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통영충렬사에서 470주년 이순신 탄신제가 거행될 때 한권의 책이 봉헌되었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한민족의 본래 역사와 문화를 밝힌 환단고기였다. 환단은 천지 광명을 뜻한다 천지광명과 소통하며 살았던 옛 조상들의 기록이란 뜻의 이 책은 1980년대에 한단고기란 이름으로 책이 나왔다 최근 출간 100주년이 되던 2011년 상생출판 안경전 저자의 완역본 환단고기桓檀古記가 나오면서 눈길을 끌었다. 한민족 고대역사의 비밀을 가진 이 책은 완역하기 위해 저자는 30년을 직접 문헌고증하고 지구촌을 동서무대로 발로 뛰었었다. 이 책에 의하면 고대에 한민족은 동북아역사의 문명사의 주역이었고 그 문화가 동서로 전해졌으며 중국 일본에게도 역사문화가 전수된 것을 매우 소상히 밝힌다. 또한 금세기 최고의 고고학성과로 중국 홍산지역 (만주일대)에서 6천년전에서 8,9천년을 상회하는 역사유물 유적이 대거 발굴이 되면서 중국은 물론 세계고고학계에 대 충격을 던진바 있다.
이 유적은 한민족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었음을 학자들은 인식했고 중국공산당은 동북아패권주의와 중화사상으로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조작의 대단원이 시작된다.
뿐만아니라 독도를 분쟁화해오던 일본은 과거 한반도남부를 다스렸다고 하는 임나일본부설을 다시 들고나와 독도와 더불어 한반도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분쟁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원래 임나는 대마도를 뜻한다.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경계에 위치하여 북쪽은 바다에 막혀있다. 다스리는 곳을 국미성이라 했다. 동쪽과 서쪽 각 언덕에 마을이 있어 혹은 조공을 바치고 혹은 배반하였다. 뒤에 대마도 두섬이 마침내 임나의 통제를 받게 되어 이때부터 임나는 대마도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그런데 그 임나가 한반도 내에 있었고 고대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를 했다는 소설같은 이야기를 주장하고 있다. 즉 일제시대의 조선총독부와 같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조선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서 조작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한일고대사 논쟁의 시발이자 양국외교관계의 걸림돌이 되어왔다. 이제 한중일동북아는 패권주의와 힘의논리에 역사왜곡에서 역사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이때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미래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다. 동서고금을 통해 어느 민족이던지 자국의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갖추더라도 반드시 패하게 된다.
최근 우리는 역사를 잃어버린 불쌍한 민족이 되었다. 근세조선에는 중화식민사관과 일제강점기에 매국노들의 식민사관에 의해 환국 배달 조선의 뿌리역사를 통째로 거세되어버린것이다.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선생은 나라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하셨다.
본래 동북아 역사는 9천년전 시작된 환국에서부터 배달국 단군조선의 한민족의 뿌리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2천년전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때부터 중국중심으로 조작되고 이후 지난 근세조선 5백년동안 중화사관에 의해 국가차원에서 관련 뿌리역사도서들이 수거당했으며 한민족의 상고 역사서를 지닌자는 익자처참匿者處斬으로 처형을 당했다. 일제 시대 환단고기를 통해 한민족사의 뿌리를 드러낸 계연수선생은 밀사로 파견된 일본헌병에 의해 압록강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의 제자 이유립선생이 목숨을 걸고 이 책을 후세 대한민국에게 전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본격화되던 때 군대가 들어와서 무력행사를 하고 정신적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20만권사서를 불태우고 중요 뿌리역사 도서를 강탈해 갔다. 그리고 중요도서들이 일본왕실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는 증언도 있다.
