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냉채를 먹는 바다거북
주창윤
태초에 해파리가 있었고 그 해파리는 지금도 있다
바다에 조등弔燈을 들고 떠나다니는
투명한 해파리는 비닐 유령 같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해파리가 수억 년 동안 멸종하지 않으면서
거의 진화하지도 않았다는 거다
해파리의 눈과 코와 귀는 없다
소화기관도 없는
해파리의 입은 항문이다
삼엽충이 단단한 갑옷을 만드는 동안
고생대 물고기들이 척추와 턱뼈를 단련하고
지느러미의 힘센 근육을 키우는 동안
폐어肺魚가 바다에서 기어 나와 양서류로 진화하는 동안
이빨도 없이
입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해파리는 무엇을 했나?
중국집에 가서 해파리냉채를 주문했다
어느새 거북목이 되어
푸른 바다거북처럼 해파리를 뜯어먹는다
오늘따라 해파리냉채가 비닐 같다
영원한 해파리의 시간이다
썩지 않는 비닐봉지의 시간이다
—계간 《시와 사상》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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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윤 / 1963년 대전 출생.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와 대학원 졸업. 영국 글래스고대학에서 박사학위. 1986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물 위를 걷는 자 물 밑을 걷는 자』 『옷걸이에 걸린 양』. 현재 서울여자대학 언론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