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은 성역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폭군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명신과 학자들을 참형하거나 부관참시(剖棺斬屍)하였으며, 그 가족과 제자들까지도 처벌하는 참극을 빚어내었다. 연산군이 이 같은 사건을 야기한 것은 천성이 포악한데다가 자기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다.
성종의 비였던 윤씨는, 질투가 심하여 왕비의 체모에 어긋난 행동을 많이 하였다는 이유로 성종 10년에 폐출되었다가 그 이듬해 사사(賜死)되었다. 윤씨가 이와 같이 쫓겨나고 죽은 데는 그 자신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의 연적이었던 여러 후궁들과 평소 그를 싫어하던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합심하여 그를 몰아 붙였기 때문이다.
후궁들과의 사랑 놀음에 빠져 있던 성종은, 중전을 잊어버리고 수년 동안 중궁을 찾지 않다가 어느 날 밤 갑자기 중전의 방을 찾았다. 그 동안의 기나긴 기다림에 지쳤던 중전은 일면 한없이 반가웠지만, 또한 그간의 무심에 대한 원망과 가슴 한구석에 삭여 온 질투의 불길이 함께 솟아오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왕비는 자리에 앉자마자 여인 특유의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왕은 그간의 미안함도 있고 하여, 이를 눌러 덮기 위해 불을 끄고 왕비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중전의 서운한 마음은 쉽게 메워지지를 않았다. 끌어안는 왕의 손을 홱 뿌리치며 돌아앉았다.
아뿔사! 이때 그만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이 뒷날의 처참한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어둠 속에 있던 당사자들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사랑싸움 끝에, 중전의 침소에서 밤을 보낸 임금이, 이튿날 아침 대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자, 아들의 얼굴에 난 손톱자국을 본 대비는 지난밤 어느 침소에 들었던가를 대뜸 물었다. 모처럼 중전의 방에 들었었다는, 자랑 섞인 왕의 대답에 대비는 펄쩍 뛰었다.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중전의 짓이라니, 그에게 비수를 들이댈 기회가 때맞춰 찾아 온 것이다. 대비는 당장 폐비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폐비가 된 윤씨의 한은 뒷날 아들 연산에게 물려져, 처참한 비극을 가져오게 되었다. 지아비에게 달려든 한 여인의 사랑싸움이 후일 그처럼 엄청난 비극을 불렀다.
여염집과 대궐이라는 차이가 있지마는, 그녀도 한 사람의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수년간이나 한눈을 팔면서 돌아다니다가, 불쑥 나타난 한 남정네를 어찌 그냥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시앗싸움에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는데…….
눈물로 앞섶을 적시고 치마폭에 설움을 담으며, 오직 인내와 순종으로 가름하던 이 땅의 여인이지만, 바람을 날리며 돌아다니던 지아비에게 어찌 애교 어린 앙탈의 정감까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조선의 여인은 무정한 남편의 품을 쥐어뜯으며, ‘차라리 죽여 달라’는 표현을 곧잘 쓰곤 하였다. 실컷 그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은 정한을 그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한국 여인의 전통적 풍속화다. 남정네의 가슴팍에 달려들어 두 주먹으로 방망이질을 하거나, 때로는 손으로 뜯으며 그 한을 실처럼 풀어내는 것이, 한국 여인이 갖는 사랑싸움의 본래적 모습이다. 이런 속에서 어쩌다 도가 지나쳐 윤비처럼 손톱자국을 내는 일이 때로 발생하기도 하고…….
그런데 근래에 와서 참으로 괴이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끔 목격하는 이상야릇한 장면인데, 연인 간의 다툼이나 부부싸움을 할 때,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는 것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연인 간이나 젊은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언짢은 일 뒤에 그런 장면이 연출되더니, 요즘에는 나이 많은 부부 사이의 싸움에서도 그런 장면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어설픈 연출은 서양 영화에서 조급하게 베껴온 것이다.
긴 금발머리를 철렁하면서, 성난 얼굴로 갑자기 홱 돌아서서는, 남자의 뺨을 한 방 힘차게 후려갈기는 장면이 서양 영화의 한 전형적 메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뺨을 맞은 남자는 으레 대꾸를 하지 않고, 시무룩이 서 있는 것 또한 그들의 일상화된 문화다.
이러한 서양식 화면을 본받아 성급히 연출하는 우리나라의 극 제작 관계자들은, 양쪽의 문화적 차이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그런 장면을 헤프게 끌어다 붙이고 있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뺨과 저쪽 사람들이 생각하는 뺨(cheek)은, 공간성은 같지마는 그것이 갖는 문화적 속성은 전혀 다르다. 서양인의 뺨은 신체의 다른 부분과 똑같은 부위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인의 뺨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다.
종아리를 맞거나 옆구리를 차였을 때 우리는 육체적 고통만을 받지만, 손바닥으로 뺨을 맞으면 우리는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는 정신적 모욕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인격적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뺨을 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나 선생님 정도로 한정된다. 특히 여자에게 뺨을 맞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치명타로 생각한다.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는 것은 우리의 문화가 아닌 너무나 생소한 이질적 풍습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여인은 남편의 가슴을 쥐어뜯을지언정, 뺨을 때리는 그런 무례는 결코 행하지 않는다.
우리의 귀여운 딸들이 자라서, 속이 상할 경우에 부득이하게 남자친구나 남편의 가슴을 헤집고 주먹손으로 방망이질을 해 보는 일은 있어도, 상대방의 뺨을 때리며 인격적 모욕을 가하는, 그런 못난 여인이 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