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제13조(고의)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대한민국 형법의 관련 조항[2]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 Recklessness)는 법률 용어 중 하나로,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2. 상세
현대 형법은 범죄행위에 관한 기본적인 '고의'를 요하며, 과실범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요구한다. 고의가 부정되고, 과실범 처벌 규정 또한 없는 경우에는 죄형법정주의에 의하여 처벌할 수 없다. 또한 고의범에 비해 과실범은 그 처벌 수위가 매우 낮은 편이기 때문에 고의의 성립 여부는 죄명과 형량의 결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를 불러 온다. 그렇기 때문에 고의가 어디까지 미쳐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결과 발생에 관한 부분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지만,[3] 그 행위자의 '의사'는, 관심법을 쓰지 않고서야 정확히 계측하기 어렵고 결국은 평가의 영역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예컨대 B가 A가 쏜 총탄에 맞아 죽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밖으로 표현되는 '결과'는 A의 행위로 인한 B의 사망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A의 내심은 다음과 같은 경우로 나뉠 수 있다.
1) A는 B의 심장을 노려 즉사시킬 의도로 B에게 사격하였고, 그 계획대로 B는 사망했다.
2) A는 B의 심장을 노려 즉사시킬 의도로 B에게 총을 쏘았으나, B는 하복부에 총을 맞았다. 다만, 과다출혈로 인해 B는 결국 사망했다.
3) A는 사격 연습 중에 B가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 평소 B를 싫어하던 A는 B가 지금 있는 위치는 총탄이 조금만 빗나가도 죽을 수 있는 위치임을 알았으나 오늘 B가 죽어도 할 수 없겠지 생각하면서 사격 연습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했다. 이후 표적에서 약간 빗나간 총을 맞고 B는 사망했다.
4) A는 멀리서 오는 B를 보며 사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 A는 B가 조금 더 접근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 B가 위험한 이곳에 접근할까 생각하며 사격 연습을 계속했으나, B가 부주의하게 접근해 그만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5) A는 B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혼자 사격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갑자기 엉뚱하게 불어 총탄이 B를 향해 날아가버려 지나가던 B가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1)은 아주 확정적인 살인의 고의범이라는 점과, 5)는 의도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여 살인의 고의범이 아니라는 점(다만, 과실치사는 처벌규정이 있으므로 이 규정에 따라 처벌받음)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고의의 개념을 매우 좁게, 진실로 의도한 내용대로 확정적으로 실현되는 경우만으로 좁게 한정한다면 1)이외의 2)~5) 사안은 모두 고의범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발생의 '인식'만을 중시하여 본다면 5) 를 제외한 1)~4) 모두 고의범으로 처벌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고의와 과실의 구별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처벌의 기준이 달라져 버리므로, 고의와 과실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현대 형법학은 2) 영역은 일단 고의범으로 인정하는 데 동의한다. 총알을 쏘는 수단을 통해 사람을 사망시킨다는 계획이 본질적인 고의의 내용이므로,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맞추겠다는 고의는 그 고의의 핵심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3)~4) 영역은 위 설명에서의 모호함에서 드러나듯이, 아직까지 분명한 경계가 나뉘지 않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3) 사례에서의 A는, 꼭 지금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길 원하진 않지만 만일 지금 사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라는 결과 발생의 수용을 하였고, 4) 사례에서의 A는 B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을 전혀 수용하려는 의사가 없었다. 즉, 4)는 죽는 상황 발생 가능성을 인지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고찰을 거쳐서, 현대 형법학은 3)은 본 항목에서 설명하는 미필적 고의로 고의의 내용에 포함시키고, 4)는 인식 있는 과실로 보아 고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행위자의 기본적 의사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고, 주변상황을 아울러 고려해 판단하고, 그 판단을 해도 애매한 경우에는 '의심스러울 때에는 행위자에게 유리하게' (in dubio pro reo) 원칙에 따라 고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욱해서 사람을 때렸는데 갑자기 죽었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예견이 가능하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는 투로 때렸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므로 대개의 경우 행위자에게 유리한 방향인 미필적 고의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상해치사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결과발생의 가능성만 인지한 것만으로는 과실범 내지 과실범과 고의범의 결합인 결과적 가중범만 성립하며, 죽어도 상관없다는 의사가 100% 명백해야만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데 법원에서도 판단하는 것 자체가 골치 아프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욱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칼로 명치를 찔러 그가 죽은 상황에서 찌른 사람은 한사코 혼내줄 생각일 뿐이었지 죽일 의사까지는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사례를 생각해 보자. 