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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여지
박시현선생님께서 아침에 간략히
복지요결에[대안학교 교제 page 329] 대해
강의해 주셨다.
다름과 여지 중에서도
2. 다원주의, 상대주의 부분을 강의하셨다.
우정이의 글을 보고,
이 강의를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난다.
쉽다.
다만, 행하지 못 할 뿐이다.
왜 그럴까?
한심스럽다.
책의 내용을 보면,
'고기 국이 비록 맛있다 하나,
여러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상대적이다.
누구에게는 어떤 것이 맞고,
누구에게는 어떤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 것을 배려에 비추어 보면,
주상이형이 말한 배려가 생각난다.
나의 배려 수치가[높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90이고, 남의 배려 수치가 50이다.
자신은 자신의 배려를 최고로 한 수준이다.
타인도 마찬가지다.
최고로 높은 수준으로 한 수준이
저 정도 수준이다.
허나 90과 50에는
Gap이 생긴다.
이 것은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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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하불명[燈下不明]
지금 글을 쓰면서도
참으로 부끄럽다.
이전의 글을 보면,
'조부모의 기억에 향수를 느낀다.' 라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조부모가 없나?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신다.
그렇다면,
왜 난 친조부모에게 향수를 느낀다고 했을까?
친조부모에 대한 애착, 미련 때문일까?
그것을 느끼게 한 것이 있다.
무료로 자취방을 내어 주신,
고마운 집주인 어르신이 계신다.
집주인 어르신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은 사소한 것까지
우리들을 신경써 주신다.
오늘 마당에 나갔는 데,
어르신이 혼자서
밭에서 기른 콩을 까시고 있다.
난 옆에 가서,
"어르신, 저도 한번 까봐도 되요?"
여쭈어 본다.
어르신은 흥쾌히
"어~ 그래 한번 해봐라"
하신다.
그렇게 콩을 까면서,
"험한 세상에 아직까지 이런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 아직은 살만한가보다"
하신다.
친구가 칭찬해주는 것보다,
더 힘이 된다.
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된다.
대상자분들도 많지만,
내 자신에게 힘이 되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주위에 분들께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첫댓글 함께 콩을 까며 하신 어르신의 말씀.. 나도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책임감이랄까.. 더욱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깊은 생각, 나눔 항상 고마워!
이것이 농활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 우리 서로 win- win 하자^^
등하불명 燈下不明 이겠지?
집에 들어서다 성철이가 주인집 어르신과 마주 앉아 콩을 까는 모습에 눈길이 멈춰 섰었지. 어르신께 정식으로 인사 드려야 하는데.. 늦지 않아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어르신 일상에 편안하게 함께 해준 성철이 덕분에 그 짐을 던 기분이었어. 고맙다, 성철아.
그래, 그러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관심갖고 사랑하고 감사하자. 성철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