아직도 이러한 역사적뿌리가 말살되어 상처가 치유되지 못했기에 주변국의 역사왜곡으로 인한 도발에 속수무책이다. 예를 들면 한국은 최근 정신대문제 독도도발 동북공정 임나일본부설 등의 역사조작과 역사왜곡의 사면초가속에 있다. 이제 동북아 한반도로 태풍처럼 거대하게 밀려온 이 역사전쟁앞에 나라를 지키는 일은 무엇인가? 한민족의 역사정신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다. 지난 인류역사에서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하지 않았던가 ! 국론분란의 음해를 일삼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관을 흔드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인것이다. 또한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고 했으며, 또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말이다. 이날 밤 신인이 꿈이 나타나 , "이렇게 하면 크게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주었다. 난중일기 [계묘년/ 10월 25일]
작년 명량이란 영화에서 이 대목이 나온다. 우리에게 길목이란 무엇인가? 이순신 장군은 명량전을 출전하기전 조상님들의 위패를 모시고 한민족 광명사상 환단의 환桓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아래서 제사를 지내고 조국의 수호정신을 다진다 광명이세 光明以世 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민족의 건국의 도인 홍익인간 광명이세의 신교문화에 있다. 조상과 천신의 음호아래 지혜의 깨달음을 열었던 것이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장군은 배달국14대 환웅이신 치우천왕에 전쟁중 천제를 올리는 둑제를 세차례 거행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둑제는 고대로부터 전쟁승리를 기윈하는 군신 치우를 상징하는 깃발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부국강병을 기원했고 서울 둑섬은 둑제를 올린섬이라는 것이다. 그런 역사정신으로 삼도수군통제영 사령관이되어 나라를 지켰다. 그 당시 사령부인 통제영에서 통영이란 지명유래가 생겼을 만큼 우리고장 통영은 군사적으로 상징하는 매우 특별한곳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봉행행사 초헌관에는 정호섭 해군참모총장, 아헌관 손인배 육군 제8358부대장, 종헌관 선무원종공신 염언상 장군의 후손 염현식씨가 맡아 초헌관의 분향, 헌작과 축관의 축문 낭독, 아헌례, 종헌례에 이어 헌화분향의 순서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김진형 해군군수사령관, 정진섭 해군교육사령관, 송택근 해군진해기지사령관 등 해군 수뇌부와 미 해군지원단 소속 장병이 대거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순신 탄신제는 장군께서 당시에 치우천황에 뚝제를 올렸듯이 모든 축제문화와 동방 한민족의 제사문화는 환단고기속에 나오는바와 같이 하늘에 상제님께 천체를 올린 의식에서 부터 기인한다 본래 인류문화의 중심 동북아의 천제문화는 천자국 황제국만이 올리는 제사문화이다. 국제정세가 미묘한 균형에 처했던 당시 고종임금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언하고 현 조선호텔옆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대한제국을 선언한바 있다. 천제문화는 환단고기 삼성기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의 뿌리 배달국 나라를 여실때도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환단고기 삼성기三聖紀 상편을 보면 "환웅께서 삼신(三神 하느님) 의 명을 받들고 백두산으로 와서 천부인(天符印)을 지니고 오사(五事)를 주관하며 나라를 배달(倍達 - 광명의 땅)이라 하였다. 삼칠일(21일)을 가려 삼신께 제사 지낼 때 문을 닫아걸고 수행하며 주문을 외우면서 공덕이 있기를 기원했다. 선인(仙人)이 되고 괘(卦)를 긋고 신(神)을 움직였다". 고 하였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은 신교를 받아서 깨달음을 얻고 장수들을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도 인간이기에 전략 전술이외에 괘를 뽑아서 자연과 신의 뜻을 알고 최상의 전쟁작전을 수행하고자 했다. 장군은 주변의 시기와 질시로 개인의 괴로움이 있더라도 백성을 사랑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이 깊었던 것일까? 꿈속에서 조차 천신(상제上帝)이 감동해서 여러번 신교를 내려 받아서 난국을 헤쳐나갔던 불멸의 장군 이순신은 이처럼 한민족역사의 광명정신과 천제문화의 맥과 함께 해온 것이다. 고대로부터 천제문화는 제사장이나 임금이 나라통치의 다스림의 근간이었고 장수와 역사적 인물들이 어떤 정신으로 역사를 이끌었는지를 깨닫게한 인류최고의 원형문화였던 것이다.