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황사
“당신, 눈병 났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나의 눈에 눈꼽이 심하게 끼여 있는 것을 보고 아내가 물었다. 4 월 꽃 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화분 알레르기였다.
게다가 지난 밤, 청수원에서 돌아오면서 남대천을 지날 때 불었던 황사 때문에 증세는 몹시도 악화가 되어 있었다.
지난 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남대천을 걸어야 했다.
술기운에 눈 주위가 몹시도 간지러웠고 태백산맥을 넘어 온 고온 건조한 황사 바람이 내 눈 주위를 건드렸다.
그래서 손으로 눈을 비비기 시작했고 사태는 점점 더 악화가 되었다.
거의 미쳐버릴 정도로 눈은 간지러워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불에 대인 듯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눈을 감자 굵은 눈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리고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다리 난간을 잡고 마치 장님 처럼 한 손은 앞을 훼훼 내두르면서 남대천을 건너왔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보는 사람은 없었다.
차라리 눈을 감고 걷는 것이 편했다.
청수원의 그녀가 살아왔던 것처럼, 나도 세상에 신경 쓰지 않고 두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던 때문이었을까?
두 눈을 감아 버리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터이고, 오로지 나만이 존재 할 뿐이니까. 비록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지언정 보이지 않으니 그뿐인 것을.
“눈병은 무슨 눈병이야. 이맘때면 항상 그러잖아.”
“그래도 이번은 좀 심한 거 같아요.”
“그것 보다 오늘 이자 내는 거 어떡 할거야”
“.................”
그것은 내가 해결 할 일이었다. 아내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내가 팔 년 전 저지른 일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커다란 은행 돈들은 전부 갚을수 없었지만, 개인에게 빌린 작은 돈들의 이자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싶었던 것일까?
황사 때문인지, 지난 밤 거리는 조용했다. 청수원에도 역시 아무도 없었고, 텔레비전 앞에서 누워 있던 그녀가 부시시 일어나 나를 맞았다.
“오늘은 사장님이랑 둘이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하네요.”
그녀가 맥주 한 병을 들고 앉으면서 말했다. 그럴 법도 했다. 거리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고 거친 황사바람에 비해 너무나 조용했고 늦은 밤이었다.
“하하하, 누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좀 그렇네요.”
밖의 황사 바람치고는 썩 괜찮은 대화였다.
“누가 보면 어쩌죠?”
나는 그 자리를 애써 유쾌하게 만들고 싶었나보았다. 오랜만의 농담이었다.
“누가 보면 어때요?”
“혹시....벌써 소문이 난거 아니 예요?”
“어떤 소문........”
“제가 청수원 기둥서방이라고.......”
“호호호......”
그녀가 그렇게 시원스럽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웃음의 끝은 시원스럽지 못했다.
어색하기도 했고, 특히 마지막 웃음을 거두는 그녀의 입가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저, 그런 거 초월한지 오래예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서 인가. 그녀의 쓸쓸함이 단호함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단단해져 갔던 것이다. 단단해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자 홀로 술집을 하면서 겪었을 모진 세월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가 아물며 튼튼한 피부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일부러라도 귀를 막았을 것이다. 귀를 막지 않고서는 흔들려서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저도 그래요.”
“사장님도요? 사장님이 왜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도 때문에 겪었던 고소 사건으로 사기꾼으로 몰려 검찰을 들락거렸고 그것 때문에 삼대가 살았던 이곳 강릉에서 나는 사기꾼으로 소문이 났다.
그러면서 몹쓸 병으로 사지가 마비되는 고초를 겪으면서 방안에서 일년을 누워있었고, 그러다가 회복되어 바람을 피웠고 그래서 바람둥이가 되었다.
그 몇 년 나는 사기꾼으로, 절름발이로, 바람둥이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처럼 귀를 막고 살아야 했다.
“저도, 고생 좀 했죠?
“사장님은 고생 하실 분 같이 안 생기셨어요.”
그럴 것이다. 그녀의 세월은 그녀가 선택한 삶이 아니었지만, 나의 과거는 내가 선택해서 내가 저지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 말대로라면 고생을 사서한 것이다.
게다가 끝에 나는 문학을 잡았다. 문학은 깊은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부르짖는 나로서도 이 부분에서는 영 자신이 없다.
바로 여기에서 나의 문학에 대한 한계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자책을 하는 것이다.
‘너 같은 놈이 무슨 글을 쓴다고...... 너가 문학을 얼마나 안다고 소설을 쓰냐고........너가 삶을 진짜로 진정으로 살았냐고.......그렇게 술이 취해 주절거려놓고,’
아침이면 또 버젓이 글을 쓰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비웃는지도 모른다.
“누님, 애인 있죠?”
“...............”
나의 돌발스런 질문에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얼굴이 발갛게 물이 들 뿐이었다. 맥주를 한 잔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의 그런 질문은 그날 평소와는 다르게 장난스럽게 이어진 대화 끝에 내가 그녀에게 가졌던 궁금증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리라.
“나중에 누님 애인 얘기 저에게 좀 해주세요.”
“..............”
그녀는 몸 둘 바 몰라 했다.
여전히 발개진 얼굴인 채였다.
소심한 그녀이지만, 이런 정도로는 그녀를 흔들지 못 할 것으로 나는 믿었다.
모진 세월이 그녀의 껍질을 단단하게 하였을 것이다.
거듭된 상처가 아물며 튼튼한 각질로 변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얼굴이 발개진 채로 부끄럽게 앉아 있는 그녀이지만 나는 그녀를 믿었다.
그러나 단단한 껍질 안에 속살은 여리고 아프고 상처 받아 많이 썩었을 것이다. 다만 그 아픔을 애써 감추고 있을 것이지만.
“그 인간 있잖아요. 사장님 초등학교 동창, 그 인간 몇 일 전에 서울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한참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꺼낸 말이었다. 역시 그녀였다.
내 당돌한 질문에 어떤 변명도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루 동안만 애 좀 봐 달라고 해서, 제가 그 인간 애를 봐 준 적이 있어요. 엄마 없이 커온 아이라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구요.”
“누님도 바쁘신데 어쩌자고......”
“바빠도 할 수 없잖아요. 누가 봐줄 사람도 없는데.......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어요.”
이것이 그녀의 사랑의 고백일까?
인간 같지 않은 놈에게 겁탈 당하고 그 인간의 애를 봐 준 것이 내가 물은 돌발스런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사랑은 곧 삶이었으니까.
나는 그녀를 믿었다. 팔자 좋은 유부녀들의 감상적인 헛바람과 그녀의 사랑의 차이는 내가 느끼는 내 문학의 한계를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눈을 감는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비록 황사가 내 짓무른 눈을 지독히도 괴롭힌다고 해도 당당하게 앞을 보고 걸어야 했다.
그것은 비겁한 짓이다. 내가 아무리 내 과거를 애써 감추며 귀를 막고 산다고 해도 숨겨진 내 속살은 여전히 썩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않은가.
“걱정 마. 내가 돈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 볼테니..........”
아내의 얼굴에 드리워진 검은 그늘을 나는, 기약 없는 내 헛소리로라도 가셔주고 싶었다. 물론 내 말을 아내는 믿지 않을 것이지만.
“오늘, 안과에 한 번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