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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비밀통로였기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동-서 방향으로 가던 성벽이 남-북 방향으로 바뀌는 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처럼 성벽의 방향을 바꾸어 설치한 것은 이 지점의 지형에 굴곡이 없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성벽이 적대의 기능을 할 수 있도 록 하고 외부에서 암문이 관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암문은 제1남옹성과 신남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써 남쪽 성벽 에 설치되고 암문 중에서는 가장 이용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
제1남옹성에서 성벽의 동쪽으로 제2남옹성과 제3남옹싱이 성벽 밖에 있다. 그 성곽을 버리고 암문을 나가면 한양삼십리누리길
종합안내도가 있는 도로 따라 가게 된다.
옹성을 눈 요기하며 검단산 1.8km으로 가는 이정목과 성남누비길이라 쓰인 작은 이정목이 수시로 있는 길이다. 쌈지공원에는
병자호란 이야기가 적힌 글들이 눈길을 잡고 사연도 많다.
2번 째 쌈지공원에도 병자호란 이야기도 그렇고 성내에서 400년 전 일어났던 슬픈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도로
따라 524고지의 현위치목도 지나 숲 우거져 햇빛을 가리는 상쾌한 길이다. 검단산 가는 길~
한양삼십리누리길과 갈라지는 검단산의 목책계단에 적힌 검단산 0.3km의 이정목을 지나 공군부대에게 내어 준 산정까지 오를 수
가 없다.
검단산 정상(공군부대,,△534.7)지도상
을 돌아 창송공원과 성천약수로 가는 이정목의 방향키 따라 잠시 가면 검단산 정상석이 있는 넓은 헬기장이 있다. 여기가 검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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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 정상석]
성남누비길이기도 한 지맥은 경기도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남진한다. 밧줄잡고 걷다 이배재고개와 망덕산(왕기봉)의 이정
목이 첫 선을 보이면서 수시로 망덕산의 이정목이 있어 길 염려는 묶어도 되겠다. 사기막갈림길과 산초나무길에 우거진 참나무
숲이 주는 신선함이 고스란이 묻어나고
사기막능선의 현위치목을 지나 신남성돈대의 성남누빌길이 안내판을 세워진 길이다.
[망덕산(왕기봉)]
광주시 중부면(남한산성면), 광주읍, 성남시의 경계를 이루는 먹색파선 3개가 만나는 삼거리 500봉이다. 운동기구도 있고 긴의
자가 있는 3개면의 시민들이 산책로가 되는지 아줌씨들이 모여있다.
이제 이배재 가는 길~
이정목에 쓰인 길 따라 보통골갈림과 원탁이 있는 이배재정상의 현위치목을 지나 2차선 지방도로 이배재고개의 이동통로를 건넌
다.
[이배재고개]
서쪽으로는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이며 동쪽으로는 광주시 송정동의 고개이다.
성남누비길의 안내판에 쓰인 이배재고개는 '성남시 상대원동과 광주시 목현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해발 300m 상에 위치하며 절을 두 번하는 고개라는 뜻으로 이배재라는 명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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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청계산과 관악산의 산줄기에 내려 앉은 성남시의 시야가 트인다. 갈마치고개의 이정목과 철탑을 지나 대원약수터 갈림
의 성남누비길 이정철주를 0.3km 지나자 머리에 달고 살던 연리지가 두 손 들어 준다.
이 구간에서 남다른 기억에 남아 있던 연리지,
연리지 앞에 수북히 붙은 표지기가 달리고 그 뒤 나무가 하늘 향해 사진기에 담아 냈다.
얼마나 컷을까, 변했을까
2007년 1월 25일 겨울 날 이틀씩 걷던 아침, 내가 그린 연리지를 나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 "사랑나무"라 부리는 소나무의 보호수를 보았다. 양지바른 언덕에 나란히 누운 네 무덤 옆에 앉아서 배 고픈지도 모르게 걸어온 배를 채웠다. 들어가지 않는 찬밥덩이를 넘기려니 안 넘어가 어제부터 등에 지고 온 성의가 괘씸하여 창자에 구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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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나는 연리지 앞에서 등짝에 진 봇짐을 풀어 찬밥덩이를 넘기고 있었다. 그 때 먹던 찬밥덩이가 오늘은 따스한 햇
살에 밥도 찬도 따뜻했다. 철탑지나 갈마터널 위에서 목책계단 공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의 따뜻한 커피 한 잔도 산행에 즐거움을
더 했다.
