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FB 포칼 2라운드가 끝난 지난 10월 말, 분데스리가 1부리그의 FC 쾰른은 그들의 감독이었던 프리트헬름 푼켈을 전격 경질했다. 지난 2002년 2월 이후로 쾰른을 맡아온 푼켈은 현역 시절 분데스리가 320경기를 소화했을 정도로 경기 경험이 많은 감독이었고, 01/02 시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으나 곧바로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키며 쾰른팬들에게 그 지도력을 인정받아온 감독이다. 그러나 '1부리그 승격'이라는 혁혁한 공도 강등권에 빠져있는 팀 성적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라인-에네르기 슈타디온의 열성적인 쾰른팬들로부터 계속해서 경질설이 떠돌았던 푼켈은, DFB 포칼 2라운드 볼프스부르크 아마추어팀과의 경기 이후(3:2 승) 결국 쾰른의 감독 자리를 내놔야했다.[사진 : 올 시즌 세번째 중도탈락자, 쿠르트 야라 전 함부르크 감독. (게티 이미지/유로포토)]
03/04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감독 경질'의 바람이 거세다. 묀센그라트바흐의 에발트 리넨을 시작으로, 한자 로스톡의 아어민 페, 함부르크 SV의 쿠르트 야라가 차례로 감독직을 내놓더니 이제는 푼켈까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10라운드가 진행된 시점에서 네 팀이나 감독을 경질했으니, 2라운드 꼴로 감독직 하나가 바뀐 셈. 그리고 헤르타 베를린의 윰 슈테벤스,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에릭 게레츠 등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감독들도 꽤 있기에, 분데스리가에서 이러한 '감독 경질'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폴커 핀케를 아십니까?
보통 부진한 팀들은 이렇게 '감독 교체'라는 극약의 처방을 내놓음으로서 팀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팀을 이끄는 수장을 교체하는 것은, 팀의 변화와 선수들 사이의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 강등권에 위치하거나, 기대보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팀들의 감독들은 여지없이 경질설에 시달리는 현재의 세태가 이것을 잘 반영한다. 그런데, 분데스리가에서 이러한 최근 경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감독이 있다. 바로 SC 프라이부르크의 감독인 폴커 핀케(Volker Finke)가 그 주인공인데, 핀케는 무려 12년 넘게나 프라이부르크를 이끌면서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흔히 '장기집권'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바이에른 뮌헨의 오트마 히츠펠트 감독의 재임기간은 현재까지 약 5년 정도. 핀케의 절반도 안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프라이부르크의 성적이 핀케의 12년 집권을 뒷받침할 정도로 좋았는가? 그렇지는 않다. 25,000 명 정도를 수용하는 드라이잠 슈타디온을 홈 구장으로 삼는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남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뮌헨에 비해 규모가 작은 프라이부르크는 그만큼 큰 상권이 형성될 수 없고, 또한 그만큼 과감한 투자도 기대할 수 없는 팀이었다. 현재 프라이부르크에 몸을 담고 있는 선수 중 가장 이적료가 비쌌던 선수라고 해봐야, 지난 9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블랙번 로버스에서 데려왔던 스위스 출신 수비수 오우마 콘데로 그의 이적료는 45만 유로에 불과하다. 1904년 창단된 프라이부르크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부리그와는 거리가 먼 팀이었으며, 핀케가 처음 프라이부르크를 맡던 91년 7월까지만 해도 프라이부르크는 2부리그에서도 중위권을 오가는 팀이었다.
48년생으로, 전직이 '핸드볼 코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옆집 할아버지'핀케의 부임 이후 프라이부르크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임한지 1년째였던 92/93 시즌, 핀케는 2부리그에서 102득점을 성공시키는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무기로 프라이부르크를 1부리그로 진입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한해의 적응기를 거쳐, 아직도 팀의 '기적'으로 프라이부르크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94/95 시즌에는 이 작은 클럽을 분데스리가 3위에까지 올려놓는 '마법'을 연출하며 프라이부르크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에 이른다. 주장 우베 슈파이스를 비롯, 옌스 톨트, 토마스 포겔, 안드레아스 자이어, 외르그 하인리히, 로돌포 카르도스 등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실 있는' 라인업으로 무장한 프라이부르크는 초반부터 선전을 거듭하며 기존 강호들을 위협했다. 당시 우승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승점이 49점(당시에는 승리는 2점, 무승부는 1점으로 승점을 계산했다) 이었고 프라이부르크의 승점이 46점 이었으니, 얼마나 프라이부르크가 선전했는지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카이저슬라우테른, 바이에른 뮌헨, 보루시아 묀센그라트바흐 등 당시의 강호들보다 이 작은 팀이 더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이었다.
