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안방 같은 곳을 내준 예쁜이>/구연식
해 저문 객지에서 무일푼의 나그네가 하룻밤을 머무를 곳은 처마 끝이든 헛간이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주인집 어른이 쪽방도 아닌 안방 같은 곳을 서슴지 않고 내주며 하룻밤을 유숙(留宿)하도록 허락했을 때, 나그네의 감사한 마음은 하룻밤이 백 년을 산 것처럼 고마워서 밤새도록 베갯속을 고마움, 은혜, 감격, 사랑 등의 알갱이로 가득 채울 것이다.
청소년 시절 예쁜이와 잠시 손 편지를 주고받은 때가 있었다. 너무나 가슴이 설레고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지칠 줄 모르고 산과 들을 날고 온 동네 고샅길을 누비고 다녔다. 부모님은 안 계셔도 살 수 있지만, 예쁜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철부지 시절 소꿉장난의 풋사랑으로 치부하기에는 나름의 지고지순한 청순(淸純)을 울리는 것 같아 동의할 수 없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의 첫 페이지에 나왔던 천연색 삽화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청소년기의 정신 연령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높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예쁜이는 나보다 성숙한 것 같았다. 예쁜이의 손 편지 글씨는 간결하고 균형이 잡혀서 이름처럼 예쁘며 문장력도 수준 높아 누님 같이 포근한 손 편지였다. 그 뒤로는 인연은 따로 있었는지 서로가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더구나 예쁜이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예쁜이 가족들 모두가 이사를 했다. 덩그러니 남은 집터에는 어느 날 낯선 사람이 들랑거리더니 새 주인이 되어 살고 있으니 공연히 속이 뒤틀렸다. 그 후로 예쁜이의 소식은 언제나 궁금했지만, 알 길은 없었다. 예쁜이의 청소년 시절의 글 솜씨를 생각하면 지금 나이에도 글쓰기는 여전할 것이고 이제는 어엿한 작가가 되었으리라 짐작되어 모든 문학작품들을 샅샅이 찾아봐도 예쁜이의 이름은 없었다.
그 후로는 무조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외에도 가릴 것 없이, 인터넷으로 사막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흔하지 않은 이름 “예쁜이” 찾아보길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의 신 에로스(Eros)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는지, 컴퓨터 화면에 서광(曙光)처럼 예쁜이의 자료 사진이 떠올랐다. 감사하고 신기해서 몇 번이고 눈을 비벼가며 확인 또 확인을 해보니 예쁜이가 틀림없다. 세월이란 놈이 50여 년 이상을 황량한 세상의 들판을 업고 달렸으니, 외모는 변했어도 내면에 숨어 있는 예쁜이의 소꿉장난 시절 이미지가 클로즈업되어 확인시켜 준다.
순간 불쌍한 금강산의 나무꾼이 하늘로 올라간 선녀님의 거처를 알아낸 기쁨이었다. 사진 속의 제목을 찾아 단체나 카페를 찾으니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한 곳은 예쁜이가 단독 카페 운영자이고 다른 한 곳은 타인이 개설한 카페에 독립 방을 예쁜이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양쪽에 가입 신청을 의뢰했더니 쉽게 허락해 주었다.
모성애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카페에서 속 시원히 확 트인 뷰(View)와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에 나그네에게 안방 아랫목을 내주었다. 또 한쪽은 잠깐 세 들어 살면서도 쪽방을 예쁜이는 쪼개어 베풀어 주었다.
단독 설립 카페에는 제일 위쪽 안방 같은 곳에 나의 단독 방을 개설해 주어서 벌써 7연 째 1주 또는 2주에는 꼭 1편씩의 글을 올리고 있다. 다른 예쁜이와 같이 쓰고 있는 카페 방에도 같은 방법으로 올리고 있다. 올릴 때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읽어 주어서 나는 글을 올릴 때마다 예쁜이와 같이 고향 찻집에서 찻잔을 기울이며 모락모락 떠오르는 김 속에 예쁜이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아 그리도 좋다. 달님은 뜨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언제나 뜨는 장소는 같아서 그곳에 가면 달님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달님 같은 예쁜이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예쁜이의 카페 방으로 달려가 푸념 같은 글을 끄적거리는 것이 얼굴은 볼 수 없어도 예쁜이를 만나는 유일의 기쁨이다.
사람들은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자신을 되살려 보려고 지푸라기도 잡으려고 한다. 이렇게 천우신조로 얻은 예쁜이의 카페 주소를 알아낸 행운을 놓칠까? 하는 조바심이 더 두렵기도 하다. 행여 어느 날 카페 문을 닫고 나 같은 사람 멀리할지 두려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댓글은 없어도 부디 읽어만 주세요, 예쁜 씨? 아무리 미워도 제발 카페 문은 닫지 마세요, 예쁜 씨?
벌써 봄이어서 들녘에는 종다리 부부는 새끼를 낳고 기를 둥지를 짓는지 부리에 검부러기를 한 움큼씩 물고 심술꾸러기 인간들을 피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시골집 양지바른 울타리 밑에는 겨우내 참았던 앙증맞은 꽃들이 얼굴을 쏙 내밀고, 따스한 아지랑이 입김이 작은 풀잎을 흔들어 준다. 사금파리 주워 다가 살강을 만들고 고운 모래로 밥을 지어 서로 먹여주며 잡은 손 놓지 않고 나무꾼과 선녀의 재회를 기뻐하는 소꿉놀이에 젖어 본다. 봄님이시여? 예쁜이와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이 깨어지지 않도록 간절히 비옵나이다.(20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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