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943)...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비대면진료·원격진료·원격의료(遠隔醫療)
정부가 전공의(專攻醫) 파업으로 인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2월 26일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자, 비대면 진료 건수가 이전보다 5배 이상 급증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가 굿닥·나만의닥터·닥터나우·솔닥 등 환자와 의사의 비대면 진료를 연계해 주는 업체 4곳의 이용 현황을 집계한 결과, 지난 3월 비대면 진료 요청 건수는 15만5599건이었다.
이는 재진 환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던 작년 11월 2만3638건에 비해 약 5.5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이는 의료 공백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가 경증 환자들의 진료를 감당할 수 있고, 그 수요도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이다. 지난 4월 10일 실시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야 모두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비대면진료 이용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진료받을 의료기관에서 비대면진료를 실시하고 있는지 확인(건강보험심사평가원 누리집을 통해 확인 가능)
2. 비대면진료 신청
3. 사전 문진, (환자: 성명·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건강 상태, 진료 희망사유 등을 의료기관에 정확히 전달) (의료기관: 환자 본인 여부 및 비대면진료 가능 여부 등 확인)
4. 비대면진료 실시 (환자: 진료 필요 정보 제공) (의사: 문진을 통해 환자의 상태 파악 및 진찰, 화상진료가 원칙)
5. 처방전 발급 및 전송 (의사: 필요시 처방전 발급, 최대 90일) (환자: 처방전 전송 약국 지정) (의료기관: 약국으로 처방전 전송, 팩스 이메일 등)
6. 조제 및 의약품 전달 (조제 가능한 약국은 휴일지킴이 약국 누리집에서 확인 가능) 약사: 조제 가능 여부 확인 – 환자와 의약품 수령 방식 등 협의 결정(방문 또는 재택 수령) - 의약품 조제 – 환자에게 구두와 서면으로 복약지도 – 의약품 전달.
참고: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오남용 우려 의약품, 사후피임약 처방 불가.
비대면진료·원격진료·원격의료(遠隔醫療/Telemedicine)란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환자를 진료하거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행하는 제반 서비스를 말한다. 원거리에 있는 의사가 쌍방향 소통수단 및 IT 기반 진료기기를 이용해 환자를 문진(問診)하고, 환자의 생체신호, 혈당, 혈압, 맥박 등 측정치를 분석하고 상담과 처방을 하는 것을 비롯해, 환자에 대한 정보를 놓고 의료진 간 원격 자문을 하고 진료와 처방까지 내리는 것을 포함한다.
원격진료 또는 원격의료의 특성은 (1)의사와 환자가 실시간 소통하는 대화형 의료·진료이다, (2)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의사들이 환자의 정보를 공유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3)장기치료 또는 장기요양 중인 환자에 대해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컴퓨터 또 모바일 기기를 통해 모니터링하면서 처방까지 한다 등이다. 특히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감염의 위험을 줄이며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항상 붐비는 응급실 방문을 줄여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원격의료의 출발은 2002년 3월 의사·의료인 간 원격진료 제도 도입이다. 2006년 7월에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성과 없이 끝났다. 2010년 4월, 18대 국회에 처음으로 의사의 원격진료와 처방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되었지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심사소위원회에 한 차례도 상정되지 못했다.
2013년 12월 15일에는 전국 의사들이 원격의료·영리병원 반대 대규묘 집회를 했다. 2014년 4월, 19대 국회에서도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되었다가 2015년 5월 상임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해 자동 폐기된 바 있다. 2019년 3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원격의료’라는 단어는 각종 고정관념이 많기 때문에 ‘스마트 진료’로 용어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에 발생한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감염병(感染病)을 방지하기 위해서 2020년 2월부터 비대면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비대면진료 이용자 수는 총 1379만명이었으며, 참여 의료기관도 2만5967곳에 달했다.
