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
비가 내리던 날이면 아이들은 우산보다 먼저 종이를 찾았다. 공책 한 장을 조심스레 뜯어 반듯하게 접으면 어느새 작은 배 한 척이 태어났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배였지만, 마음속에서는 가장 넓은 바다를 건너는 배였다.
골목 어귀에는 빗물이 고여 작은 개울을 이루곤 했다. 흙냄새가 피어오르고 처마 끝에서는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아이들은 맨발로 물웅덩이를 뛰어다니며 저마다의 종이배를 띄웠다. 하얀 종이배는 잔물결을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누군가는 손뼉을 치며 웃었고, 누군가는 배가 뒤집힐까 두 손으로 물길을 막아 주었다.
종이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물을 먹은 종이는 금세 힘을 잃었고, 배는 조용히 젖어 들다가 끝내 물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또 다른 종이를 접으면 새로운 배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그 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아스팔트 위에는 여전히 빗물이 고이고, 창밖으로는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 물길 위에 종이배를 띄우는 아이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손에는 종이 대신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빗소리보다 게임 음악이 더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종이배는 종이로 만든 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이었고, 함께 웃는 놀이였으며, 실패해도 다시 접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배가 물에 젖어 가라앉아도 아이들은 또다시 종이를 펼쳤다. 그 작은 손끝에는 포기라는 단어보다 설렘이 먼저 살고 있었다.
인생도 종이배와 닮았다. 처음에는 단단해 보이지만 시간이라는 물을 만나면 누구나 조금씩 젖는다. 어떤 이는 거센 물살을 만나고, 어떤 이는 잔잔한 물길을 만난다. 끝내 모두는 제자리에서 멈추거나 사라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떠 있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물길을 따라 흘렀느냐일지 모른다.
종이배는 목적지를 알지 못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길이 이끄는 대로 흘러간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모든 길을 계획할 수는 없지만, 흘러가는 동안 누군가의 미소가 되고, 누군가의 추억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다.
어린 시절의 종이배는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골목을 지나 작은 웅덩이를 벗어나기도 전에 젖어 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배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서는 침몰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또렷한 모습으로 떠 있다.
비 오는 저녁,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문득 하얀 종이 한 장을 접어 보고 싶어진다.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 흘러갈지 확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어린 날의 나를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서다.
아마도 사람은 평생 마음속에 종이배 한 척씩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비가 내릴 때마다 그 배는 기억이라는 물길 위에 다시 떠오르고, 잊고 있던 순수와 희망을 조용히 싣고 흘러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믿는다. 종이배는 물에 젖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추억 속으로 천천히 항해를 떠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