즉, 행위자는 4)의 사례라고 한사코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있는 것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행위자가 상해만 입힐 의사였다 하더라도 급소부위가 밀집한 명치에 칼을 잘못 맞으면 누군가 사망할 수 있으리라는 점은 보통 사람이라면 인식할 수 있고, 또한 행위자가 이를 알면서도 다른 수단이 아니라 굳이 칼을 들어 찌르는 수단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 결과발생까지 어느 정도 수용하였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고과정을 거쳐, 칼로 급소부위를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행위자의 확정적 고의 여부가 불분명하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인정된다고 보아 완전한 고의범으로 처벌하게 된다. 이와 같은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 사용한 흉기의 원래 용도, 날 길이 등 형상, 칼을 찌른 횟수나 힘의 정도 등이 중요한 판단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고의범과 과실범만 구분하고 확정적 고의와 미필적 고의의 법정형을 달리 구분하지 않는 입법례를 취하는 대한민국 형법의 경우에는 확정적 고의인지 미필적 고의인지를 명확히 가리기보다는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는' 경우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고의범의 법정형을 그대로 적용해 처벌하고 우발성 여부 등 다른 범정 요소는 양형단계에서만 참작하면 되기 때문에 더욱 사고과정이 단축되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와 과실 간(정확하게는 인식있는 과실)의 구분에 대한 문제는 형법학 뿐만 아니라 민법학에서도 의미가 있다. 고의건 과실이건 간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과실에 대한 사고에 대해서는 통상의 손해만 인정하고 특별손해를 인정하지 않지만 고의에 의한 사고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피해자의 사정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피해를 의도적으로 입혔을 때는 특별손해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형법학에서는 고의를 어떤 사실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사실에 대한 진지한 의욕으로 나누고 있다. 예컨대 내가 칼로 저 사람을 찌르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사실의 결과를 의욕적으로 발생시키는 경우에 판례는 "살인의 고의가 있다"라고 판시한다. 이러한 고의를 확정적 고의라고 칭한다.
어떤 사실에 대한 인식도 없고 의욕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발생한 경우를 가리켜 "과실"이라 칭한다. 그렇다면 고의와 과실 사이에 있는 중간적 개념들도 존재할 것이다. 인식은 있지만 의욕이 없는 경우, 인식은 없었지만 뭔가 의욕한 적은 있는 경우들이 그런 중간적 개념이다. 미필적 고의는 이 중에서 인식은 하는데 의욕이 확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죽일 생각은 없지만 죽어도 된다'며 폭행을 하는 경우다.
미필적 고의를 한자로 쓸 때는 未必的故意라고 쓰지만 未畢的故意라고도 쓴다. 畢(다할 필)은 군필(군역을 다함), 미필(군역을 다하지 않음)에도 사용된다. 미필적 고의의 개념이 고의의 구성요소인 인식과 의욕에서 의욕이 확정적 고의에 이르지 못하지만 없다고 보지 못하는 약한 정도일 때 고의를 인정하는 개념이므로 다할 필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부분 未必的故意로 사용하지만 성낙인 교수를 비롯하여 몇몇 교수의 논문, 수업에서는 未畢的故意라고 쓴다. 다만 반드시 필 자가 "~~를 의도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예가 분명히 있긴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이순신의 필생즉사 필사즉생이다.
근대 형법에서는 원칙적으로 범죄의 고의가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만 범죄로 인정하게 되어 있다.[4] 하지만 저 '고의'를 정말로 좁은 의미의 고의로 한정시켜 놓으면 범죄를 마음껏 저지르고 다니면서도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고 드립을 치고 다니는 미친놈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쉽게 말해 "나는 우연히 칼을 들이댔는데 거기에 피해자가 다가와서 찔린 것이다." 같은 변명을 해도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근대 형법에서 도입된 개념이 바로 미필적 고의다.
좁은 의미의 고의가 범죄행위로 인한 결과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바라고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면, '미필적 고의'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르는 것을 말한다.[5]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 법률 용어의 한자를 분석하는 것이 알기 쉬울 수 있다. '미필적' 즉, 필연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 '고의'이다. 일반적인 고의는 칼을 들어 찌르면 상대가 죽는다는 식의 '인과 관계를 낳는 인간의 의도'이지만, 미필적 고의는 인과관계의 원인을 형성하기는 하여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 즉 범죄행위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원인으로 인해 저런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런 가능성을 위해 원인을 설치한 것이라면 그것은 미필적 고의다.
