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055]蘇東坡(소동파)-東欄梨花(동란이화)
東欄梨花(동란이화)
蘇軾 (소식)
梨花淡白柳深靑(이화담백류심청)
柳絮飛時花滿城(류서비시화만성)
惆悵東欄一株雪(추창동란일주설)
人生看得幾淸明(인생간득기청명)
배꽃은 맑고 희며 버들은 짙푸르네
버들개지 날릴 때면 배꽃은 성에 만발하네
슬프구나 동쪽 난간 한 그루의 흰 배꽃
살면서 맑고 밝은 저 꽃을 몇 번이나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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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동파전집(東坡全集)>에
‘화공밀주오절 동란이화(和孔密州五絕·東欄梨花)’라는 제목으로
실려있으며 소동파가 후임인 공종한(孔宗翰) 밀주지사(密州知州)의 시
오언절구에 답한 것이다.
소식은 혁신 정치 세력에 밀려 항주(杭州),
밀주(密州 = 현 산동성(山東省) 제성(諸城)),
서주(徐州 = 현 강소(江蘇)), 호주(湖州 = 현 절강(浙江)) 등의
지방관을 주로 역임하였다.
梨花淡白柳深靑
柳絮飛時花滿城
惆悵東欄一株雪
人生看得幾淸明
배꽃에 부쳐
배꽃 담백한데 버들잎 짙푸르다
버들개지 흩날리고 꽃은 만발하고
난간엔 서러운듯 하얀 꽃송이
보고 지고 몇해나 보낼 것인가.
蘇 東坡(1036-1101) 宋代의 詩人. 字는 子瞻, 이름은 軾, 東坡는 號다. 仁宗 景祐 3년 (1036, 고려 정종 2년) 사천성 眉山에서 태어났다. 22살 때 아우 蘇 轍과 함께 과거에 급제, 곧 代理評事簽書에 임명되고, 다시 鳳翔判官에 제수되었다. 神宗때 王安石과 의견이 맞지 않아, 지방으로 나가 杭州通判이 되었다가, 이어 密州.徐州.湖州등지를 맡아보았다. 이 무렵 이미 그의 文名이 높아서 소인들의 싫어하는바 되어, 44살 때 마침내 黃州로 좌천되었다. 이 때 그는 동쪽 언덕(東坡)에 집을 짓고 거처하면서 스스로 東坡居士라 일컬었다. 哲宗이 즉위하자 吏部尙書가 되었다가, 곧 潁州지사가 되고 뒤에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兵部尙書, 禮部尙書를 역임, 翰林 侍讀의 양 學士를 兼했으나, 紹聖初에 또 반대파에 모함당해 瓊州로 귀양 가 다시 永州로 옮겨왔다가 뒤에 사면되어 돌아왔는데, 徽宗 建中靖國 원년(1101, 고려 숙종 6년) 7월28일, 常州에서 66살에 죽었다. 高宗때 太師를 追贈, 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는 儒․佛․道에 다 통했고, 시는 음률이나 詩句에 구애받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東坡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