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104)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삼하 6:6~8).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이스라엘 왕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블레셋을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축출함으로써 점차 정치적, 군사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확립해 나간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함으로 신정국가 건설의 종교적 기틀을 다져 나가게 된다. 다윗은 과거 엘리 제사장 당시의 아벡 전투 이후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에 약 70여년동안 방치돼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제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러나 법궤를 옮기는 도중에 소가 미끄러져 비틀거리게 되자 운반 책임자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는 아마도 하나님의 궤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궤를 손으로 잡았을 것임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행위지만, 하나님의 율법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궤는 중도에서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지고 만다. 사실 다윗은 선한 신앙적 동기와 열심히 법궤를 운반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게 된 것은 그것을 운반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지시 사항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즉 법궤는 반드시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어 운반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도 하나님의 법궤에 직접 손을 대면 죽음을 면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민 4:15). 그런데도 다윗은 이를 무시하고 법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새 수레에 법궤를 실어 운반하려 했던 열심만은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법궤 운반 계획은 웃사의 죽음을 초래한 채 실패로 끝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무리 선한 동기와 열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추진된다면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적인 관점과 기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해야 합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도저히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일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했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인간적인 열심과 방법을 동원해서 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열심’(enthusiasm)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헬라어 εν+θεος에서 유래한 말로 하나님 안에서가 진정한 열심이라는 말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도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열심과 방법을 동원해서 실패하는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심지어 예배조차도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의식하고 드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돌아봅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매사에 묻듯이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항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가를 살피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고, 항상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