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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모든 문제 해결의 하나님의 처방전!”
+ 본 문 : 야고보서 5장 13절 - 18절 (신약성경 376쪽)
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건강하십시오.”
한 부인이 정신과 병원을 찾았습니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신경쇠약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한 참을 상담 한 후에, 모든 진찰을 끝내고서 뜻밖의 처방전을 내놓았습니다.
약수터에서 약수를 받아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그 약수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고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화를 낼 때면 그때마다 얼른 그 약수 한 모금을 머금고, 역시 마시지는 말라고 합니다.
이 부인이 의사의 처방대로 약수를 받은 다음, 밤늦게 남편이 귀가하자 약수를 한 모금 머금었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뭐가 불만인지, 다짜고짜 아내에게 욕을 하고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부인도 맞받아쳐 싸웠겠지만, 입안의 머금은 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참으면서 아무 말도 안 했더니, 그렇게 떠들어대던 남편이 안 받아주니까 조용해 졌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화를 낼 때마다 부인은 약수를 한 모금 머금었고, 신기하게 남편은 금방 조용해졌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고, 부부 관계가 좋아지면서 부인의 신경증도 사라졌습니다.
그 부인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정중하게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참으로 명의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신통망통 한 약수 처방전을 내릴 수 있었습니까?” 그 의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통망통 한 약수 처방전 때문이 아니라, 부인의 침묵이 신통망통한 처방의 비법이었습니다.”
그 의사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진단했기에 처방도 정확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갖가지 삶의 문제를 겪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문제의 처방도 제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고난과 질병에 대한, 일종의 ‘하나님의 처방전’ 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힘겨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해결을 위한 처방도 있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진단과 처방을 따르기만 하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처방 첫 번째는, 고난당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아멘!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처방은 “그는 기도할 것이요.”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고난이라는 말은 ‘카코파데오’- ‘악한 일을 당하다.’ ‘고통을 겪다.’ 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이, 그 자체로 고난의 연속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 말씀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게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창세기 3장 17절 말씀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처럼 아담 이후,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고생과 수고, 즉 고난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보면 모두가 다 고난을 겪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삶은, 그 자체로 큰 고난이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며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40년 동안 광야생활로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도 끝없이 고난을 겪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예수님을 믿었던 그리스도인들 역시, 모두가 다 견디기 힘든 모진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의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과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도 잘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아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도,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난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더욱 이 고난을 깊이 맛보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처방은 “그는 기도할 것이요.”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카코파데오 - 악한 일을 당하고, 고통을 겪는 고난’ 에 하나님의 처방전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처방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기도가 어떻게 고난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처방이 될까요?
우선,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고난을 이길 힘을 얻게 해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의 기도시인 시편 22편 1절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다윗이 견디기 힘든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22절을 보면 기도내용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24절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길 수 있는 고난은 더 이상 그에게 고난이 아닙니다. 그 고난은 약이 됩니다.
이렇게 기도는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고난 때문에 쩔쩔매던 사람을 고난 때문에,
오히려 찬양하게 만듭니다. 고난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을 고난 때문에 감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고난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 고난의 처방전으로 “기도하라!” 고 처방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의 처방전대로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난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고난을 헤쳐 나갈 길을 찾게 해 주십니다.
만화를 잘 그리는 한 시골 청년이, 자기가 그린 만화를 들고서 미국의 캔사스시티를 찾았습니다.
이곳저곳 출판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면서, 자기가 그린 만화를 실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도 이 청년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러워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그 때 길거리의 한 교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회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후 목사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청년의 사정을 들은 목사님은 청년을 격려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갈 데 없는 청년에게 일을 구할 때까지, 교회 창고에서 지내며 교회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창고에 쥐가 너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쥐를 쫓으려 했습니다. 그러다 먹을 것을 주자,
쥐들은 이 청년 곁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그런 쥐를 대상으로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미키마우스입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드 디즈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에서 벗어날 길을 찾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고난 이전보다 더 나은 길로 나아가게 해 주십니다. 바로 전화위복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삶의 고난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처방전대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한 대로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고난이 물러가고,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두 번째 하나님의 처방전은, 병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 병든 자에게 대한 진찰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진단하셨는데, 그 진단의 결과는 ‘우리가 병들었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병들었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질병에 걸렸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가벼운 질병에 걸려서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적 질병에 걸려있지만, 음식조절만 잘 하면 치료되는 상태도 아닙니다.