'성남누비길 검산산길 여기까지가 제2구간입니다'[갈마치고개]생태통로였다. 경기도 성남시 동쪽으로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요'자 모양의 산지기를 형성한다. 신성한 산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검단산길이란 안내판을 본다.
단어의 잘못된 일제가 남긴 표기도 있다.
이제부터는 성남누비길의 영장산길 제3구간이다. 영장산의 유래가 적힌 산길에 영장산으로 가는 이정목이 수시로 붙고 갈마치
고개를 밀어낸다.
[영생관리사업소 갈림]과 [갈현동 웃말 갈림] 등의 영장산길을 걷자 삼각점을 밟게 된다.
[△322.7봉]의 삼각점을 딯고
[모리야산 갈림]을 지나 중원터널 위를 지난다. 조망쉼터에서 성남누비길에서 만든 성남시가지의 풍광을 쑤욱 내밀어 보고
[x357.8봉]의 제주에 사시는 돌바람님 표지기가 반가움에 그지 없고 그 아래서 홀대모 모임 때 인연이 되었던 돌바람님의 생각에
잠시 머문다.
한라산 구경을 편히 하고도 몇 년, 서쪽으로 가면 성남시 도촌동과 분당구 야탑동의 경계의 능선을 갈 수 있다.
영장산 능선의 갈림길이 많다. 남서울공원묘지 옆 등산로로 오르니 영장산이다.
[영장산]
[영장산 삼각점]
백제 온조왕이 건국 이후에 하남위례성에 이도를 하고 일대를 돌아본 결과 영장산이 아름다워 자주 사냥을 나왔다는 산으로, 온조 왕의 산정이 영원하게 하여 달라는 주문의 성령장천 이라는 말에서 전해오는 천하의 명산, 정감록에는'영장산하사십팔대정상지지 십승지지'라는 구절이 전해온다는 천하명당 길지로 소문난 산이다. |
영장산은 십승지라는 말에 솔깃 귀가 솟고,
돌탑을 지나 새마을연수원 갈림에 있는 곧은골고개이며 태재로 가는 이정목이 수시로 붙고 일곱삼거리의 현위치목도 지난다.
율동과 마을유래가 있는 안내판도 역시 성남누비길의 성남시에서 설치되고 정자가 있는 쉼터를 지나며 강남컨트리클럽의 철책
이 담장 따라 간다.
율동뒤 능선이다. 골프장 담장에 표지기가 붙은 삼거리 앞에 민가가 나무 사이로 보이는 곳에서 가는 길을 잘 봐야 한다. 그
냥 무심코 가면 잘못 가는 길로 내가 그랬다.
'영장산과 태재고갱'의 이정목인 [일곱삼거리]를 지나 철책을 따르고
오포읍 새말의 철책을 따라 '산악자전거 자제'를 하라는 현수막이 붙은 율동뒤능선을 따라 태재고개로 간다. 수시로 갈림길에
붙은 성남누비길의 이정철주가 있다.
철탑 아래 보이는 주택가 위 가 [새마을고개]인데 지저분하게 붙은 철책을 지나 빌라 뒷 길을 걸어 금계국과 낭아초가 길가에 수
놓은 길을 지난다.
이정목은 '태재고개 1.5km, 영장산 4.5km'
민가의 담장과 붙은 논적골고개와 넘어골고개, 철탑 위 x240.3봉을 지나 '등산로 폐쇄'라 쓰인 노란팻말에는 불곡산이란 이름을
올린다. 영장산길 제3구간을 내려 가면 긴타원형의 태재육교를 지나게 된다.
하늘에 솜털처럼 피어 두둥실 뜬 구름이 인상 깊고 광주시 오포읍과 성남시의 경계인 2차선 도로 '오포읍 신현4리 웃태재'란 마을
석 앞에 섯다.