예를 들자면, 일부러 사람을 치고 싶어서 차로 친 사건은 좁은 의미의 고의로 치지만, 차를 몰면서 저 앞에 걷는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가면 그 사람을 칠 것을 알면서도 그냥 계속 앞으로 가는 것은 미필적 고의로 친다는 얘기.
판례를 예로 들자면 고시원에서 자신의 요구르트를 다른 사람이 계속 훔쳐먹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자신의 요구르트에 농약을 섞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농약넣은 요구르트를 자신이 직접 남에게 먹인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런 경고 없이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 사람이 먹을 것을 예상하고 행한 행동이므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처벌받았다.
비슷하지만 비교되는 개념으로 '인식 있는 과실'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결과가 발생할지도 몰라, 그런데 아마 안 발생할 꺼야"라고 생각하면서 행위를 하는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아파트 베란다로 쓰레기를 던지는데 던지기 직전 아래쪽에 사람이 걷는 걸 보면서 "맞을 수 있긴 한데 설마 맞겠어? 에이, 안 맞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던졌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진짜로 맞은 경우이다.[6]
실제적인 예를 들자면 미필적 고의는 '그럴 것도 같네. 후우, 하지만 하는 수 없지.'에 해당하며 인식있는 과실은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에이, 설마 그렇겠어.'에 해당한다.[7] 예시에 따르면 심정적인 구분이 간단하며, 전공자 혹은 법학을 이론적으로 학습하는 사람으로서야 구분이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독심술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구별하기 매우 어려우며,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모든 사정을 검사가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는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 인식 있는 과실과 미필적 고의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형법학에서도 견해의 대립이 심한 부분으로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경계가 아리송한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왜 구별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이 많을 것인데, 설명하자면 고의라는 것은 사람의 의도를 말하는 것인데, 인식 있는 과실에서의 결과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상황판단일 뿐, 의도가 아니고, 어쨌든 결과 그 자체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이므로 이를 고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마 유명(?)한 인식있는 과실에 해당하는 사고는 음주운전과 무면허운전[8]을 들 수 있다.
다만 미필적 고의의 경우 인정되더라도 피해자의 사망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나 일부 악질적인 케이스[9] 외에는 확정적 고의보다는 형량이 다소 깎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의 경우, 2015년 11월 12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판결 결과 대형인명사고에 있어 부작위범 좀 더 정확히는 부진정부작위에 의한 살인범의 최초 인정 판례로써 헌정사상 매우 의미있는 판례로 남게 되었다. 즉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작위의무 위반) 살인이 되느냐를 고려하여 판결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느냐는 없었느냐는 이준석 선장에 대한 고려사항이 아니다는 것이다. 고의와 관련없이 죄가 매우 중대하므로 부작위범(정확히는 부진정부작위범)으로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준석 선장 관련 '구조행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실제 중대 판례가 없다시피 하였고, 응당 이에 대하여 학설이 난립하여 '최초구조가능시간'을 초과했을 때 살인의 기수에 이른다는 이론, 혹은 '최후구조가능시간'을 초과하여 기수에 이른다는 이론, 혹은 그 절충설 등이 있었는데 대법원에서도 고법 판결을 사실상 인용하게 되어 최초 판례로 남게 되었다. 실제로 법을 과다하게 적용하면 단순 비겁자들을 살인자로 규정하는 지나친 법적용이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재판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대개의 안전불감증 사고의 경우에는 고의의 입증이 어렵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씁 어쩔 수 없지라고 시공을 할 정신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고, 에이 설마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기야 하겠어 정도의 생각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어도 미필적 고의 대신 인식있는 과실로 보아 과실범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형량이 적은 것 아니냐라는 분노를 느낄 법도 하지만, 삼풍백화점 사건의 경우에는 이런 이유로 살인은 인정되지 않았고, 법관은 대신 시공변경을 위해 뇌물을 준 혐의까지 붙여서 법이 허용하는 범위의 최대한에 해당될 정도로 엄벌한 것이다. 오늘날이라도 이런 사고의 대부분은 비슷한 형량이 적용될 공산이 크며, 세월호 사건은 이거 저거 예외가 붙고 또 붙어서 살인죄가 적용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 사건에서도 느끼는 바와 같이 인식있는 과실범에 대한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은 일반인의 법감정에는 그리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고 이를 반영해서인지 독일에서는 인식있는 과실을 인식없는 과실보다 중하게 처벌하도록 입법하고 있으나, 한국 형법에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3.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