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앞두고 꼭하고 싶었던 것 한 가지가 우아
하게 멋있게 늙어가고 싶었습니다. 긴 직장생활 입어
보지 못 한 옷들, 하늘하늘한 원피스나 청바지에 티셔
츠를 걸쳐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옷들을 입으면 나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청순하고, 우아하고, 멋진 그런 사
람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차림들이 내게 어울리
는지, 안 어울리는지, 그런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습니
다. ‘저 옷이 예쁘니까 내가 입어도 예쁘겠지’였습니다.
그 결과는 아무리 비싼 옷도, 집에 도착해 입어보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뭔가 잘못 됐는데도 문제가 뭔
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멋있고 우아하게 늙어 가려면
변화가 필요했지만 그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만난 게 나에게 맞는 색을 찾는 ‘퍼스널컬러’
수업이었습니다. ‘이미지 메이킹’이란 이름으로 50 플
러스 센터라는 곳에서 무료로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
을 접했습니다. 후다닥 친구들에게 같이 다니자 하니
“다 늙어서 어디 갈 데가 있다고!”
“퇴직했는데 이젠 옷 차려입을 일도 없어!”
“옷 사 입을 일도 없는데 뭐. 그런 공부까지 하냐?”
“야, 공부라면 이젠 지긋지긋 해!”
이런 대답들이 돌아왔습니다. 말한 내가 민망해져 버렸
지만 내 인생 후반전의 첫 목표 ‘우아하고 멋지게 늙자!’
목표가 있었기에 나 혼자라도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들떠서 참석한 첫 날, 첫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강사
님의 날카로운 눈에 걸려 버렸습니다.
“어머니, 밤색 머리 염색하지 마세요. 제가 보기엔
그 머리색은 어머님의 피부에 안 맞아요. 검정으로 염
색하시는게 어울릴 것 같아요.나중에 설명드릴 게요”
억울했습니다. 늘 검정으로 염색했었지만 갈색으로 염
색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늘 동창회만 나가면
“요새 누가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 하냐!”
“그래, 갈색으로 해야지!”
이 친구, 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등을 떠밀었습니다.
볼 때마다 그러니까, 그때 한 번 해 본 건데, ‘이미지 메
이킹’을 가르치는 강사님께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좀
늦게 올 걸...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랬으면 나만 콕
찍힐 시간이 없었을텐데 괜히 일찍와서...... 하는 생각
도 했습니다. 내가 일등으로 출석 했으니 하는 말입니
다.
이미지 메이킹 수업은 그렇게 내 머리 색깔로부터 시
작되었습니다. 생긴 것도 별로인데, 작은 키도, 좋게
말해 토실토실한 몸도 문제입니다. 어디 하나, 우아하
게, 멋지게, 늙어 갈 수 있는 조건 하나 갖추지 못 했습
니다. 그런 내게 이미지 메이킹 수업은 내게 한 줄기
희망이었습니다. 내 맞는 색깔을 찾아가는 퍼스널 컬
러 진단에서는 찬색이 어울린다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서는 찬색 중에서도 겨울색이 제 피부
에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 히 머리 염색도
검정인 것이었지요.
그 외 ‘이미지 메이킹’ 수업에서 나에게 내린 처방은 ‘액
세서리는 하지 말 것.’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결국 목걸이나 귀걸이 하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
그럼 내가 가끔 해보던 목걸이나 귀걸이는 돼지 목에
진주였다는 것이네!’라는 생각이나 혼자 쿡쿡 웃었습
니다. 민망한 웃음이었던 것이지요. 강사님은 계속해
서 제게 처방을 내립니다. ‘옷은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
하게 입을 것.’ ‘무늬 들어간 옷은 되도록 입지 말 것,
꼭 입으려면 기하학적인 무늬 옷을 입을것’ 꽃무늬 옷
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싼 옷도, 내게
는 천하게, 후줄근하게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한, 내
게 맞는 주조색은 검은색에서 감색으로 자리 잡았습
니다. 어쩐지 푸른 계열의 옷이 마음에든다 했더니....
뭔가 끌리는 게 있었나 봅니다. 그다음엔 일사천리였
습니다. 모든 옷들이 감색과 어울리는 색으로 맞추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엔 ‘실버 모델’ 강의에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무
료입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주변에 이런 류의 각종
강의가 넘쳐 납니다. 건 그렇고, 이런 키 작고 통통한
사람이 무슨 모델 수업? 하겠지요. 당연합니다. 하지
만 모델 수업 받는다고 제가 모델 하겠다는 건 아닙니
다. 자세를 고치고 싶어서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목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무릎도 아픕니다. 치료를
받으러 통증의학과나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도 맞아
보고, 한의원에 가서 내 평생 맞지 않겠다던 그 무서운
침도 맞았습니다.
그 때,뿐이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병원 순례를 하면서
깨달은 생각이, 자세가 뒤틀려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
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고쳐야겠지요. 고치려
면 자세를 교정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그 방법
중에 제일 좋은 게 모델 수업이 된 것입니다. ‘하나, 두
울~~, 셋, 터언~·’ ‘고개는 들고 어깨는 펴고...’ 교수님
의 그때, 그때 내리시는 주의 사항을 머릿속에 입력하
다 보면 걸음걸이는 또다시 흐트러져 허둥댑니다. 그
러나 곧 바로 허리 곧추 세우고 바른걸음걸이로 걷습
니다. 두 시간 걷다 보면 어느새 같이 수업 받는 사람
모두들 자신 있게 바른걸음으로 걷고 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누군가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며, 귀
에 대고 속삭입니다. ‘예뻐요. 예뻐!‘ 나이 70이 넘었는
데도 예쁘다는 소리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이왕
이면 ‘우아하세요.’ ‘분위기 있으세요.’라는 소릴 듣고 싶
지만 언젠가는 듣게 되겠지요. 계절이 바뀌어 옷장을 열
어도 입을 옷이 없지 않습니다. 반평생이 넘도록 옷장을
열며 하는 말. ‘입을 옷이 없네.’를 졸업한 탓이지요. 나
에게 어울리는 차림, 그게 가장 멋지고 우아하게 만드는
것이란 걸 이제야 알고 노력합니다.
창 밖엔 가을이 한창 입니다. 곧 단풍 들고 낙엽이
떨어지겠지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도 깊은 가을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갈 테지요. 검은 머리에 서리
내린지도 오래고 얼굴에 주름살은 하루하루 늘어만
갑니다. 그래도 곱게 늙어가다 다음 세상으로 떠났
으면 합니다. 다음 생에는 키가 크고 늘씬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꿈도 꿉니다. 압니다.
얼마나 실없는 꿈인지를..... 다만 내 아이들이나 손자
손녀가, 먼 훗날 나를 기억 할 때 우리 할머니. 우리 엄
마 참 곱게 살다 가셨는데 그 소리는 듣고 싶습니다.
첫댓글 늦게야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글은 쓴 사람의 성정을 드러내는 것, 진솔하고 간결하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여 글맛이 상큼합니다. 참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저녁 편안한 하루로 마감하시길...
@햇살(서울) 전에 올리신 글 찬찬히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