[태재]였다. 사람사는 동네였다. 도시였고 상점이 즐비한 태재에서 친구한테 날아 온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사진을 보며 막
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17번 버스를 타고 성남시 전철역으로 와 몇 번의 환승을 했다.
오늘 밤도 내 책임 다하기 위해 동네 한 바퀴 순찰하고 바쁜 하루 시간은 또 그렇게 갔구나. 오늘 산줄기 중 십승지의 영장산이
스치며 그래도 도심에 힐링코스겠지,
이틀 후,
[태재]
얼마남지 않은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3시간의 시간이 걸렸다. 웃태재로 왔다. 성남시 분당구와 광주시 오포읍의 경계로 57번
의 지방도로의 구도로였다.
들머리 초입에 성남누비길 불곡산길제4구간의 산길과 겹치는 길은 여전히 따라 와 있다. 밤나무,소나무 우거진 시민들의 산책로
높지않고 한길처럼 트인 산길 오르막도 느슨하다.
불곡산의 유래가 적인 안내판과 성남누비길의 안내도, 불곡산의 이정표는 2.0km로 부터 시작된다. 등산로에는 '산마을 깊은 밤
을'의 이은상 작, '만추의 뜨락'의 이차남 작 등 등 재미가 솔솔난다.
운동기구 설치물을 지나 [수내동갈림길]과 [명상의 숲]을 지난다.
[불곡산 정상]
불곡산이란,
불곡산은 부처님이 있는 골짜기를 품은 산이란 뜻으로, 주민들이 이 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여기고 산신제를 지낸 곳으로 유래해 성덕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성덕산은 백제시대의 태자궁에서 훈련을 할 때에 영장산부터 성덕산으로 이어진 훈련코스에 서 사냥을 하기도 했는데, 특별히 왕이 동참하여 사냥에 나서면 많은 군중이 왕의 건재함에 탄복하여 만세를 불러 왕이 은전을 베 풀어 왕의 성덕이 영원하라는 뜻의 '영덕성세'라는 산말을 가지고 있다. 현지에서는 효종산, 부성산이라고도 한다. 구전에 따르면, 지금의 골안사 자리에서 '미륵불이 땅에서 솟아 올랐다'해서 불곡산 이란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
정상에는 정자, 운동시설 등 불곡산의 안내도가 있는 분당과 광주시의 시민의 터로 제공되고 있는 산, 길도 눈 감고 갈 수 있을 정
도로 트였다.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가 밧줄 설치된 길로 불곡산을 내려 [이마트갈림길]을 지나 정자동의 이정목을 따라 가면 되나 보다.
[부천당고개]
불곡산을 내려선지 0.2km에 [부천당고개]란 현위치목이 있고 연달아 또 부천당고개다.
불곡산에서도 한국전쟁 때 전사한 장병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한국정잰의 슬픈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곳
불곡산도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갈림길의 이정목이 수시로 붙어 마을로 가는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구미동 주택단지. 광주시 신현동 등 등 갈림길을 버리
고 불곡산능선의 구미동 대지산으로 따라 가면 쉽다.
죽전동 갈림길과 대지산정상 갈림길의 이정판을 지나 잠시 오르면 촘촘히 박힌 잔솔향 콧속을 파고들 부직포가 깔린 길로 간
[대지산]
[대지산 삼각점]
발아래 남쪽 철책을 두르고 있는 강남공원묘지가 내려다 보이고 동쪽으로 숯돌봉, 서쪽으로 경부고속국도의 죽전휴게소를 지나는
강남공원묘원 철책을 따라 거꾸로매달리기 운동기구 사이로 대지산을 내려 간다. 사각석곽묘가 나란한 길에는 앞에 보이
는 철탑 지나 가야할 산등성이 올려다 보이고 쉴 새없이 날벌레와 개미떼가 몰려든다. 눈에 자꾸 들어가 나오지 않고 신경쓰인다.
