소요 경비를 후원하여 어린이들의 가슴에 부처님의 자비를 새기는데 버팀목이 되어 왔다. 어린이 찬불가를 제작하는 풍경소리를 지속적으로 후원하여 어린이의 가슴에 부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지도록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밖에도 대한불교어린이자도자연합회, 부다피아 어린이 여름캠프 등 각종 어린이 청소년 사업에도 빠지지 않고 후원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실상화 보살님은 꼭 도움이 필요한 가치 있는 사업들을 선별하여 후원해 왔다. 이와 같은 보덕학회의 후원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열어 가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 왔다.
다섯째,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다. 보살님은 남다른 안목으로 전통문화와 불교문화 발전을 위한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 경주 남산 석불자료 수집사업 후원, 경주 남산 일어 ․ 영어판 지도제작 후원, 석불문화유산 홍보활동 후원, 신라문화원 후원 등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와 홍보에도 깊이 있는 안목으로 보살펴 왔다.
특히 전통 한옥에 조예가 깊었던 보살님은 안동 화회마을에 전통 한옥 심원정사(尋源精舍)를 건립하여 건축계는 물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심원정사는 3년에 걸쳐 전통 한옥의 건축 기법대로 건축되어 전통 한옥의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살님은 심원정사의 건립과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세히 기록하여 어머니가 지은 한옥(1996, 보덕학회)이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전통 한옥을 연구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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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두 군데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같습니다. 필자와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