여기서 병들었다는 것은 육신의 질병 때문에 몸도 고통스럽지만, 지금 마음의 병 영혼의 병도 들어,
고난 중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 병이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이 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육도 마음도 영혼도 병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아멘!
여기서 교회의 장로란? 오늘날의 교회 안에 있는 직분 중 하나인 장로님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가 쓰여 진 당시는 아직 목사, 장로와 같은 직분 제도가 세워져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교회의 장로란? 포괄적으로 교회안의 영적 지도자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육간에 병든 사람들에게, 이런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혼자서 감당하기가 너무 힘이 들기에, 영적지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끔은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들의 병문안을 다녀올 때가 있습니다.
은퇴목사님들이 뜻밖에 후배인 제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김목사! 기도해 줘. 너무 힘들어.”
그때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참 연약하구나. 참 대단한 분들이셨는데, 나이가 드시니.”
그렇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병들면 다 약해집니다. 기도도 잘 안됩니다. 때로는 믿음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몸이 병들었을 때도, 마음과 신앙의 병이 들었을 때도,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몸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신앙의 병든 사람들에게 영적 지도자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아멘!
영적 지도자들은 병든 자들이 청하면,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2000년 전 당시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의학을 전공한 의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의약품이라는 것도, 민간요법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사랑은 참 대단합니다.
뭐가 좋다하면 씨도 안 남습니다. 요즘은 개똥 쑥이 좋다고, 너도나도 개똥 쑥에 건강을 맡깁니다.
이처럼 민간요법이 전부였던 2천 년 전 당시인지라. 교회 영적 지도자들의 치유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먼저 기름을 바른 후 머리나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치유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교회 영적 지도자들이 바르고 기도한 기름은, 올리브유였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4절 말씀을 보면, 병든 자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처방은,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름을 바르되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의 치료방법에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치료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병든 자를 대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병원 치료를 거부하면 안 됩니다.
마치 병원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으면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원치료나 약을 먹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면, 굉장히 믿음 좋은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처방은,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병원치료나 약으로 병을 치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병원치료나 치료약을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도, 경계하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병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아멘!
“기름을 바르며” - 병원치료나 약물치료를 하되,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병든 자들을 도울 때, 하나님의 뜻 안에서 현대 의술의 도움을 받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15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병원 치료와 약물 치료를 받되, 내 병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지도자들은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병이 든 자신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랜돌프 버드는, 기도가 병 치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조사 했습니다.
393명의 심장병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그룹은 기도자들을 모아서 환자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하도록 했고, 다른 한 그룹은 누구로부터도 기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10개월이 지난 뒤, 두 그룹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기도를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 기도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20% 밖에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받는 사람이 훨씬 치유가 잘 되었습니다. 물론 그 병으로 죽게 된 사망자 수도 적었습니다.
이 연구에 동참했던 윌리엄 놀란 박사는 불신자인데, 결과를 검토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충분히 검증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의사들은 처방전에 반드시 3번씩 기도하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실험을 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압니다.
우리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기도로, 주님은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갖가지 문제를 겪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처방전을 붙잡아야 합니다.
고난당했을 때,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처방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병이 들었을 때,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말씀과 현대 의술의 도움도 받으라는 말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도, 마음도, 영혼도, 완벽하게 치료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의 치료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시므로,
저와 여러분의 몸도 마음도 영혼도 치유 받으시는, 주님의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고,
회복하므로 영혼도 마음도 몸도 강건해지기를, 우리의 치유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