이러한 한시조치를 근거로 여러 스타트업(start-up)들이 설립되어 비대면진료 플랫폼(platform)들이 생겨났고, 원격진료의 횟수가 증가하였다. 플랫폼들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행하던 불법행위도 도마에 올랐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가이드라인(guide-line)’을 내놓았다.
내용은 플랫폼 기업이 환자 의료서비스 및 의약품 오남용 조장 금지, 환자가 의료기관 및 약국을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과 호객행위 금지, 약사법(藥師法), 의료법(醫療法)상 담합행위를 하도록 알선·유인·중재 금지, 의료기술 시행과 약학기술 시행 전문성 존중 및 저해하는 서비스 제공 금지, 환자, 의료인, 약사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의무를 설정했다.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제대로 된 시진, 청진, 촉진, 문진, 타진이 불가함을 지적한다. 문진은 가능하지만 시진, 청진은 제한적이고, 촉진과 타진은 불가하므로 진단의 정확성이 떨어짐을 우려한다. 하지만 디지털 의료기기가 임상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혈당, 심장초음파, 심전도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하여 디지털 의료기기를 활용하고 있다. 이에 원격모니터링을 허용하면 진단과정에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코로나19 이전에 메디케이드(Medicaid)에서 초진을 허용했다. 그러나 메디케이드는 메디케어(Medicare)와 달리 저소득층을 위한 공적 보험제도이고, 주별로 메디케어드 정책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편화된 전반적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은 2024년 12월 31일자로 비대면진료 초진과 더불어 그동안 완화했던 다양한 비대면 진료 규제들에 대한 완화 조치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경우, 비대면진료는 원칙적으로 단골 의사가 초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진료 기록이나 약 복용 기록 등의 정보가 있으면 단골이 아닌 의사도 비대면으로 초진할 수 있다. 금연(禁煙) 치료는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 약의 경우에는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고위험약품의 처방을 금지하고 있으며, 최대 1주일 분량까지 처방 받을 수 있다. 처방된 약은 약국에서 배송해 주며, 복약지도는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비대면 진료에 대해 2년여간 겪어본 의사들을 대상으로 2022년 6월 14일부터 28일까지 4개 전문과목 학회(내과,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의사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방식은 모바일 응답을 통해 이뤄졌고 전국에서 총 2588명이 참여했다.
설문결과를 보면 먼저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상담에 참여한 회원(의사)은 1881명으로 72.7%였고, 전화상담 후 처방전까지 발행한 비율은 82.8%에 달했다. 하지만 대면 진료와 비교해 충분한 진료가 이뤄졌다고 생각한 회원은 18%에 달해 부정적 인식이 72%였다. 감염병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비대면진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時機尙早)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54.4%로 가장 많았다.
비대면 진료가 도입됐을 때 회원들이 생각하는 진료 범위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질환이 범유행하는 국가 위기 상황에 한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77.9%에 달했다. 그리고 도서벽지와 같은 의료 인프라(infrastructure)가 부족한 지역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62.4%, 장애인이나 거동 불편자에 대해서만 해야 한다는 응답도 51%로 나왔다. 90% 이상의 회원들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재진(再診)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져야한다고 응답했다.
의료법(醫療法) 제33조 1항은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병원이 아닌 곳을 화상 통신 등으로 연결해 진료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다만 감염병예방법(感染病豫防法)과 보건의료기본법(保健醫療基本法)에 따라 감염병 위기 발생 때나 새로운 보건 의료 제도를 시행할 때 정부 판단에 따라 예외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은 정부가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질환·진료 범위, 약 배송 등 국민 불편 사항을 해소해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대면 진료 범위를 의원급 의료기관, 재진 환자 등으로 제한하고 플랫폼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한편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가 오진(誤診)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대면 진료의 보조적인 역할로 제한해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제도화에 반발하고 있다.
<사진> 비대면 진료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이코노믹포스트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 건강칼럼(943) 2024.4.16.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