자꾸 비벼도 아프고 홀대모 에이원님의 전화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이미 무심이님이로 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던 이야기로 11월
2일 낙동정맥 정족산 아래에서 모임이 있다고 한다. 그 때 가야지,
포장도로의 민가 앞으로 내려섰는데 민가의 개 떼가 울타리 안에서 달려든다. [대치고개] 43번 4차선국도의 중앙분리대가 있고
도로건너 새건물이 공사 중으로 대치고개를 건널 수 없기에 죽전동 방향으로 포장도로 따라 간다. 햇살을 고스란히 받고 차소리
의 소음이 시끄럽다.
성현마을 광명아파트 앞 43번국도의 죽전육교 아래를 통과, '43'광주'란 교통판의 옹벽 위로 올라 사면을 타고 가야겠다. 움막
을 지나 지저분한 숲의 희미한 길 따라 사면을 타다 졸참나무 우람한 트인 길의 능선 위로 올라선다.
긴의자 두 개가 있어 한 숨 쉬어 오르면 시야가 확트인 천주교용인공원묘지가 펼쳐지는 정자 위에 배낭을 풀었다.
[천주교용인공원묘지]
널따란 공원묘지, 수없이 즐비한 묘지들, 그 중 김수환추기경의 묘를 찾으려 기우뚱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 멀리
있을까. 묘지 사이를 가르고 있는 길 가 아래 있을가, 추기경하면 봉분이 좀 더 크지 않을까, 나름 생각도 해 보고.
길을 나섰다.
산과 묘원을 가르는 산길을 따라 법화산 정상의 이정목도 있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길을 지나다 산길로 잠시 들기도 하고
'용인공원 봉안묘역 안내(E블럭)안내판 뒤 '법화산 정상 1.3km'의 안내판도 능선 위에 있다.
가야할 능선의 헬기장 넘어 산이 겹이 흐르는 조망이 여기도 마찬가지, 법무연수원 갈림의 이정목은 법화산 가는 길~ 쉼터
가 보이고 능선 위에 서니
나무데크가 조성된 [법화산]정상에 있었다.
가야할 능선의 골프장과 분기점인 향수산의 조망이 트이는 법화산 정상에서 차근히 돌아보는 일은 권장할 만하다. 저기로 가려
고 긴 산터널을 걸었던 생각도 잠시 머물고.
법화산 쉼터가 보이는 길로 다시 돌아 와 진행은 서진하며 트인 길로 간다. 철탑을 지나 '영남길'이란 긴표지기도 눈에 띠고
골패인 골프장 철책에 붙은 '경고문'에 산객들의 표지기가 붙어 그래도 갈 수 있는 길인가 혼잣말을 하면서 굴곡진 길을 내렸다
철책을 따라 군부대시설물이 원형을 그린 교통호가 있는
골프장 도로의 [무푸례고개]로 내려섰다가 올라선다.
고도를 높혀 숨죽여 오르고 평일이라 없을 것 같은 분들이 휠드를 누비고 있었다. 잘못 판단한 순진한 마음을 눌러 가며 능선을
가고,
낮은 산도 쩡쩡 울리는 큰 소리가 들려 왔다.
골프장 안 시설물에서 쫒겨 나 도로에 앉아
500m 남겨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분기봉, 향수산이 저기인데, 500m 남겨놓고 못 가', 골프장 도로를 따르고 있었다. 게네들은 카트를 타고 나는 뒷뚱거리는
오리걸음으로 저수지같은 도로를 지나 철책을 따랐는데 출구는 없고 둘레가 모두 철책이다.
개망초 흐르러니 핀 묵밭도 돌아 보고 출구가 없어 험한 잡목을 헤치고 뚫어 놓은 개구멍을 나오니 개 두마리가 신이 난 듯 짖어
댔다.
혹 개목줄이 없나, 다행이 그 민가를 지날 수 있었다.
청덕리 마을 도로에 앉아 거지같던 날 정리하고 배낭을 챙겨 무푸레마을 4,6단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전철
안에서도 개구멍 탈출한 나는 웃고 있었다.
향수산의 분기봉, 한남정맥 때 향수산이라는 것도 모르고 스치던 산이라 이번엔 꼬옥 찍어야지 했던 마음도 물거품되고 말았
다. 용인에 오면 골프장도 공동묘지도 온통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는 산들이기에 오늘도 이렇게 남한산성지맥의 끝나는구나.
마침표를 찍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