시련은 있어도 경질은 없다?
물론 팀의 전력적,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핀케가 어려운 상황에 여러번 직면했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아무리 팀을 잘 짜 놓는다고 해도, 개개인의 능력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94/95 시즌의 기적적인 성적 이후, 팀은 다시 마법을 부리지는 못하고 결국 96/97 시즌에는 리그 17위의 성적으로 2부리그 강등이라는 쓰디쓴 결과를 내기 이른다. 곧바로 1부리그로 돌아오긴 했지만, 10위권 안으로 진입하기는 94/95 시즌의 기적보다도 더 어려웠다. 오히려 그러한 객관적 전력으로 당당히 UEFA 컵을 차지한 00/01 시즌(리그 6위) 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만을 선사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강등과 승격의 반복. 올 시즌 다시 1부리그에 돌아온 프라이부르크는 초반 분전하며 중위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멤버의 구성이나 벤치의 수준으로 볼 때 시즌 중반 이후까지 이러한 순위를 유지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핀케의 지도하에 프라이부르크라는 팀은 외형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핀케가 부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1부리그라고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팀이었지만, 지금은 하위권이라고 해도 1부리그 무대에서 꾸준히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한번 '반짝'할 때마다 얻어내는 대외컵 티켓을 통해(물론 그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유럽 무대에서도 클럽의 이름도 어느정도 날릴 수 있었다. 핸드볼 코치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때문인지는 몰라도, 개인기를 바탕으로 하는 아기자기한 축구를 선호하는 핀케는 12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클럽에 헌신했으며, 팬과 클럽은 그를 존중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폴커 핀케와, 프라이부르크 팬들 사이에서는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고, 이것이 핀케의 12년 장기 집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독일인들의 지나친 인내심일까?
핀케보다는 재임기간이 짧긴 하지만, 현 2부리그 소속의 에네르기 코트부스의 감독 에두아르트 가이어 감독 역시 지역팬들의 신뢰 속에 오랜기간동안 감독직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동독 축구의 대부'로서, 통독전 동독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을 정도로 동독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가이어는, 94년 코트부스의 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 감독직을 계속해오고 있다. 물론 그도 순탄한 감독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디나모 드레스덴과 한자 로스톡으로 대변되던 동독 축구의 변방인 에네르기 코트부스의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코트부스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지방리그 소속의 팀이었다. 팀을 4년만에 2부리그로 끌어 올린 가이어는, 각고의 노력끝에 3년 후 코트부스를 꿈의 1부리그로 끌어올리며 3년간 팬들을 1부리그 무대로 안내한 장본인이었다.
비록 코트부스 역시 프라이부르크와 마찬가지로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고, 가이어의 팀은 하위권을 맴돌다가 결국 지난시즌 최하위로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되는 아픔도 겪었다. 이런 와중에서, 코트부스의 팬들은 경기장을 나가는 가이어를 막아서며 팀 부진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코트부스의 팬들은 적절한 비판과 함께 가이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2부리그로 강등된 현재까지도, 가이어는 코트부스의 감독으로 여전히 재임하고 있으며 그의 팀은 상위권을 형성하며 호시탐탐 1부리그로의 재진입을 노리고 있다.
K-리그에는 아직까지 1,2부리그 제도가 정착되어있지는 않지만, 한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만년 하위권에 머무는 팀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과연 프라이부르크 팬들이나, 코트부스의 팬들처럼 한 감독에 끝까지 신뢰를 보이며 응원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독일인들의 지나친 인내심 발휘인가? 이것이 독일인들이 지나친 인내심이라면, 이러한 인내심은 독일 대표팀과도 연관시켜 살펴볼 수 있다.
