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성씨姓氏 이야기-빙氷씨와 상尙씨
어제는 고교 동기동창이 불쑥 찾아와 우리집에서 점심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워낙 희성稀姓이어서 그를 기억하고 있을 뿐, 고교 3년 동안 같은 반도 아니었고 대화도 한번 없던 동문이었다.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47년만이니, 얼굴조차 기억이 희미했다. 졸업 20, 30주년 기념할 때에도 보지 못했다. 친구가 나를 찾은 건, 고교동문 단톡방에서 나의 졸문을 보고 궁금했고, 더구나 같은 임실지역에서 낙향해 농사를 지은다해 만나보고 싶었다는 것. 정년퇴직하고 6학년 후반에 접어든 마당에,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불쑥 한 전화에 내가 반색을 한 것도 같은 이유.
아무튼, 조촐하게 점심을 차려주자(고등어, 갈치도 구웠다) 송구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것이 ‘나의 즐거움It’s my plesure’이라며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 했다. 식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로 두 시간 정도 남향의 사랑채 툇마루에서 한담閑談을 나누고 밭농사 정보(지황을 재배해 직접 경옥고瓊玉膏를 만든다니 대단한 친구다)도 교류했다. 나는 이모작二毛作에 대해 횡설수설을 했다. 흐흐. 희성을 한자漢字로 어떻게 쓰느냐? 인구는 얼마나 되느냐는 등 질문을 먼저 했다. 이수변에 물 수 ‘얼음 빙氷’이라 한다. 아니, 빙어氷魚, 빙수氷水, 빙산氷山의 일각一角 할 때의 빙자 성씨는 처음 봤다며 웃었다. 희성에 대해 희화화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오해는 말라며, 내 며늘아이도 희성인 상씨尙氏라고 말해 줬다. 인구는 어떤 연유인지 ‘씨’가 퍼지질 않아 전국에 800명이 채 못된다했다. 기원은 조선 세조때 명나라 사신으로 온 빙여경氷餘慶이 조선에 반해 망명을 하여, 세조가 경주군慶州君으로 봉했기에 본관이 경주라 했다. 해마다 4월 둘째주이면 집성촌인 곡성에서 7대까지 모시는 시제時祭를 지낸다고도 했다. 아하- 그렇구나. 친구는 알고 보니 55년생 양띠였고(당시 명문중인 ‘전주북중’을 떨어진 때문), 군산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는데, 군산지역 동문회에는 줄곧 참석했으나, 전북이나 서울동문회와는 소통이 없었다 한다. 나의 형과 동갑인지라 조금은 어려웠으나, 같은 교문을 3년 같이 다닌 ‘죄’로 말을 편히 할 수 있는 게 고등학교 친구가 아닌가. 앨범을 함께 보며 서로 친구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바빴다. 흐흐.
성씨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의 큰 며늘아기의 성씨 이야기를 덧붙인다. 처음 상견례를 할 때 ‘상씨’라기에 놀랐다. 경상도할 때의 ‘상尙’이라지 않는가. 다행한 것은 희성이긴 하지만, 상씨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조선 명종조 명재상 상진尙震(1493-1564. 영의정만 15년을 지냄)을 알고 있었고, 서울 상문고 상씨尙氏 이사장이 문씨文氏 부인의 성姓과 합해 ‘상문고’로 이름을 정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관이 목천木川인데, 성씨의 유래가 재밌었다. 본래 시조가 백제의 호족인데, 고려에 통합되자 끊임없이 목천지역의 상왕상尙王山에서 백제재건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왕건은 통일 후 그의 성을 ‘코끼리 상象’자 축성 축성畜姓으로 바꾸어버렸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원래 성씨를 회복했다는데(한국의 상씨 친구는 2300여명), 그때 백제의 많은 상씨들이 일본의 오키나와섬으로 대거 이주를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며늘아기가 관광차 다녀온 오키나와에서 확인한 것인데, 며늘아이를 잘 얻는 바람에 또하나 재밌는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집이나 큰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된다는 말은 아직까지는 진리이지 않을까 싶다. 하하.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어찌 됐든 ‘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게 며느리 상씨가 아니고 ‘상우천고尙友千古’라는 사자성어이다. 어쩌면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상우천고가 무엇인가? 천년을 거슬러올라가 옛 사람과 벗을 한다는 뜻이다. 이 시대에 얼마나 친구될 만한 위인이 없으면, 천년을 거슬러올라가 친구를 찾는단 말인가라는 말도 될 수 있겠다. 그러니, 주자朱子나 맹자孟子하고도 "글로써"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친구라하면 가당치 않는 말일진대, 사숙私淑이란 말은 어떤가? 사숙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큰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위로 소급해 옛 분을 자기의 선생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사숙이든, 상우천고든, 부단히 공부하는 자세라는 단어로 이해하자.
성씨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나라 성씨의 현황을 참고삼아 살펴본다. 한자漢字로 표기할 수 있는 성씨가 1507개이고,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성씨가 4075개, 모두 5582개라 한다(2015년 통계청 기준, 5천개가 넘는 것은 귀화하여 성을 바꾼 사람이 많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때문이다). 가장 많은 성씨로는 물론 김씨일 것인데, 1068만명이고 전체의 21.5%라 하니, 10명 중 2명이 넘는다. 다음 10위까지는 이씨(730만명, 14.7%), 박씨(419만명, 8.4%), 최씨(233만명, 4.6%), 정鄭씨(215만명), 강姜씨(132만명), 조趙씨(105만명), 윤씨(102만명), 장씨(99만명), 임씨(82만명) 순이다. 그러니, 대성大姓은 김, 이, 박씨로 전체의 44.6%이고, 그 다음이 최, 정, 강, 조씨순이다. 대표적인 희성을 말할 때, 예전에 ‘천, 방, 지, 축, 마, 골, 피’에 덧붙여 '하, 조, 지, 노, 구, 나'라고 했던 적이 있었으나, 이제는 옛말이 된 지 오래이다. 희성 중의 노盧씨는 노태우, 노무현 등 대통령을 두 명이나 탄생시켰으니 대성大姓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순전히 우스갯말이니 절대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여동생에게 빙씨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무슨 빙씨가 다 있느냐"며 크게 웃으며 하는 말이 “오라버니, 같은 임실이고 하니 자주 왕래해 친하게 지내면 좋겠네. 빙씨 친구이니까 빙우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 그것도 좋다. 빙우氷友도 좋고, 상우尙友는 더욱 좋다. 천년을 거슬러올라가 누구를 친구로 삼을까? 포은 정몽주를, 아니면 성삼문을 친구로 삼을까? 친구라니? 사숙을 해야겠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