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은총으로(By the grace of God)
김 난 석
얼마 전 프랑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신의 은총으로>가 상영되었다.(2020, 2.)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잘 살아가는 알렉상드르가 고발자이다. 유년시절 자신에게 성적 학대를 가한 프레나 신부가 지금도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되고, 그런 사례들을 모아 교회에 프레나 신부의 파면을 요구하지만, 교회는 그 증거의 모호성과 공소시효를 이유로 사건을 덮으려 한다. 하나님의 세계인 교회, 신부, 신자들의 성스러운 세계에 왜 소란을 피우느냐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풀리지 않자 알렉상드르는 급기야 수사기관에 호소한다. 하지만 피해의 진술만 있고 객관적인 물증은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사과정에서 피해사례가 입으로 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고, 가해자 프레나 신부는 결국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게 된다. 허나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에 이르진 못한다.
프레나 신부의 어린아이 성적 학대사건이 최근에도 드러났었다. 그때마다 신부는 자신의 비행을 참지 못한 데에 대해 자책하면서 스스로 주교회의에 응분의 처벌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허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오랜 시간 뒤에 사법당국의 조사에까지 이르게 된 셈이다. 과연 신의 은총으로 무엇을 어찌해야 할까, 하는 게 영화관을 나오면서 해본 생각이었다.
프레나 신부는 신의 은총으로 살아났을까? 그의 비행이 신의 은총으로 세상에 드러났을까? 주교회의를 비롯한 교회는 신의 은총으로 온존하는 것일까? 프레나 신부의 자제하지 못하는 변태성욕은 신의 은총으로 발동하는 것일까? 지혜의 왕 솔로몬은 모든 건 다 지나가리라 했는데 시간은 누구 편인가? 용서와 징벌 중에서 신은 어느 편인가? 영화감독 프랑수아 오종은 이 모든 의문들이 신의 은총으로 일어난다고 보았을까?
네덜란드의 신학자 멀치아 엘리아데는 그의 저서 <성과 속>에서 말하길, 인류는 중세를 벗어나면서 신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났지만 그 내면엔 세속성 외에 신성성이 있다 했다. 그걸 거룩한 것에 대한 외경심이라 했는데,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든 안 하든 하늘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하늘에 대한 외경심을 품고 살아간들 신은 말이 없으니 신의 뜻을 누가 알아차리나? 그래서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최초엔 그 매개역할을 선지자라거나 주술사가 신의 뜻을 대변해 왔다. 그게 타락과 변형을 거듭하면서 근대식 종교가 생성되고 성직자가 탄생했겠지만 여기저기 타락한 사이비도 많으니 그걸 어찌하랴. 신의 은총으로 인도한다는 종교의 일부분도, 장밋빛 세상으로 이끈다는 정치현상도 혼란스럽기만 한데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4월 21일 선종했다는 뉴스다. 지구촌의 14억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추앙해 온 터라 많은 슬픔이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다. 교황은 특히 세속의 일에도 크게 관심을 보여 성직자 내의 성추문 소문에 대해서도 진솔한 사과의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자신의 주변을 가리면서 아무리 하늘의 소리만 내본 들 울림이 있겠는가. 그래서 교황의 메시지는 울림이 컸었다.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사건에 대해서도 피해 유가족들과 함께 애도하며 신의 은총을 비는 데에는 정치적 중립이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도 내는 등 인간애와 함께 우리나라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던 교황, 그런 교황은 선종 직전에 교도소를 방문해 수감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니 화창한 봄날에 버킷 리스트를 품고 다니는 이들로서는 가슴이 서늘하기도 했으리라.
지구촌엔 여기저기 처참한 국지전이 현재진행형이다. 교황이 정전과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여러 차례 냈지만 상잔(相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니, 이게 모두 신의 저주가 아니길 바란다. 오로지 두 눈 부릅뜨고 문제의 소지를 깨닫고 지구촌의 중지를 모아 잘 대처하는 지혜가 절실할 뿐이다.
2025. 4. 25.
*사진은 석촌호반에서 쓰레기 줍는 어린이들
첫댓글 쓰레기를 줍는 어린 아이처럼 산다면 이 세상은 깨끗하고 아름다울텐데....
<신의 은총으로> 프랑스 영화 기회되면 보고 싶군요.
인간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상드로도 그런 다양한 인간 중의 한 사람이겠죠?
가난한 자의 친구였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육체의 끌림은 어느 누구도 주체하기 어려울겁니다.
성향이 그렇지않은 사람도 많지만요.
수양이 필요한 이유는 육체와의 싸움을 이기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가지고 옳은 생각 행동으로 세상살이를 원하는 맘이지요.
성의 변태에 의한 상처는 몸과 영혼의 내면에서, 지속 되는 상처일 것입니다.
착한 맘과 행동에 은총을 입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으로써는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성직자의 자리에서, 가해자 프레나 신부를 위한 '신의 은총으로' 용서를 비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정직하지 못한 불안한 사회의 단면을 '신의 은총으로' 라는 글제로 올린 영화 한편인 것 같습니다.
양심과 정의를 위하여, 신의 은총으로 단죄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석촌님의 글에 댓글 달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은총으로 이쁘게 봐 주십시요.^^
마음의 위안을 받기 위해서
흔히도 신의 은총을 끌어대기도 하지요.
그럴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허나 신은 중립이란 말도 하니 인간의 의지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기도 하지요.
석촌호반 쓰레기줍는 아이들이 참 기특해보입니다
저는 어릴때 유아영세를 받았고 결혼도 성당에서
했지만 냉담신자입니다. 서울에 사는 딸애는
선배언니의 영향으로 성당에 나간다 합니다
성당에 안나가지만 인류평화를 위해
노력하신 교황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믿을지라도 절에는 나가지 않는 이들을 재가불자라 하지요.
카톨릭도 이치가 마찬가지가 아닐까,합니다.
@석촌 제가 재가불자입니다. ㅎㅎ
재가불자는 불교신자이지만 출가 하지 않은, 즉 재가 사람입니다.
즉 스님을 제외한 불교신자입니다. 절에 가거나 안가거나...
아이는 우리의 미래 입니다.
또한 노인은 보다 확실한 우리의 미래입니다.
알 수 없는 게 세상인 것 같습니다…
둘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 아이들은 유치원생들 인거같던데
교육을 참 잘 시키는거 같았습니다.
아래 내용을 이해 못 하겠습니다.
“선종 직전에 교도소를 방문하시기도 했다니 화창한 봄날에 버킷 리스트를 품고 다니는 이들로서는 가슴이 서늘하기도 했으리라.”
해설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생이 하반기로 들어서면 흔히는 조급해하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그동안 누리지못했던 것을 누리리라고 마음먹고 그걸 실행하기위해서 적어가지고 다니게 마련입니다.
그게 소위 버켓 리스트지요.
이를테면 크루즈여행을 한다거나 별장을 짓는다거나 그런것들이지요.
이와 반대로 교황은 그런 여한은 생각지 않고 낮은데로 임했는데, 그게 바로 교도소에 수감중인 사람들을 찾아보고 위로를 한 행보지요.
그렇다면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낮은데로 임한 교황을 보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을수가 없겠지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석촌 이제 이해 되었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석촌님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