독일 대표팀의 공식적인 역사는 1908년부터이다. 그러나 독일 대표팀의 공식적인 감독에 대한 역사는 1923년부터로 공식 집계되고 있다. 오토 네어츠 교수(1923~36) 를 시작으로, 제프 헤어베르거(1936~64), 헬무트 쇤(1964~78), 유프 데르발(1978~84), 프란츠 베켄바우어(1984~90), 베르티 포그츠(1990~98), 에리히 리벡(1998~2000), 그리고 현 독일 대표팀의 감독인 루디 푈러(2000~) 가 그 역사적 주인공들이다. 독일 대표팀에는 80년 동안, 단 8명의 공식적인 감독만이 거쳐간 것이다. 평균 재임 기간으로 따지면 무려 10년에 이른다.[사진 : 독일 대표팀의 다섯번째 공식 감독. 프란츠 베켄바우어. 그는 90년 서독 월드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게티 이미지/유로포토)]
물론 독일 축구 역사 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인정받는 헤어베르거(77년, 80세의 나이로 타계)의 30년 가까운 장기집권 등 여러가지 요소는 있지만 분명 10년이라는 평균 재임기간은 우리 실정에서는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긴 재임시간의 이면에는, 국민들과 독일 축구 협회(DFB)의 성원과 신뢰가 뒷받침되어 왔다. '마이스터(장인)'이라는 개념이 아직 남아있는 독일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대표팀을 맡기면 완전히 자신의 팀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주고 이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이 뒤따랐던 것이다. 이러한 독일인들의 인내심과 신뢰를 거름 삼아, 헤어베르거부터 포그츠까지의 모든 독일 감독들은 최소한 1개 이상의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이 정도면, 조금 참고 기다린만큼의 충분한 보상은 되지 않았을까?
대비되는 움베르토 코엘류와 루디 푈러
현 독일 대표팀의 감독인 루디 푈러는 최근 큰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유로 2004 예선에서 프랑스와 더불어 '가장 손 쉬운조'에 속했다고 평가받았던 독일 대표팀이 부진을 거듭하며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야 유로 2004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것이다.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페로군도와 한 조에 속한 독일 대표팀은 당초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었으나, 매 경기 힘겨운 경기를 펼치며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국의 자존심에 큰 흠집을 내었다. 리투아니아와는 홈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온갖 비난을 받았고, 피파랭킹으로는 도저히 '게임이 안될 것 같은'페로군도와도 모두 접전을 벌인 끝에 겨우 2승을 챙길 수 있었다. 언론들의 비난이 화살처럼 쏟아졌음은 당연했고, 국민들도 실추된 독일 축구의 자존심을 용납하기 싫다는 듯 푈러를 몰아세웠다.[사진 : DFB 의 엄호를 받아 결국 포르투갈로 가는 루디 푈러 현 독일 대표팀 감독. (게티 이미지/유로포토)]
그러나, 독일 축구 협회는 강경했다. 그들은 루디 푈러에 대한 변함없는 신임을 과시하며, 푈러를 경질하라는 많은 언론들의 압박을 기꺼이 앞에서 받아내며 물리친 것이다. 이러한 협회의 옹호속에, 푈러는 스코틀랜드와 아이슬란드와의 중요했던 2연전에서 모두 깔끔한 승리를 거두며 끝까지 자신에 대한 기대와 성원을 거두지 않았던 협회를 만족시켰다. 잉글랜드에게 뮌헨 홈 경기에서 1:5 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을 때도, 리투아니아, 페로군도, 아이슬랜드 등 '1-2수 아래'로 보았던 상대들과 졸전을 벌일때도, 독일 축구 협회는 끝까지 푈러를 신뢰했고 푈러는 그러한 신뢰에 보답한 것이다.
최근 2004 아시안컵 예선에서 베트남, 오만에게 연속으로 패하며 우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움베르토 코엘류 대표팀 감독이 도마위에 오른 바 있었다. 물론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우리 국민들과 협회에게는 2-3수 아래의 상대에게 당한 2경기 연속의 패배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법 하다. 패배에는 말이 없는 것이고, 큰 충격끝에 어렵게 아시안컵 본선진출권을 획득한 코엘류 감독이 잘했다고 여기서 그를 변호하고자 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협회는 얼마나 대표팀에 지원을 잘 했는지, 또 팬들은 코엘류 감독이 팀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신뢰를 보냈는지 되묻는다면 어떨까?[사진 : 우리는 과연 이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움베르토 코엘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게티 이미지/유로포토)]
"전쟁에 패하면 장수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표현은 물론 언제나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장수 한명이 혼자 전쟁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또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지도 않는 것이 전쟁이다. 장수가 책임을 지기 이전에 과연 우리가 장수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줬는지, DFB와 폴커 핀케를 보면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